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박사 레오 Dec 17. 2019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지 말라

행복한 엄마, 그리고 행복한 아이.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지 말라

Photo by Tanaphong Toochinda on Unsplash




1. 우리 어머니에 대한 기억


김장철이 오면 저희 집은 진짜!!!!!!!!!!! 소용없는 싸움과 신경전에 돌입합니다ㅠㅠ 저희 어머님은 혼자 사시기 때문에 별로 김장이 필요하지도 않으시지만, 굳이 자식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김장을 하십니다. 나이도 있으시니 무리하실까봐 걱정도 되고, 괜찮다고 여러 번 말씀을 드려도 그래도 사 먹는 김치보다 낫다는 말을 보태시면서 꼭 가져가라고 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같이 와서 김장을 하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으며, 조용히 혼자 그 고생고생을 다하시고 김장을 마치신 후 전화를 하신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자식 된 도리로써 마음이 짠~할 수밖에 없지요. 차라리 불러서 같이 일이라도 시키시지.. 혼자서 그 엄청난 김장 작업을 다 하시고 낼름(?) 받아먹기만 한다는 생각에 불효자가 따로 없구나 라는 생각과 죄책감도 듭니다.


지난번 제가 하는 팟캐스트의 오프라인 모임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딸과 엄마들의 싸움 아닌 싸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같이 여행을 가서 맛있거라도 대접을 하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손사래를 치면서 괜찮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비싼 것을 뭐하러 하느냐!'라고 타박하시기 일쑤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기왕 효도하는 마음으로 가는 여행인 걸 맘껏 즐기시면 좋을 것을, 맛집에 모시고 가도 걱정, 좋은 숙소를 봐도 걱정, 이래저래 혹시라도 자식들이 돈을 많이 쓰거나 피해라도 갈까 봐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양가감정이 들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좋은 마음으로 모시고 간 것이니 충분히 즐기셨으면 좋겠는데 자식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에 대한 불편함과 서운함이 섞이게 되지요. 그래서 결국 말다툼과 화해의 눈물을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어머니 역할은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 저의 어머니를 봬도 그렇고 다른 어머니들을 뵈어도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아주 명백한 현상이지요. 그런데 그 안에서 복잡한 감정이 일어나는 이유는 '본인도 돌보시고, 즐거우시고, 만족하셨으면..!'입니다. 즉 자식들을 위해서 헌신하느라 막상 본인을 소중히 여기거나 돌보시는 것을 소홀히 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입니다. 



2. 엄마의 역할도 변해야 한다. 


이런 어머니들의 마인드야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그 생각만 해도 마음이 뭉클할 정도로 감동적이기도 하지요. 나이를 먹을수록, 그리고 내 자식을 키우면서 힘들수록,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모님 생각일 정도이니까요. 이런 어머니들의 좋은 마음과 지극한 헌신 자체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바뀌고 사람들이 변화하였습니다. 예전에는 엄마라는 존재는 하루 종일 가족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하면서 가족들을 돌보는 역할을 주로 담당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이미 지나가버렸습니다. 이제는 자식도 많이 낳지를 않기 때문에 자식 케어와 관련된 일의 양 자체가 현저히 줄었습니다(대신 질적인 차이는 있음!). 또한 직업을 가진 엄마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습니다. 또한 직업이 없다고 하여도 이전과 같이 자식이나 가족만을 돌보는 일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가사노동의 경우에도 여러 도구의 발달이나 가사와 관련된 전문서비스들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사회가 개인주의적 사회로 바뀌었으며, 가족의 경우에도 가업을 중심으로 유사한 일을 함께 하기보다는 각자 개인의 요구와 관심에 따라 다양한 직업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하거나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으며 적절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비록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적당한 심리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이를 "가족해체"라고도 표현하지만, 어찌 보면 이는 세상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가족 내의 변화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렇게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역할에 대한 (이상적인) 기대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가족이나 자식을 위하여 일방적인 희생이나 헌신을 해야 한다는 관념들이 사람들의 기저에는 깔려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굳이 '기저에 깔려 있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런 생각들이 평상시에는 잘 나타나지 않다가 가족 내 이슈가 발생하거나 혹은 자녀에게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툭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신세대 엄마라고 자부하던 분들도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혹시라도 내가 직장을 다녀서 (즉, 아이에게 집중해서 온 마음과 행동을 다하여 양육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혹은 '내가 무엇을 잘못헀나?ㅠㅠ'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보통 자녀가 문제나 장애가 생긴 경우 가장 큰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바로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3. 자식은 반드시 엄마를 배신한다!


즉, 세상은 변화하였고, 가족도 변화하였으며, 그에 따라 가족 구성원들의 기대나 요구도 계속 변합니다. 그런데 유독 엄마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요구나 기대는 잘 변화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관점을 가장 버리지 못하는 것도 역시 '엄마'들입니다. 


