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치료는 인지(생각, 사고) 때문에 정서가 부정적으로 변화된다는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우리가 겪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는 해석에 따라서 부정적인 정서가 생긴다고 하며 이런 개념이 인지치료의 기본인 [인지적 모델]이다. 인지치료는 이 인지적 모델에 근거하여 인지왜곡을 확인하여 교정시키고 이 왜곡에 의해서 형성된 부정적인 정서를 치유한다.
풀어서 얘기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겨서 기분이 나빠지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안 좋은 일만 없으면 기분이 나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안 좋은 일은 학교폭력 같은 구체적인 사건일 수도 있지만 성장환경 같은 삶의 배경일 수도 있다. 물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좋은 일이 생겼을 때에 비해서는 기분이 좋아질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같은 일을 겪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운 일을 겪고 나서 인생의 의미를 찾게 되지만 어떤 사람은 타락의 구렁텅이로 빠지기도 한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그가 경험한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하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관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사건이 있을 때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생각이 달라지면 기분이나 그 후의 행동도 달라진다는 철학에 기초를 둔 치료법이 인지치료이다. 즉 인지치료는 생각(사고)이 기분(정서)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이론에 근거를 둔 치료법이다.
현실이 힘든데 생각을 바꾼다고 기분이 달라질 것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 돌아가 보면, 반박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이는 정신의학이나 심리학 내부뿐 아니라 외부의 사회에서도 온다.
“현실을 변혁시켜서 살기 좋게 만들어야지, 현실을 잘 받아들여서 순응하게 만든다.”
이쯤 되면, 인지치료라는 게 자본의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는 거라고 하는 주장도 나올 것 같다. 정신의학을 애초에 그렇게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는 않다. 지난 시간에 얘기한 것처럼 인지치료의 기본은 진실에 조금 더 다가가는 것이다. 진실을 왜곡하는 사고/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고 수정하는 것이지, 현실을 외면하고 잘못된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게 아니다.
현실의 고통을 비가 오는 것으로 비유를 든다면, 인지치료는 일단 우산을 쓰는 것이다. 비가 오는 것이 부당하다고 항의하는 대신 비를 피할 방법을 찾고, 정말로 비를 그치게 할 방법이 있다면 그 길을 찾아간다. 단순히 우산을 쓰는 것보다 비가 오지 않게 하는 것이 더 힘든 것처럼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는 현실이 바꾸는 것이 훨씬 더 힘들기는 하겠지만.
나중에 기술적인 부분을 자세히 기술하겠지만, 인지치료를 하는 과정을 통해서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인지치료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 상황(현실)을 정리한다.
- 그 상황에서 들었던 감정을 찾는다.
- 그런 감정이 생기게 된 생각을 찾는다.
- 그 생각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지, 왜곡된 것인지 검증한다.
- 생각에서 수정할 부분이 있다면 수정한다.
인지치료 책에 보면 대개 상황은 간단하게 넘어간다. 실제로는 더 자세히 하겠지만 초심자들이 보기에는 간단한 사례가 있고 그 사례에서 좀 유치하고 극단적인 잘못된 생각(인지왜곡)을 적어주고, 치료 후에 더 건강하고/합리적이고/현실에 맞는 생각을 갑자기 집어넣는다.
흔히 인지치료는 ‘잘못된 생각을 찾아서 수정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뭐,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이 간단한 말이 오해를 불러온다. 이 말은
‘현실을 해석하는 잘못된 생각을 찾아서 현실에 맞게 수정한다’는 명제로 바뀌어야 한다. 즉 생각이 현실과 부합되는지 검증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그 기준이 되는 현실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인지치료 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면 사실(fact)은 거의 없고, 자기의 생각과 감정이 뒤섞여 있다. 그 생각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확실한 생각도 아니고 막연한 추측이다. 소망과 의심이 투사된 모호한 생각의 흔적 같은 거다. 감정도 피상적이고 분화되지 않은 막연한 감정이다. 인지치료를 한다는 것은 감정과 생각과 아주 조금의 실제 현실이 담겨 있는 상황을 주로 현실로만 이뤄진 상황으로 먼저 손을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추측성의 막연한 생각 + 막연한 감정 + 현실 => 현실
실제로 한번 자기가 오늘 겪었던 일,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 섞인 사건을 한번 팩트만 쓴다고 하고 써보라. 물론 이 글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자유롭게. 평소대로.
그렇게 휘갈기고 나서 다시 한번 그 글을 보면 그 안에는 팩트가 거의 없고, 자기 마음이 담겨 있을 것이다. 자기가 보기에도 사실이 아닌 것들을 빨간 펜으로 표시하면서 지워나가면 남는 게 별로 없을 거고, 그렇게 하고 나면 그 별로 남지 않는 일로 강한 감정이 생긴 게 좀 민망하게 여겨질 것으로 본다.
사실 처음에 이 작업만 해도 자기가 겪었던 일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는 사람도 많았다. 이건 학력이나 인문학적 지식과는 별로 상관관계가 없었다. 인문학적 지식이 많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니까. 자기와 세상을 단순하고 분명하게 바라보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다를 것이다. 그게 치료든 상담이든 다른 무엇인가 든. 이는 인문학적 지식과는 다른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사람들은 통찰이 있는 사람들이다. 통찰(insight)이라는 건, 겉으로 보이는 피상적인 것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보는 건데, 우선 겉부터 제대로 봐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길고 장황하게 하지 않는다. 필요한 말만 담백하게 기술한다.
인문학적 지식이 많은 사람 : 결국은 지워야 할 불필요한 얘기를 길게 쓴다.
인문학적 소양이 높은 사람 : 감정이 생긴 사건에 필요한 사실을 간략하게 잘 기술한다.
좀 장황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