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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의 힘 Nov 27. 2022

인지치료 : 현재는 과거의 반복?

인지치료에서 과거가 중요한 이유.

인지치료는 정신분석이나 다른 정신적 치료와 달리 현재를 더 중시한다. 이는 인지치료의 출생부터 그렇다. 인지치료의 창시자인 아론 벡은 원래 정신과 의사로 그 당시 모든 정신과 의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신분석을 받았다. 그런데 아마도 별 효과를 못 본 모양이다. 정신분석을 싫어했고 인지치료에서 정신분석적 요소를 배제시켰다. 


구체적인 내용 몇 가지를 들어보면 우선 과거를 최소한으로 다루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서 발달이라는 걸 하고, 그 발달 단계는 대략 5세 경까지 중요한 과정이 마무리된다.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구강기, 항문기, 성기기의 과정을 거치는 발달 시기를 지나면, 그 사람의 사정에 따라 특정 시기에 고착이 되고, 그 특성이 평생을 통해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엄마에게 먹을 것을 비롯한 생존을 의존해야 하는 사람이 이 시기에 너무 충족되거나 그 반대라면 의존성이 대표적인 구강기적 성격이 되어 평생 중요한 사람들과 그런 관계를 '반복한다'.  그러니까 나중에 누군가가 의존성의 문제를 야기하면, '구강기적 문제'가 나타났다고 선언하는데, 벡이 보기에는 그게 뭐야? 하는 마음이었나 보다. 현실의 문제들이 복잡 미묘한 조건에 따라서 달리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얘기해버리니 도움을 주기 힘들다고 느꼈을 듯하다. 




두 번째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에 방점을 찍었다. 정신분석은 그 과정이 너무 길다. 한 번에 50분씩, 주 4,5회씩  수년 동안 이어진다. 인격의 변화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너무 길다. 게다가 현실 문제는 도외시한다. 그리고 인격의 변화가 온다고 해도 5% 정도 변한다고 한다. 그러니 요즘같이 바쁜 세상, 의료비 견제가 많은 세상에선 맞지도 않는다. 아론 벡은 그 사람이 현실에서 겪는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기 원했다. 처음 시작은 우울증(주요 우울장애)에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공황장애, 강박장애 등등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졌다. 각 질병에서 현실적으로 그 사람을 힘들게 하는 문제들을 다루었다. 우울증이라면 자기를 비하한다. 그 때문에 자존감이 저하된다. 뭘 하질 못하거나, 해도 자기 비하에서 시작된 좌절감에 금방 그만둔다. 그럼 시작이나 중도 포기를 덜 하게 해 준다. 공황장애라면 공포스러운 신체증상이 매우 요란스럽지만 사실은 물지 않고 짖기만 하는 개처럼 허세라는 걸 알게 해 주면 힘든 신체증상도 잘 받아들이고 대처능력을 향상해줄 수 있다. 사회불안은 대인관계를 개선시키고, 수면장애라면 잠을 자게 해 주고, 알코올 중독이라면 술을 덜 마시게 한다. 강박장애는 손을 덜 씻게 해 준다. 맨날 간단하지 않냐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그림 그리는 아저씨가 떠오른다. 


세 번째는 치료과정이나 결과에 검증이란 잣대를 들이댔다. 사실 분석에서 좀 애매한 게 같은 현상을 놓고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 만약 누군가, 부모와 사이가 안 좋았는데 친절을 베푼 상황이 있다고 하자. 

첫 번째 분석가는 죄책감이 작용해서 그런 행동을 하고, 치료의 진행이 후퇴하는 걸로 해석한다. 두 번째 분석가는 부모에 대한 분노 감정을 미운 놈 떡 하는 더 주는 식의 방어기제를 써서(반동 형성) 분노를 숨겼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중요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그런 얘기거리를 만들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이게 만약 누구나 다 동의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해석이면 좋은데, 간혹 애매할 때도 있다. 벡은 이게 싫었다. 그래서 치료 과정에서 어떤 생각에 대한 근거/반근거를 찾아서 검증하는 과정을 심어 놓았고, 치료 결과에 대한 검증도 열심히 했다. 물론 치료 결과에 대한 검증은 연구비를 따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이러다 보니, 인지치료 교과서에는 과거를 최소한의 필요한 목적에 맞게 다루는 그 정도를 넘어서면, 그건 인지치료가 아니라고 딱 못을 박아 놓았다. 


