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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넉넉하고 여유로운 한가위?
추석이 되면, 넉넉하고 행복한 한가위가 되라고 덕담을 합니다.
그런데 명절을 지나고 나면 여러분들은 정말 마음이 행복하고 여유로워지기만 합니까?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이혼 소송이 늘어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오랜만에 가족들이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그동안 소원했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게다가 추석 보너스까지 받아서 넉넉하고 여유로운 상황이라면 오고 가는 현찰과 선물 속에서 가족의 정이 도욱 두터워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명절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스트레스나 갈등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동안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 살았기 때문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가족 내 갈등이 터질 위험성도 증가합니다.
2. 가족은 애증의 관계이다
기본적으로 가족은 애증의 관계입니다.
함께 살아왔던 시간에 어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서로 서운한 것도 있고 갈등도 있으며, 싸움도 있고 반목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매일 보고 혈육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참으면서 살아가는 것이죠.
게다가 가족 구성원들이 대부분 성인이라면 더욱 긍정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각자 자기 통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고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점차로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즉, 서로 갈등이나 반목이 생길 시공간적 접점이 적어지기도 하고,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느라고 잊게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명절이 되어서 다 같이 모이게 되면 이와 같이 상황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혹은 어쩔 수 없이 회피하게 되었던 갈등들이 재현될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입니다.
3. 명절에는 절대로 서운함을 말하지 말라
특히 명절이 되어서 가족들끼리 술자리라도 갖는다면 잠재된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을 뚜렷하게 높입니다.
오랜만의 술자리와 (처음에는) 유쾌한 분위기로 인하여 말하는 사람도 긴장감이 감소하고 통제력이 떨어지며 감정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듣는 사람도 긴장감이 감소하고 통제력이 떨어지며 감정적인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서로 간에 그동안 잘 지냈는지, 별일은 없었는지, 좋은 일은 무엇이 있었는지, 각자 삶을 살아가느라고 고생했다고 위로와 지지의 대화만 나눈다면 낫습니다.
그런데 '너는 말이야..'로 시작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마음속의 (부정적인) 말을 전하거나, 서로 얼굴을 보지 않아서 묵혀 놓았던 감정이라도 표현하는 날에는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좋은 마음도 쌓아놓으면 커지겠지만, 서운하거나 불만족스러운 마음은 산에 굴러내려 오는 눈덩이와 같습니다.
게다가 가족이라면 일방적인 서운함이라는 것은 없으며, 서로 간의 입장에 따른 각자의 서운함과 아쉬움이 있는 법인 것을...
한쪽이 털어놓고 표현하기 시작하면 다른 쪽도 당연히 털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난 설날 이후로 묵혀 왔던 잠재된 갈등과 감정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4. 고부 갈등 & 장서 갈등
게다가 명절이면 항상 이야기되는 고부갈등은 명절 때에 극에 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장서 갈등도 고부 갈등 못지않게 큰 갈등 요소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고부 갈등이나 장서 갈등은 명절 때가 되면 더욱 자주 발생하고 부각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물리적으로 다른 때보다 함께 공유하는 시간 자체가 길 뿐 아니라 명절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필수적 활동(예를 들어, 제사나 음식 준비 등)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부 갈등이나 장서 갈등이 심화된 것은 사회적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전통적인 가부장제적 관점이 약화되고 페미니즘이 부각되면서 가족 내 성역할에서 큰 변화가 발생하였습니다.
변화의 과정에서 이전의 정답을 대신할 수 있는 절대적인 대안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뚜렷한 정답이 없는 혼란스러운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당연하다고 인정되던 규칙이 약화되면서 각자의 경험과 집안 분위기, 그리고 부부간의 협의에 따라서 각자의 정답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정이며, 누구 집에 먼저 가며 얼마나 있을 것이고 상대방 가족 집에 갔을 때 어느 정도의 활동을 기대하는가 하는 문제는 모두 감정적 대립의 위험성이 있는 갈등 요소들입니다.
만약 이에 더하여 최소한 20~30년 전의 사회적 기준을 판단하시는 원가족 부모님들까지 참전한다면 갈등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은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유발하면서 갈등이 극대화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때 발생했던 갈등이나 감정들은 이번 명절 때 터지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터질 활화산과 같이 폭발 에너지를 축적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5. 적극적인 회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그런데 생각해 보면, 과연 가족과 관련된 애증과 갈등은 해결될 수 있을까요?
