나는 티라노사우르스가 그래도 무섭다
그런데 티라노사우르스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어째 바로 꼬마를 삼켜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꼬마의 장단을 서툴게 맞춰준다. 티라노에게 아빠, 아빠 하면서 맛있는 풀을 먹어보라는 둥, 아빠처럼 되고 싶다는 둥 신이 난 듯 말하는 안킬로사우르스. 포악하기만 했던 티라노의 마음이 사르륵 녹는다. 그는 다른 포식자로부터 아기를 지켜주며 스스로를 지키는 법도 가르쳐 준다. 진짜 아빠가 되어가는 티라노.
개과천선하는 이야기는 늘 감동이 있다. 특히 약한 것들을 공격하던 강자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약자를 지키는 반전은 더 배가 되는 것 같다. 이 시리즈는 약한 공룡들을 다치게 하고 먹어치우기만 했던 티라노사우르스가 사랑, 우정, 의리 등의 감정을 배우면서 그 강한 힘을 자신보다는 상대를 위해 쓰는 이야기를 그린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도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누구든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될 수 있다. 뭐 그런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보게 되는 걸까. 특히 마지막 여운 가득한 장면에선 늘상 눈물이 툭 터진다. 대단한 시리즈다.
그러고 보면 학창 시절에 읽었던 '고교생이 읽어야 할 한국 단편소설 시리즈' 중에서 내 마음을 때린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김동인의 <붉은 산>이었다. 개망나니로 마을에서 저주받던 인물이 죽어가면서까지 마을의 불의를 위해 싸우는 이야기였다. 요즘 생각하면 개망나니로 굴면서 저지른 악행을 애국심으로 커버할 수 있나 모르겠다. 하지만 캐릭터가 보여주는 반전이 인상적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 요즘 영화, 드라마에서도 인기 있게 차용되는 듯하다. 나쁜 놈이 나쁜 놈을 때려잡는 식의.
고망이는 가끔 그 책을 다시 펼치며 좋아하지만 티라노가 보여준 감동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 녀석 맛있겠다"라며 다가오는 때때로 아빠 같은 티라노가 더는 무섭지 않은 것 같다. 어떤 공룡이 좋냐고 하면 다른 친구들처럼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티라노 사우르스요!"
#한강_작가님_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