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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이쁜 여자는 없어

있으면 뭐 어쩔 건데!

by 강윤희

사진첩을 정리했다. 애들 어릴 때 사진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한 장 한 장 사진을 봤다. 요즘은 핸드폰으로만 사진을 찍어서 사진이 많이 없다. 한 번은 애들 사진을 저장한 외장하드가 고장 나서 많은 사진이 사라졌다. 그 이후로는 클라우드나 USB 등 여러 군데 사진을 저장해 놓는다. 소장하고 싶은 사진은 꼭 인화한다. 옛 사진들을 보다 보니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애들 키울 때는 힘들었는데 사진을 보니 행복했던 기억만 난다.


큰애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즈음, 사춘기가 찾아왔는지 평소답지 않게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아침에 늦잠이 늘었다. 예전 같이 깨우기가 쉽지 않았다. 잠을 깨우는 것부터 아침마다 전쟁이다. 티격태격 싸우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차로 학교에 데려다준다고 했는데 재인이는 거절했다. 아이들이랑 학교 근처에 모여서 같이 간다고 했다. 친구들이랑 모여서 등교한다고 그러더니 자주 지각을 했다. 지각하는 걸로 잔소리를 많이 했다. 하교 후 라이딩을 하러 학교 앞에 가면 학원에 가야 하는데 늦게 나타나서 애를 태웠다. 잔소리를 잘하지 않는 나인데도 애가 사춘기가 되니 잔소리를 달고 살게 됐다. 애가 옷도 얼마나 까다롭게 입는지 튀는 옷도 안 된다, 유행에 뒤처져도 안 된다, 하면서 거지 같은 옷을 골랐다. 거기다가 조금씩 화장을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없는 사춘기 소녀를 보고 있자니 복장이 터졌다. 이렇게 애들이 크나 싶다가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애들 하교할 시간이 지나서 재인이 친구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재인엄마야. 학교 라이딩 하다가 재인이 봤는데, 재인이가 좀 노는 애들이랑 어울리는 것 같아. 내가 불러서 데려올까 하다가 재인이가 난처할까 봐 그냥 왔어. 재인이 노는 애들 무리랑 같이 어울리는 거 알았어?”

당황스럽고 창피했다. 아이에게 신경을 안 쓰는 엄마처럼 보였을까 싶었다. 재인이 걱정이 먼저 들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먼저 든 것도 화가 났다. 날라리처럼 보인 재인이를 꼭 혼내 주리라 마음먹었다.


재인이가 학원 수업을 다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 보자마자 화가 나서 쏘아붙였다. 요즘 누구랑 노는 거냐. 다른 학부모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가 창피했다. 너 동네 창피하게 날라리냐면서 애를 몰아붙였다. 재인이는 자기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그 엄마 얘기만 하는 거냐면서 울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재인이 얘기 먼저 들어볼 걸 하고... 하지만 내가 밀릴 수 없었다. 여기서 밀리면 진다는 생각에 재인이를 쏘아봤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둘 다 눈이 벌겋게 화가 나 있었다.


재인이는 화장실에 있는 남편에게 쿵쿵거리면 걸어가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엄마랑 이혼하면 안 돼? 꼭 엄마여야 해?”

남편은 화장실에서 볼일 보다가 깜짝 놀라 다시 물어봤다

“응? 뭐라고?”

“엄마랑 이혼하면 안 되냐고? 난 엄마랑 못 살겠어!”

“어... 그럼 골라봐 이쁜 엄마가 좋아? 착한 엄마가 좋아?”

“이쁘고 착한 엄마랑 다시 결혼해.”

“안돼. 세상에 착하고 이쁜 여자는 없어. 하나만 골라.”

환장할 대화를 하고 있는 부녀였다. 둘 다 쥐어박을 수도 없고.


착하지도, 이쁘지도 않은 아내랑 사느라 고마웠네 이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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