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sens commun n'est pas si commun
나는 진중권씨의 토론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기확신이 너무 강하고 어조도 공격적이라, 상대방이 화를 내기 쉽기 때문이다. 토론이라는 것이 양쪽 이야기를 다 듣자고 하는 것인데, 상대방을 화나게 하고 헛발질하게 하는 것이 의도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간에 내 입장에서는 크게 유익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토론의 가장 큰 원칙은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을 설득하라는 것인데, 그런 방식으로 청중을 설득하려는 것은 최소한 나에게는 유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꽤 일관성이 있는 사람이다. 다만 사람에게 일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 생각에게 일관성이 있는 편이다.
최근에 조국사태로 인해 진중권씨가 변절자 취급을 받는데,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꽃은 언론에 의한 통제지 파벌만 만들어서 아무나 정치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인이 지지하던 사람이지만 본인의 원칙과 기대에 맞지 않았을 때 당연히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사이에서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철저히 본인의 원칙과 사상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걸 이해하지 못한 어느 소설가는 친구한테 너무한다고 뭐라고 하던데, 이분은 행여 절대 정치하시면 안될 듯 하다. 미치도록 하고싶어 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테미스의 눈이 가려진 것은, 친구 보지 말라고 가려진 것이다. 나는 목소리만 높고 저질스러운 사람들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싶지 않다.
조국씨는 개인적인 능력이나 업적에 대한 의구심을 떠나서, 그리고 자녀문제도 그렇다치고 넘어간다 해도 본인의 재단관련한 거래들은 이건 대놓고 나랏돈 훔치는 짓을 한 것이다. 사학재단의 고질적인 병폐라서 가재는 게편이라고 서로 들추기 싫어하는 것같아서 공론이 되지 않는 것 같은데 나는 이런 '법비' 스러운 짓거리를 혐오한다. 자녀문제나 이런 문제들은 귀여운 편법에 가까운 것들이라 어느정도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재단관련내용들은 거의 사기수준이다. 물론 증명할 수는 없다, 법대로 한 것이니까. 하지만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법비맞다. 김기춘같은 사람이 그렇게 법을 헤집어놓으며 나라를 좌지우지 한 것도 어찌할 수 없다. 법대로 한 것이니까. 하지만 법관들이 그리 좋아하는 실체적 진실에 입각하면 법비 맞다. 김기춘은 법률을 농단한 적도 없다, 아예 자기가 만들었으니까. 검사가 법률을 만들던 멋진 신세계였다 그 시대는.
법률 조항에는 모두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간에 해당 법률의 제정의도가 있다. 이러한 제정의도를 정확히 알고 법을 적용해야 법률이 최소한의 유연성을 잃지 않게 된다. 법률의 유연성이 사라지면 그나라는 법치가 아니라 법에의한 인치가 횡행하게 된다. 법률가가 그러한 기술적으로는 합법이지만, 제정의도와는 전혀상관없이 법을 이용했다면 과연 그가 법률가로서 자격이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구멍 메우라고 자리 줬더니 그 구멍으로 요리조리 사익을 추구하는 일이 횡행하는 현재의 한국 사법 시스템을 개혁하고자 하는 것은 좋은일이다, 하지만 나는 김기춘이든 조국이 사법개혁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스스로 법률과 자신의 이익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국민을 위해 법률 시스템을 개혁할까? 그렇다고 조국이 대단한 법학자도 아니고, 실천 법률가로 살았던 적도 없는 사람이다. 차라리 김기춘은 그런 경험이라도 있지, 물론 개혁의지가 제로정도가 아니라 마이너스라는 문제가 있어서 총점은 부호 자체가 다르다. 조국이 30점이면 김기춘은 -90점 정도가 아닐까. 천재가 흑화되면 재앙이다.
그래서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진중권씨는 그가 늘 그랬듯이 그냥 비판한 것이다. 별 내용도 없다, "친구야 왜 그랬냐 나 너한테 좀 실망했다, 이제 힘들어질거같으니 무리해서 하지말고 내려와서 기여하자" 수준이다. 그런데, 거기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가관이다. 친구한테 어떻게 그러냐느니, 변절했다느니. 과연 그 사람들이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싶다. 조국을 국민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인 것 같다. 법비들이 더 많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법률가들이 많다. 이런분들은 사법개혁을 못 할까? 개혁이란 대타협에 가깝다. 사기집단인 제1야당에서까지 인재를 영입하라고는 못하겠지만, 다른데도 초당적으로 영입할 법무장관감이 한둘이 아닌데 왜 조국만 고집하나.
내가 다른데 가서 우리 가족의 험담을 할 수는 없지만, 집안에서 대놓고 한소리 할 수는 있다. 다른데 가서 험담하면 문제해결이 되지 않지만, 집안에서 하면 최소한 문제를 인식시킬 수는 있다. 진중권씨가 어디 뭐 다른나라 가서 조국 욕한 것도 아니고, 집안에서 본인 원칙과 사상에 입각해서 잘되자고 하는 이야기를, 설령 그것이 설득력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인신공격이나 변절자 취급하며 비난하는 것은 제대로 된 반응이 아니다. 그 분들의 관점에서 '집안' 이라는게 한국이 아니라 본인이 지지하는 정당이라는 확신만 들어 씁쓸하다. 재미있는 것은 그분들은 공식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정당조차 없는 분들인데 말이다.
이번에 진중권씨의 비판과 그 비판에 대한 소위 '전 동지' 들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볼테르 수준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인플루언서중에 꽤 있지 않을까라는 나의 희망은 아주 황망히 처 발렸다. 한국에서의 인플루언서는 그냥 어쩌다 유명해진 거 외엔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고, 정작 뛰어난 사람들은 조용히 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제1야당은 그냥 이익만되면 갑자기 얼굴바꿔 자기들한테 원수같았던 진중권을 천사로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무식하면 줏대라도 있어야 정치인이지, 눈앞의 이익만 보면서 정치를 하니 나라가 엉망이 됐지.
마지막으로 앞뒤 안가리고 본인의 사상에 충실한 진중권씨의 객기에 찬사를 보내며, 그를 저질스럽게만 비난하는 분들께는 "지랄만 잘한다고 똑똑하고 국민을 위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을 올리며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