그런데 치료 현장에서 보면 꼭 그게 아닌 걸 많이 경험하게 된다. 사람들의 생각은 과거 경험에 많이 영향을 받고 좌우되었다. 과거 경험을 알지 못하면 생각의 의미를 모른다. 그리고 과거 경험을 알면, 그 사람이 '절대적'으로 보고 누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생각이 '자신의 선택'이라는 점도 알게 된다. 치료에서 가장 중요했던 점은 '보편, 필연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걸 깨닫는 거다. 


선택한 건, 취소할 수 있고, 선택하도록 학습된 건 탈학습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보자.  


인지표는 [상황 - 감정 - 그 감정을 일으킨 생각]을 쓰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황:

시골에 돌아가신 시아버지 성묘를 가는데 시어머니께서 휴게소에서 '얘가 너 외투 참 예쁘구나'라고 하였다. 


감정:

 

어떤 감정이 상상되는가? 

그동안 수강생들에게 물어보면, 


불안(사달라고 하나?)

감사(예쁘게 봐주시니)

...

이런 식이다. 


그런데 그분은 분노였다. 


사정은 이렇다. 그분은 부잣집이었다가 망한 집안의 며느리였다. 남편은 돈이 없어서 투잡을 뛰었다. 그런데 그 시어머니는 부자 시절의 큰 손을 버리지 못했다. 그분도 너무 고생을 하다가 결국에는 어렵게, 더 이상 시어머니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서운한 티를 내며 못마땅해했지만, 사정이 그렇다고 하니 할 수 없이 수긍했다. 그런데 그 얘기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 얘기를 하니 그 전 몇 년 동안 무리해서 해드린 거, 어렵게 얘기한 진심이 다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이트 식으로 과거가 뭐나 다 설명이 가능한 도깨비방망이 같은 역할을 아니지만, 분명 이 분의 과거 경험을 알고 모르고는 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위에서 불안을 느낀 사람은 불안할만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고, 감사한 사람은 감사를 느낄만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인지치료의 초기에 이런 점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은 다르게 느낄 수 있다고 알게 된다. 그래서 처음에 말 시켜보면, '나라면, ' 이런 얘기를 많이 하다가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간다. 커피도 라테는 안 마실 것 같다. 


꼭 인지 표를 쓰는 면담이 아니라고 해도, 어떤 사람이 한 생각은 그런 생각을 할 만한 배경이 있었다. 그 배경을 알면 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당신은 그럴만했군요'라는 생각을 하고, 그걸 공유하는 게 타당화(validation)이라고 하는데,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치료적 요소이다. 생각해보면 확실하다. 정신과든 상담소든 가서 상담을 하는데 듣는 사람이 내 얘기를 듣고 나서 


'도대체 당신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간다'(어떻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결정/행동을 했냐?)라는 메시지를 언어적/비언어적으로 받으면  공격받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럼 과거가 중요한 걸 알았다고 치면, 그게 어떻다는 걸까? 


