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도시락
한없이 외로워지는 날이 있다. 볼 때마다 즐거워졌던 미드<프렌즈>를 봐도, 세상에 우울한 사람은 없다는 듯 마냥 행복을 이야기하는 노래를 들어도, 갓 태어난 것처럼 반짝이는 햇살 아래를 걸어도, 유월의 하늘 아래 더없이 푸른 숲을 산책해도 낫지 않는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것 같은 날. 한없이 슬프고 아프고 쓸쓸해지는 날.
이런 날이면 누군가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를 다독여주고, 보살펴주고, 눈물이 날 것 같진 않은지 물어봐주었으면 좋겠다. 눈물이 나면 울어도 된다고 해주었으면 좋겠다. 네 마음이 어떤지 얘기해달라고 다정한 눈으로 말을 걸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인생은 대부분 혼자이고, 이런 날은 특히 더 그렇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나를 위해, 닭죽을 만들어본다. 따뜻하고, 따뜻하고, 따뜻한 한 그릇을.
냉장고를 열어 손질된 닭 조각들을 꺼낸다. 닭도리탕을 만들어 먹으려고 사 둔 것인데, 시간이 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다. 혼자 먹을 거니 세네 조각이면 되겠지. 살코기가 있어야 씹을 맛이 날 것이니 살이 두툼하게 붙은 것들로 골라내본다. 중간 크기 냄비를 꺼내 물을 받는다. 닭 조각들을 넣고 잡내를 없애줄 소주를 붓는다. 마늘 한쪽 정도를 다져서 넣는다. 참 이상하지, 마늘을 냄비에 넣기만 해도 맛있는 냄새가 난다. 어렸을 적부터 맡아온 익숙한 냄새. 여름이 오고 날이 더워지면 엄마는 마늘을 닭 뱃속에 가득넣어 백숙을 만들어주곤 하셨지. 아, 그 기억 때문인가보다. 이렇게 외로운 날에 닭죽을 만들고 싶은 건. 마늘 냄새와 함께 떠오르는 다정했던 시절. 이제 엄마와 같이 살지 않지만, 그 그리운 시간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가스렌지의 푸르고 붉은 불이 닭을 익힌다. 나중에 밥을 넣어서 다시 익힐 것이니 푹 삶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거품을 두 번 정도 걷어내고 불을 끈다. 냄비에서 닭 조각들을 꺼내어 식힌다. 적당히 식은 닭의 살을 발라낸다. 이런 날에는 굳이 이런 수고를 하고 싶다. 나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뼈가 거슬리지 않도록 곱게 살을 발라낸, 나를 위한 닭죽을 만들면서요. 이렇게 받을 사람 없는 말을 하면서.
냉장고에 얼려둔 밥을 꺼내 전자렌지에 4분 동안 돌린다. 얼음같이 꽝꽝 얼었던 밥이 막 지은 것처럼 뜨끈해진다. 이 닭죽을 먹으면 내 마음도 그렇게될까. 아, 감자도 넣어야 겠다. 하지감자라 포슬포슬 따뜻한 맛을 낼 것이다. 감자칼로 껍질을 벗기고 얇고 어슷하게 썰어낸다. 버리지 않고 남겨둔 닭 육수에 닭고기와 밥, 감자까지 한 번에 넣는다. 이제 중불로 켜고 가만히 젓기만 하면 된다. 강불에 하면 죽이 눌러붙을 것이고 약불에 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중간의 불꽃. 이 정도의 마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불행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강불이거나 약불이겠지. 너무 뜨거워서 누군가를 괴롭게 하거나, 너무 차가워서 나를 괴롭히겠지. 가스렌지 앞, 냄비와 부딪히는 주걱 소리. 타지 않게, 설익지 않게 그 정도의 흐름과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릇에 닭죽을 담아낸다. 티백을 넣어 끓여낸 보리차도 한 컵 따라낸다. 바깥은 뜨거운데 슬프고 아프고 쓸쓸해서 차가운 맘. 닭죽을 한 숟가락 먹고, 보리차도 마신다. 맘이 따뜻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대로 인 것 같기도 하다. 눈물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 이 정도라면 충분하겠지. 우리는 어쨌든 내일 또 걸어야 하니까, 그 걸음에 작은 위로가 된다면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