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진실이 아니라 감정의 조각일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분명 그렇게 느꼈어.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서로의 기억이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확신하는데, 상대도 똑같은 확신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은 “그때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아니, 나는 그런 말을 한 적 없어.”라고 말한다.
이럴 때마다 마음이 이상해진다.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사람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걸까?
혹은… 우리가 ‘같은 순간’을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바라봤던 건 아닐까.
기억은 감정의 거울이다
기억은 기록이 아니다.
누군가는 사진처럼 정확히 저장된 데이터라고 여기지만,
기억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의 재구성에 가깝다.
같은 장면을 떠올려도,
슬펐던 사람은 슬픔으로,
억울했던 사람은 억울함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따뜻함으로 그 장면을 기억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 다시 떠오른 기억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색을 띠기도 한다.
상처가 조금 아물면,
그 순간조차 애틋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감정이 아직 거칠다면,
아무리 좋은 기억도 칼날처럼 아프게 되살아난다.
기억의 재구성은 때때로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다
나는 예전에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를 꽤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나를 무시했고, 이해해주지 않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우연히 그 시절의 메시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그 사람은 나에게 따뜻했고,
내 감정이 그 모든 것을 ‘나쁜 쪽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나는 이미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그래서 사실보다 더 외롭게, 더 아프게, 더 슬프게 기억한 것이다.
기억은 때로,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과거를 새롭게 바라보는 연습
기억은 변한다.
그건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덕분에
같은 장면을 새로운 의미로 다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예전에는 상처였던 기억이,
지금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 뿌리였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반대로, 아름답다고 믿었던 장면에 가려졌던 내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며 새로운 해석을 할 수도 있다.
기억을 무조건 믿으라는 것도,
완전히 의심하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 기억이 진짜일까?”라는 질문을
가끔 스스로에게 던져보자는 것이다.
기억은 진실이 아니라, 나의 감정으로 만든 이야기일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기억 속에 살아간다.
그 기억이 때때로 나를 속이는 이유는
‘진실을 외면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더 가까이 두기 때문’이다.
기억은 나를 속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분명 나의 마음이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억을 ‘거짓’이라기보다는
‘감정의 조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진짜 중요한 건,
그 기억이 오늘의 나를 어떻게 움직이게 하느냐다.
지금의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기억을 다시 이해하고, 다시 써 내려갈 수 있기를.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