여기서는 잠시 뇌과학의 힘을 빌려야겠다. 우리의 뇌는 지금 이 글을 읽을 때처럼 일상적인 정보를 대할 때의 모드와 큰일이 있을 때의 정보 처리하는 모드가 따로 있다. 일상적인 정보처리는 해마라는 곳에서 한다. 그게게 없으면 문서에 저장 기능이 없는 워드 프로세서와 같다. 열심히 썼는데 아무런 것도 저장이 안 된다. 만약 지금 사는 동네 이름이 기억이 난다면 해마가 정상인 거다. 그게 잘려서 기억이 없는 유명한 환자도 있다. HM이라는 이니셜로 더 유명한 헨리 몰레이슨이란 사람인데 간질 때문에 해마를 잘 못 자른 이후(그 수술한 시점이 1950년대라서 그렇다...)  이 사람은 몇 년 동안 본 사람을 다시 봐도 매번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했다. 15분이 지나면 그때마다 처음 보게 되었다. 그런데 만약 큰 일을 겪을 때라면, 해마가 아닌 편도체라고 하는 불안 중추가 기억을 한다. 편도체가 기억을 했다고 하면 안 좋은 일이라고 보면 된다. 따돌림, 학대, 사고, (성) 폭행 등등. 


HM으로 뮤영한 헨리 몰레이슨

해마와 편도체는 기억의 방식이 다르다. 


해마는 비슷하면 관심이 없고(그날그날 똑같은 일상), 편도체는 비슷하면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또 당할 순 없어!!!) 


해마는 금방 잊는다. 2주면 다 잊는다. 이 글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2주면 읽은 사실도 잊을 것이다. 그런데 편도체는 각인되어 10년 이상도 간다. 이 말은 10년 이상된 일도 '현재 진행형'으로 느낀다는 얘기다. 


이렇게 복잡한 TMI 가지고 하는 얘기는 이렇다. 


- 인지 표에 쓰는 내용(상담 내용)은 큰 일이고 힘들었던 일이다.

- 그러니까 해마가 아닌 편도체가 다루었고, 비슷하면 무조건 또 당하지 않기 위해서 경계태세에 들어간다. 

- 그런데 편도체에 저장된 상황과, 걔가 비슷하게 본 지금은 상황은 많이 다르다. 

- 그런데도 똑같이 보고, 거기서 증상, 문제가 생긴다. 

- 그거 다른 거라는 거, 그래서 생각만큼 해롭거나 위험하지 않다는 거를 설득할 수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간단한 예를 들면, 매번 조별 모임 하는 동료들과 싸우는 대학생이었다. 그런데 이리저리 돌려가며 물어도 이유가 안 나온다. 뭔지 모르니, 그냥 자기는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자괴감에 빠진다. 제임스 웹처럼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상황을 딥 포커스 해서 보니 '왜'라는 질문이 단서(cue)였다. 

배경을 들어보니, 그의 어머니께서 항상 야단치실 때마다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다. 


어머니의 야단의 전주곡인 '왜'와 같은 조 동료의 '형 이거 왜 이렇게 했어요?'는 달랐는데, 같은 조원의 '왜'에게 어머니의  '왜'에 담긴 감정을 잘못 보냈다. 비슷하니, 경계를 해서. 


알고 나면 너무 간단한데, 알기가 쉽지 않은 게 함정이다. 


어머니의 '왜'와 같은 조원의 '왜'를 구분하는 것처럼 과거에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지금 잘못 적용되지 않았나 살펴보는 게 과거를 다루는 다음 순서다. 편도체의 특성 중 하나가 '저절로', '나도 모르게'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안되지만, 치료자와 그걸 하면 된다(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자). 그리고 인지치료의 장점 중 하나는 이런 자기 관찰 능력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게 해 준다는 거다. 


***


이렇게  인지치료 25년 해 본 결과, 과거는 프로이트처럼 중점적으로 다룰 수는 없어도, 아론 벡처럼 외면할 수도 없는 것 같다. 25년간 인지치료를 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인지치료가 아닌 다른 걸 하고 있다. 


하여간, 그 과거의 영향을 알고, 그걸 감안해서 현재를 다시 보면 현재가 더 가볍고 편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현재의 문제가 너무 심각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과거의 경험이 현재를 더 힘들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물건은 고장 나지 않게 아껴 쓰다가 고장 나면 버리는데, 

사람은 어린 시절에 일단 고장 내놓고, 그걸 고쳐 써야 하는 경우가 참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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