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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펑예 Oct 15. 2024

나를 울린 그 그림책2

나는 티라노사우르스가 그래도 무섭다 

키즈카페에 가서 아빠들이 한순간에 뭇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티라노사우르스가 되는 것이다. 별로 어렵지도 않다. 손가락을 세우고 발을 무겁게 쿵쾅거리면서 "크왕~ 나는 티라노사우르스다"라고만 하면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기꺼이 그것을 인정해주고 꺄르르 웃으며 도망친다.


J가 여러 차례 이를 검증했다. 처음에는 약간 심드렁해 있는 고망이를 재미있게 해주려고 시작했다. 티라노사우르스다라고 외치면 고망이 역시 금세 그 상황에 몰입해 정글짐으로 집라인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고망이를 따라 도망치는 아이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한 차례 놀이를 하고 쉬고 있는 J에게 다가와 언제 또 잡으러 올 거냐고도 묻는다. 마치 놀이공원의 인기 캐릭터라도 된 것 같다.


공룡이나 괴물이 되어 포효하며 쫓고 쫓기는 놀이는 아이들이 가장 쉽게 즐기는 놀이다. 특히 쫓기면서 느끼는 스릴감의 재미는 거의 본능적인 듯하다. 아주 어린아이들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상황을 재미있어한다. 그리고 쫓는 이는 공룡이 제일이다.


아이들은 왜 공룡을 좋아할까? 새삼스레 한번 검색해 봤다. 누군가는 연약한 존재인 아이들이 갖는 강한 것에 대한 동경 때문이라고도 하고 파괴충동을 대리만족한다는 말도 있다. 신비로운 존재로서 상상력이 마구 자극되기 때문이라는 말도 공감된다.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존재 같아 매료되기도 하고 잡아먹으려고 쫓아와 무섭긴 하지만 결국 허구의 존재라는 것이 안도감을 주기에 놀이로 이해할 수 있다.


고망이는 공룡 덕후는 아니지만 티라노사우르스 외 트리케라톱스, 안킬로사우르스, 브라키오사우르스만은 잘 알고 있다.

공룡을 다루는 거의 유일한 감성 동화 <고 녀석 맛있겠다> 때문이다. 이 책은 나를 울게 한 첫 그림책이기도 하다.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 아기 안킬로사우르스. 세상이 무섭고 외로운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안타깝게도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티라노사우르스였다. 티라노는 배를 채울 생각에 신이 나 익숙한 그 한마디를 뱉는다.


"고 녀석 맛있겠다!"


이 무시무시한 상황이 뜻밖의 반전을 맞는다.

바로 안킬로사우르스가 외친 한마디 때문이다.


"아빠~"


아빠라고? 몹시 당황해 사냥도 잊은 티라노에게 꼬마가 말한다. 내 이름을 알고 있으니 우리 아빠가 맞죠. 내 이름이 맛있겠다죠?라고. 본능적으로 위기 대처력이 뛰어난 떡잎이었다.

그런데 티라노사우르스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어째 바로 꼬마를 삼켜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꼬마의 장단을 서툴게 맞춰준다. 티라노에게 아빠, 아빠 하면서 맛있는 풀을 먹어보라는 둥, 아빠처럼 되고 싶다는 둥 신이 난 듯 말하는 안킬로사우르스. 포악하기만 했던 티라노의 마음이 사르륵 녹는다. 그는 다른 포식자로부터 아기를 지켜주며 스스로를 지키는 법도 가르쳐 준다. 진짜 아빠가 되어가는 티라노.  


개과천선하는 이야기는 늘 감동이 있다. 특히 약한 것들을 공격하던 강자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약자를 지키는 반전은 더 배가 되는 것 같다. 이 시리즈는 약한 공룡들을 다치게 하고 먹어치우기만 했던 티라노사우르스가 사랑, 우정, 의리 등의 감정을 배우면서 그 강한 힘을 자신보다는 상대를 위해 쓰는 이야기를 그린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도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누구든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될 수 있다. 뭐 그런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보게 되는 걸까. 특히 마지막 여운 가득한 장면에선 늘상 눈물이 툭 터진다. 대단한 시리즈다.   


그러고 보면 학창 시절에 읽었던 '고교생이 읽어야 할 한국 단편소설 시리즈' 중에서 내 마음을 때린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김동인의 <붉은 산>이었다. 개망나니로 마을에서 저주받던 인물이 죽어가면서까지 마을의 불의를 위해 싸우는 이야기였다. 요즘 생각하면 개망나니로 굴면서 저지른 악행을 애국심으로 커버할 수 있나 모르겠다. 하지만 캐릭터가 보여주는 반전이 인상적인 건 분명하다. 그래서 요즘 영화, 드라마에서도 인기 있게 차용되는 듯하다. 나쁜 놈이 나쁜 놈을 때려잡는 식의. 


고망이는 가끔 그 책을 다시 펼치며 좋아하지만 티라노가 보여준 감동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 녀석 맛있겠다"라며 다가오는 때때로 아빠 같은 티라노가 더는 무섭지 않은 것 같다. 어떤 공룡이 좋냐고 하면 다른 친구들처럼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티라노 사우르스요!"  





#한강_작가님_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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