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가 읽어주는 세상 이야기. 페르소나
Photo by JOSHUA COLEMAN on Unsplash
제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제 모습과 행동이 불편해요.
저한테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서 영 불편해요..
원래 제 성격은 그렇지 않은데도, 사람들하고 친한 척해야 하고 사교적인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데..
또 그렇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행동하고 나면 '이게 나 맞나?' 하는 생각에 마음과 생각이 복잡해져요..'
'먹고살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어떤 때에는 이런 제 모습과 행동에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어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기본적으로 한 개인으로서 '나'라는 존재가 있으나, 보통은 독립적으로 '나'만의 인생을 살 수는 없다.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가장이나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아직도 자식의 역할을 해야 하기도 한다. 회사에 나오면 상사나 선배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후배나 부하의 역할을 해야 하기도 한다. 또한 친구들 사이에서나 다른 일상적인 관계에서도 내가 참여하고 속한 모임의 성격이나 참여자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처럼 여러 가지 행동을 가운데에는 나 스스로가 원해서 하는 행동도 있으나 때로는 상황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특정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다. 물론 자신의 자연스러운 행동 경향성과 일치하고 스스로가 원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하면 큰 문제나 갈등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특정을 행동을 하는 경우에도 그로 인한 만족감이나 즐거움이 큰 경우도 있다. 하지만 행동을 하고 난 후 영 마음이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성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도 사회적 관계를 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한다던가 사교적인 행동을 보여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인 상황이나 혹은 나와 오랫동안 보아왔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교적 행동을 보이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내가 개인적으로 싫거나 불편한 사람에게도 이와 같이 친근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상황(예를 들면 고객이나 상사 등)이 되면, 내적인 불편감이나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행동 노력(원래는 하고 싶지 않지만 억지로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함)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정도 수준이 되면,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ㅠ'라는 생각이 들거나 '(인위적인 행동을 하느라고 심리적 에너지를 모두 사용하여) 아.. 기빨려..ㅠ 너무 힘들다 정말! ㅠㅠ' 등의 반응이 나타나기 십상이다.
이처럼 '나'라는 존재는 사회적 상황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 수행 가운데에서 어떤 것들은 그나마 감당 가능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상당한 스트레스나 불편감을 주는 경우들이 있다. 이 과정에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동적 특징들은 보통 '성격'이라고 하며, 상황적인 요구에 따라서 해야만 하는 행동들을 보통 '역할'이라고 한다. 나의 '성격'과 '역할'이 유사하거나 일치한다면 별로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반면 나의 성격과 역할이 상이하거나 차이가 많이 난다면 상당한 의식적 노력과 심리적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페르소나(Persona)'라는 용어는 원래 '가면'이라는 그리스어이다. 이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으나, 다시금 재정의해 본다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만든 (가장된, 혹은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자기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자신의 타고난 성향이나 행동 경향성(즉, 성격)을 바탕으로 하여 '현재 상황에서 요구되는 역할을 수행하는 나의 모습'인 것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상황에서 각각의 페르소나를 만들어서 대처하고 있는 것이며, 다양한 상황에서 활동할수록 그에 맞는 나의 페르소나를 다양하게 만들어 활용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표현과 일맥상통하는 의미이다. 즉, '내 안에 (다양한 상황에 대한) 나의 페르소나가 너무 많아!'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성격'은 '역할'을 수행하는 범위와 한계를 결정짓는다. 각각의 상황에 따른 최적의 행동 원칙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에 맞추어 행동할 수는 없다. 본인 고유의 성향에 따라서 상황으로부터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정도나 수준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영업직의 경우에는 외향적 성격의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다. 왜냐하면 외향형 사람들의 경우에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수준 자체가 높으며, 성격적으로 사교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에 대한 에너지 소비나 스트레스가 적다. 그래서 그 안에서 즐거움과 만족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내성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 영업직을 하는 경우에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고 상당한 노력과 스킬 개발이 필요하다. 그래서 쉽게 지치거나 스트레스가 많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같은 이유로 본인의 성격과 역할에 맞추어 행동하는 수준을 정확하게 감별하고 있어야 하며, 성격과 역할 간의 균형을 적절하게 유지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만약 역할을 고려하지 않고 본인의 성격이나 성향 중심으로 행동하는 경우를 보통 '성질대로 산다!'라고 표현한다. 즉, 자신이 원하는 바나 자신이 익숙한 방식으로만 행동하는 경향이 높은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기본적인 성향을 고려하지 않고 역할에만 충실하고자 한다면, 과도한 심리적 에너지 소모로 인하여 '번아웃(burn-out)'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내향형의 사람들은 영업직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영업직에서도 내성적인 사람들도 충분히 좋은 성과와 결과를 낼 수 있다. 단, 그 방법이 전통적인 방식이나 외향형들이 사용하는 방식과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영업에는 '고객 발굴' - '고객 관리' - '비즈니스 관리' - '지속적 네트워크 관리'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외향형이 영업에 맞는 핵심적 요소는 바로 '고객 발굴'과 '네트워크 관리' 영역이다. 워낙 관계의 폭이 넓고 관리 가능한 관계의 양 자체가 많기 때문에 이를 따라가기는 힘들다. 반면에 내향형의 경우에는 '정교하고 치밀한 고객관리 및 비즈니스 관리' 등이 상대적인 강점이다. 그래서 초반보다는 갈수록 (신뢰롭고 깊은 관계를 맺는) 고객이 늘어나면서 성과도 향상되는 경향을 보인다.
