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는 충분한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요즘 글을 쓸 때마다 뭔가가 막힌다.
분명 쓰고 싶은 내용은 머릿속에 가득한데, 막상 자리에 앉으면 단 한 문장도 쉽지 않다.
이전까지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리적인 글을 써왔기 때문에 '내용 부족'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면의 글을 쓰려 하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정보는 충분한데, 이야기가 없다.
정리한 자료를 붙이는 건 쉬운데, 독자가 궁금해할 ‘왜’와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가 빠져 있다.
글을 쓰다 멈추고,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혹시 나는 이야기꾼이 아닌 걸까?’라는 생각까지 들곤 한다.
나는 글쓰기를 ‘정보를 정리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어떤 자료든 잘 구조화하면 좋은 글이 나올 줄 알았다.
그래서 글을 쓸 땐 최대한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썼고,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문장을 이어갔다.
그런데 다양한 글을 쓰려다 보니 이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았다.
마치 글이 생기를 잃은 듯, 평평하고 단조롭게 느껴졌다.
글이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흐름과 맥락,
그리고 독자와의 감정적 연결이 필요한 작업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쓴 글은 너무 무미건조했고, 너무 나열적이었다.
정보는 있었지만, 이야기는 없었다.
이쯤에서 하나의 통찰이 생겼다.
글은 묶는 일이 아니라 엮는 일이라는 것.
'묶는다'는 건 유사한 것들을 정리해 나열하는 것이고,
'엮는다'는 건 각각의 조각 사이에 의미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건 정리에 가까웠다.
그런데 독자는 정리가 아니라 ‘이야기’를 원한다.
그 이야기는 내 경험, 내 실패, 내 의문, 내 확신 속에서만 나올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자료나 데이터를 갖고 있어도,
그것을 어떤 흐름으로 풀어낼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책은 지루해진다.
내가 느낀 진짜 메시지, 나만의 어투, 그리고 조금은 어설플 수 있는 나만의 질문.
그것이 이야기의 씨앗이다.
결국 글이란, ‘내가 진심으로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써 내려가는 여정’ 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나도 글을 다르게 써보려 한다.
우선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까?’보다 ‘이 이야기를 왜 쓰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작고 사소한 질문에서 시작하더라도, 그 안에서 내가 느낀 것을 풀어내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실험처럼, 때로는 일기처럼. 누군가의 감탄을 끌어내기보다는,
내 머릿속과 마음속을 먼저 납득시키는 글을 쓰고 싶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이 언젠가 누군가에게도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복잡한 머릿속에서, 천천히 이야기를 엮어가는 지금의 시간이 어쩌면 나의 글쓰기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