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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닮은 가족

눈만 닮은 가족

by 강윤희

욕실 청소를 할 때마다 짜증이 난다. 욕실 화장대에 쓰다만 작은 테이프가 여기저기 붙어있다. 고3 큰딸이 사용한 쌍꺼풀테이프다. 잔소리를 해도 여기저기 붙여놓는다. 큰애는 내 눈을 닮아서 쌍꺼풀이 없는 눈이다. 눈두덩이는 부어 보인다. 외출을 하려면 화장을 하느라 몇 시간이 걸린다. 이 쌍꺼풀 테이프는 필수다. 우리 때는 대학에 들어가서야 어설프게 서툰 화장을 하고 다녔다.


서툰 화장이라도 열심히 했던 대학시절, 화장을 할 때마다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예쁘게 선을 쭉 빼도 눈두덩이에 아이라인이 묻어났다. 쌍꺼풀이 없는 내 눈은 아이라인을 그릴 때마다 눈두덩이에 파묻혔다. 아이섀도를 바르는 날에는 두툼한 눈두덩이가 한 대 맞은 것 같다. 잠을 자다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이제 일어났냐는 둥, 밤에 라면을 먹었냐는 둥, 부운 눈 얘기로 인사를 받았다. 내가 쌍꺼풀 수술을 결심하게 된 계기다. 친구가 앞으로는 무쌍꺼풀이 대세라면서 지금 내 눈이 좋다고 했다. 자기 눈은 쌍꺼풀이라 너무 인상이 진해서 싫다고 한마디 얹었다.

“지우개로 지우다 만 것 같은 희미한 얼굴은 좋겠냐?”

난 쌍꺼풀이 부러워서 핀잔을 던졌다.

엄마를 볼 때마다 쌍꺼풀을 해달라고 졸랐다. 엄마아빠의 책임이 크다고 했다. 엄마가 해줘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그러다가 제 풀에 지쳐 잊어버리고 살았다. 시집을 갔고, 아이도 낳았다.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얼굴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어느 날 엄마 아빠가 상안검 수술을 받게 됐다. 수술을 하는 김에 나, 엄마, 아빠, 여동생, 우리 남편까지 다 같이 했다. 덕분에 가족할인도 받았다. 병원에서 가족할인은 처음이라 했다. 수술비는 엄마가 냈다. 엄마는 의사 선생님에게 쌍꺼풀이 풀리지 않도록 크고 깊게 해달라고 했다. 돈 안 아깝게 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문제는 수술 후에 생겼다. 남들은 부작용이 제일 걱정이라는데 우리는 수술한 기간이 문제였다. 추석연휴기간에 쌍꺼풀 수술을 한 것이다. 추석날 아침부터 온 가족이 선글라스를 끼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다고 시댁 어른들에게 혼났다. 친정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빠가 아침 차례상에 절하면서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큰댁 어른들에게 등짝을 후려 맞았다. 우리 가족은 추석연휴에 어른들 잔소리를 견뎌냈다.


“엄마 나도 쌍꺼풀 수술해 줘”

올 것이 왔다. 큰딸이 쌍꺼풀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엄마, 친구들이 요즘 무쌍이 대세라고 하지 말라는데... 하지 말까?”

자신감 있게 해달라고 하더니 막상 무서운가 보다.

“무쌍이 대세라고 하는 얘기는 20년 전에도 그랬어. 무쌍이 대세는 개뿔. 해! 쌍꺼풀 해!”

큰딸은 유명한 강남역 3번 출구 그 어느 병원에서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내가 수술한 병원을 고집했다. 내 눈을 닮았으니 내가 수술한 병원에서 받아야 한다고 우겼다. 여러 군데 견적을 받고 싶다는 큰애의 의견을 묵살했다. 3대가 같은 곳에서 수술을 받게 된 셈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닮은 눈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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