부모의 입장에서는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식들의 입장에서도 20~3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이슈들인 것을...
이번 명절에 갑자기 서로의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서 서로의 부족하고 아쉬웠던 점을 모두 개선하고 해묵었던 감정의 골이 메워져서 건강하고 바람직한 새로운 관계 형성이 가능할까요?
게다가 함께 생활하면서 매일매일 불편함을 겪을 때에도 해결하지 못했던 애증과 갈등이 일 년에 몇 번 밖에 못 보는 현실적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나 개선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기대 아닐까요?
가족과 관련된 갈등이나 이슈들을 해결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적극적인 소통과 교류를 통한 축적된 감정의 해결, 그리고 각자의 변화된 모습에 기반한 새로운 관계 형성을 통해서 건강하고 긍정적인 관계 경험들을 축적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면 됩니다.
이와 같은 방법은 가족뿐 아니라 일반적인 관계에서도 통용되는 정석에 가까운 해결방안입니다.
그런데 가족은 가족 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방법이 잘 적용되지 않거나 때로는 소용없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가족은 사회적 관계에 비하여 훨씬 더 본연의 성격적 특징들에 따라 행동하게 되며 절제하거나 조절되지 않은 감정적 행동을 보이는 심리적 공간입니다.
게다가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서 부모-자녀 관계가 드라마틱하게 변화하게 되며,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의 통제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부모와 이제 성인으로써 독립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자녀들 간의 권력 투쟁(?!)이 난무하게 됩니다.
특히 서로 간에 복잡 미묘하게 얽혀 있는 심리적 복잡성으로 인하여 (가족 외 다른 사람들의 말은 잘 듣고 수용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가족 간의 조언이나 판단에 대해서도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사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심리적 대응 방법은 '적극적인 회피'입니다.
즉, 최대한 갈등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서로 피하고 형식적으로 대응하면서, 최소한의 역할(간단한 명절 인사 또는 제사만 지나고 밥만 먹고 헤어지기 등, 혹은 일 핑계로 이번 명절에는 못 가겠다고 하고 가지 않기 등) 수준에서만 교류하는 것입니다.
특히 가족 내에 완고한 성격의 구성원이 있거나 갈등이나 문제를 유발하는 사람이 있다면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적극적인 회피' 뿐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면 궁극적으로는 "의절(가족 간의 손절)"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6. 그리운 아버지를 추억합니다
그런데 추석의 고유한 의미와 기능은 무엇일까요?
추석은 온 가족이 모여 올 한 해 열심히 노력했던 농사의 성과들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석에는 '넉넉하고 풍성한'이라는 형용구가 붙는 것입니다.
더불어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넘기도록 해주신 조상들께 한 해 농사의 성과물을 바치면서 감사하는 '제사'라는 의식을 치르는 것입니다.
추석의 목적은 한 해 농사의 성과를 공유하고 그에 기여했던(?) 사람들께 감사하는 것이 원래의 의미입니다.
세상과 산업이 변화하여 이제는 농사의 성과물을 나누는 것 자체는 의미가 많이 퇴색하였지만 그래도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서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고 조상님들께 (이제는 거의 형식적인) 감사를 드리는 과정만이 남았습니다.
즉,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해묵은 갈등을 들추고 감정싸움을 하는 것이 메인이 아니며, 그리운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것이 더 메인인 행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추석과 같은 명절이 되면 유난히도 함께 하지 못하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생깁니다.
음식이 가득한 제사상을 차리지는 않더라도 "식구(食口)"라는 말처럼 같이 식사하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물론 서운하고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있겠지만, 때로는 서운하고 힘들었던 마음이 앞서서 다툼이나 갈등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명절의 더 큰 의미이며 고유한 가치인 서로에 대한 걱정과 안부, 그리고 그동안 못 나누었던 그리움과 덕담을 먼저 나누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명절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이 글을 보실 때면 차례를 마치시고 일련의 명절 행사(?)를 다 마치신 후이겠지요?!
만약 명절 동안에 불편한 마음들이 있으셨다면 이 글을 읽으시고 '맞네! 명절이면 불편한 마음이 생길 수 있는 거네!'라고 생각하고 좀 더 편안해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큰 문제나 갈등 없이 무난하게 명절을 보냈다면 성숙하고 지혜롭게 잠재적인 갈등이나 이슈에 대처하고 행복한 명절을 보낸데 대한 감사함을 즐기시면 됩니다.
남은 명절, 즐겁고 편안하신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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