사내에서 인사나 조직문화 부서에 근무하면서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슈에 대한 상담이나 코칭을 맡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외향형들은 워낙 관계의 폭이 넓고 두루두루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직무에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있는 주제나 지속적인 관계 형성과 이슈 관리 측면에서는 내향형의 사람들이 보다 진지하고 깊이 있는 상담이나 공감이 가능할 수 있다. 다만 내향형 담당자라면 이 과정에서 심리적 에너지의 소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소진'된다는 느낌을 받거나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즉, 성격과 역할이라는 차원에서 조망해보면, 현재 자신의 업무에 대한 적성이나 흥미, 그리고 일에 대한 만족이나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에 대한 '나만의 해답과 솔루션'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럼 내가 이 일이 안 맞는다는 것인가?'라고 고민을 하거나 '이 일 때문에 너무 힘들어!'라는 (특히 부정적)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 발생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긍정적인 성과나 결과를 보이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다 '큰 도움을 받았다!'라거나 '잘하고 있네!'라고 피드백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내적 고민이나 어려움을 겪는다면 현재 자신의 일에서 재미와 열정을 느끼기 어렵다.
이를 건강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재해석을 하면, '당신은 자신의 성격 상 제한점이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여 좋은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가 맞는 해석이다. 즉, 자신의 타고난 성향이나 행동 특성의 취약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 새로운 역할에 잘 적응하여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를 바로 심리적 유연성과 적응력이라고 한다.
심리적 유연성이란 '다양한 역할에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키거나 발전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심리적 적응력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나 책임에서 요구되는 바를 파악하여 그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이다. 일부 성격에 안 맞는 부분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심리적 유연성과 심리적 적응력을 바탕으로 하여 그 업무나 책임을 잘 완수하였다면 그 얼마나 훌륭한 행동인가?!
즉, 지치고 힘들 수도 있으며,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할 정도로 '나는 심리적 유연성과 적응력을 바탕으로 하여 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구나!'라는 스스로에 대한 칭찬도 아까지 말아야 한다. 이는 나의 '피로와 지쳐감'을 줄여주고, 새로운 역할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한 '에너지와 활력'을 보충해줄 수 있다. 이처럼 스스로에 대한 문제점과 한계를 인지하고 대처하는 것과 더불어 스스로에 대하여 긍정적인 칭찬과 강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균형적 사고와 이에 기반한 자기(감정)관리는 유연성과 적응력을 위해 필요한 핵심적 요소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저의 다른 글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 글 역시 저의 주요 고객분을 위해 쓴 글이기도 합니다. 그분을 비롯하여 비슷한 고민이나 부적절감을 느끼고 계셨거나, 혹은 심리적 에너지의 소진과 번아웃으로 인해서 스스로에 대해서 비판적 관점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음이 유연성과 적응력은 가지고 있으면 항상 도움되는 중요한 심리적 기능 중 하나입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때 최적의 심리적 상태를 유지하면서 죄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틀림없이 도움이 됩니다. 본인의 유연성과 적응력을 되돌아보고 그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