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는 시대에 사유를 지키는 법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강의를 듣는다. 어디에나 지식은 넘친다.
그런데 정작 무언가를 '생각해 봤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드물다.
분명히 내가 접한 정보는 가치 있는 것이었고, 한 줄 한 줄에 감탄하며 읽었는데,
며칠만 지나도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지식은 분명히 흘러들어왔는데, 남은 건 없었다.
왜 그럴까?
쌓이는 정보, 흐려지는 생각
한때는 정보가 귀했다.
책 한 권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을 뒤지고, 원하는 강연 하나 보려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 많이 지식을 얻는다.
클릭 몇 번이면 어떤 지식이든 손에 들어온다.
저것마저도 이미 예전 이야기이다.
지금은 AI에 질문을 넣으면 잘 정리되어 금세 나온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좋은 인풋’을 ‘많은 인풋’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많은 정보가 들어오면 당연히 많은 생각도 따라올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사유의 여백을 잠식한다.
읽고, 넘기고, 스크롤하고, 저장하느라 바쁘지만, 그 안에 나만의 해석이나 의문은 사라진다.
'생각 없는 공부', '느낌 없는 기록', '결론 없는 글쓰기'.
그 모든 게 지식은 남는데 생각은 사라지는 구조를 만든다.
사유는 인풋이 아니라 정리에서 시작된다
생각은 저절로 쌓이는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숙성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생각은 쌓는 것이 아니라, 정리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알겠다.
읽고 끝나면 그것은 ‘소비’ 일뿐이다.
하지만 읽은 것을 ‘남기는 것’, 정리하고 내 말로 바꾸는 것, 그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생각이 된다.
기록은 생각을 붙잡는 도구다.
그리고 정리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생각이 흐려질 때,
'나는 요즘 무슨 생각을 했었지?'라는 질문 앞에서 막막해질 때,
그 답은 언제나 내 기록 속에 있었다.
생각의 중심을 되찾기 위하여
이제는 조금 방향을 바꾸려 한다.
좋은 콘텐츠를 소비하기보다, 좋은 질문을 스스로 만들어보려 한다.
남들이 한 말에 감탄하기보다, 나만의 언어로 사유해보려 한다.
지식은 외부에서 오지만, 생각은 안쪽에서 일어난다.
기록하고 정리하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던 생각이 언젠가 ‘형태’를 갖게 되리라 믿는다.
그렇게 다시, 사유하는 나를 만나게 되기를 바라며.
지식은 흘러들어온다. 그러나 생각은 기록과 정리를 통해서만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