새로운 시대나 환경에서는 그 시대의 요구나 변화에 맞춘 새로운 엄마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특히 엄마라는 존재에게 일방적인 희생이나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지금처럼 변화된 세상에서는 엄마도 이제 가족이나 자녀를 돌보는 주요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 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본인 스스로도 소중히 여기고 돌보아야만 합니다. 


물론 자녀는 소중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있습니다. 하지만 양육이나 책임의 정도가 현재에 맞지 않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입장에서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합니다. 예전에는 부모가 헌신하여 자녀를 키워내면, 그 자녀가 부모를 돌볼 것이라는 상호적 기대와 요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희박해진 상황에서 과도한 헌신이나 희생요구, 게다가 엄마에게만 특히 더 요구되는 의무와 책임은 축소되어야 맞습니다. 


모든 자식들이 가지는 공통된 핵심적 특징은 '배신 때리기!'입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애정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키운 자식들은 중2가 되면 부모에게 적극적인 반항을 하고 대립각을 세웁니다. 한편으로 이는 자녀의 자기 정체감을 형성해 가는 정상적인 발달과정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부모가 투자했던 노력이나 정성을 고려한다면 "(상대적인) 배신"이 맞습니다. 게다가 성인이 되어서도 필요할 때에는 온갖 뒷바라지를 다 요구하다가(취업을 위한 지원이나 결혼 비용 등) 취업을 하거나 결혼을 하면 홀연히 떠납니다. 혹은 이성친구라도 생기면 주말에 밥 한번 먹기 힘들 정도로 뺀질나게 연애질을 하러 다닙니다. 게다가 결혼해서 잘 사는 것 같아서 걱정되기도 하고 좋은 마음으로 김장을 해 놓았더니 '뭐하러 이렇게 고생하세요, 사 먹으면 간단한 걸..!'이라고 하면서 엄마의 마음도 못 알아주고 오히려 타박까지 하는 것도 역시 "(심리적인) 배신" 맞습니다. 


이런 '배신'의 이면에는 나중에 돌려받을 것을 고려하지 않고 베푼 엄마로서의 역할과 수행들이 있는 것입니다. 즉, 자식들이 의도하고 계획해서 배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해주고 베풀며 돌보느라고 투자한 에너지가 너무 많으며, 무엇을 해도 자식들은 그것을 갚을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대적이며 심리적인) 배신"입니다. 그래서 자식만을 위해서만 살아온 부모는 나중에 겪을 실망감이나 서운함도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4.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지 마라. 


그래서 엄마들에게 자주 당부합니다.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지 마십시오.'라고 부탁합니다. 동시에 자신 만의 영역과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도 집중하라고 조언합니다. 즉 (혹시 나중에라도) 고통스럽고 힘들 정도로 헌신과 희생을 하지 말고 엄마도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며 자신 만의 삶도 꼭 지키라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중시하고 나의 인생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은 항상 도움이 됩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반드시 배신 때릴 수밖에 없는 자식으로부터 온) 배신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덜 고통스럽거나 덜 서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 목숨 건 부모나 엄마는 나중에 자녀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혹은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심각한 '절망'과 '좌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을 때 이와 같은 자식의 배신이 숙명이라고 할지라도 그 상처나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엄마의 안정되고 균형 있는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엄마의 행복을 자식에게 의존하는 순간 엄마는 스스로의 행복을 통제하거나 관리하기 힘들어지며, 자녀의 수행에 따라 엄마의 행복도 요동치게 됩니다. 혹은 가족 내 평화나 안정감이 흐트러지는 경우에 엄마의 행복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가족이나 자녀가 더욱 행복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름길이 됩니다. 왜냐하면 엄마의 행복이 자녀의 행복이나 가족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즉, 엄마가 행복해야 자녀도, 가족들도 행복합니다!


이를 위해서 엄마들은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하는 (건강한 측면에서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그 '누군가'가 자식일 수도 있고, 전체 가족 구성원들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엄마를 받쳐주는 심리적 영역 중 일부여야만 합니다. 가족이나 자녀와는 별도의 엄마 만의 심리적 공감과 고유한 행복과 만족이 있어야 합니다. 나만의, 나만을 위한 인생계획과 설계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보다 당당하고 행복하며, 문제나 어려움, 특히 다른 가족 구성원이나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기더라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엄마라는 존재가 '스스로를 먼저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면서,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지 않을 때, 엄마와 가족 구성원 모두 행복하고 즐거워질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누군가의 엄마로 살기 시작하면 나의 행복과 즐거움에 대한 주도권은 그 '누군가'가 쥐게 됩니다. 그로 인해 결국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관리하지 못하고, 타인의 행동이나 결과에 따라 영향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들이여,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지 마십시오. 

그것이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 모두가 함께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방법입니다. 





이전 20화 부모의 반성과 사과가 훌륭한 행동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