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짜 사기꾼?
21살. 남편을 처음 만난 곳은 내가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의 아래층, 편의점이었다. 남편은 형님이 운영하는 편의점에 놀러 왔었다가 잠깐 편의점에 들른 나를 보고 카페로 따라 들어왔다. 그 후에 손님으로 자주 카페에 왔다. 올 때마다 내 나이를 묻고 남자친구가 있는지, 내 개인적인 것들을 궁금해했다. 속으로는 좋았지만 쉽게 보이고 싶지 않아 괜히 튕기며 남자친구가 있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시작된 연애는 4년 동안 이어졌다. 데이트 때는 둘 다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주로 맛집 탐방이었다. 새벽 야식까지 섭렵하고 다녔다. 연애하면 살이 빠져야 하는데 점점 옷 치수를 하나씩 크게 입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대학 졸업하면 빠진다고 남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 남편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는지 내가 계속 살이 찌는데도 맛집 데이트를 최고로 즐거워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 얘기가 오갔다. 신랑 쪽 할머니가 쓰러졌다. 곧 돌아가실 것 같다며 돌아가시기 전에 식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 결혼 날짜를 빨리 잡으라고 했다. 이건 뭐 죽도록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 아니라 할머니 때문에 해야 한다니 당황스러웠지만 딱히 안 할 이유도 없었다. 뭐에 휩쓸린 듯 휘뚜루마뚜루 결혼 준비를 했다. 결혼 준비하면서 엄마랑 신랑은 만날 때마다 옥신각신이었다.
“장모님이 윤희 대학 졸업하면 살 빠진다면서요?”
“아이고 졸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 이제 결혼하면 다 빠진다. 걱정하지 마라.”
“그럼, 장모님 믿고 결혼합니다이!”
둘이서 뭘 믿고 저런 약속을 하고 있는지 원.
정신없이 휘리릭 결혼식을 올리고 우리는 부부가 됐다. 부부라고 하지만 아이가 없어서 그런지 연애 시절이랑 다를 게 없었다. 거의 데이트로 외식을 했고 각자 집에 가는 대신 같이 신혼집에 오는 게 다를 뿐이었다. 엄마 잔소리가 없는 신혼집이 생기니까 맘이 더 편해졌는지 내 몸은 더 푸근해졌다. 가끔가다 친정에 가면 남편이랑 엄마랑 또 옥신각신이다.
“장모님이 결혼하면 살 빠진다고 했는데. 결혼 전이랑 지금이랑 별반 차이 없는데요?”
“김서방아. 여자는 애기 낳아야 살 빠진다. 모유 먹이고 애들 뒤 쫓아다니다 보면 안 빠지려야 안 빠질 수가 없어. 믿어봐 봐.”
우리는 애를 갖지 않았고 정신 못 차리고 철없이 살았다. 살림은커녕 놀러 다니기 바빴다. 그러다가 6년 만에 아이를 갖게 됐다. 아이를 낳으면서 엄마 아빠의 삶이 시작됐다. 의외로 남편은 애를 너무 좋아했고 한시도 아이를 품에서 내리지 않았다.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 분유로 수유했다. 그래서 수유도, 목욕도 애기아빠가 다 했다. 난 소파에 앉아 둘을 구경하는 것이 삶이 낙이었다. 첫째는 너무도 순해서 힘들게 우는 법이 없었다. 육아가 힘들지 않아서 그런지 임신하면서 찐 살은 그대로였다.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남편이 엄마에게 시비 아닌 시비를 건다.
“장모님은 사기꾼이네. 대학 졸업하면 빠진다. 결혼하면 빠진다. 애 낳으면 빠진다고 해놓고선 이게 이게 뭡니까. 네?”
“김서방아. 나는 내 딸 이쁘게 낳고 길렀는데 김서방이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멕이면서 살 찌운 거야. 생각을 해보게 나랑 있을 때 살이 쪘는가. 김서방이랑 다니면서 살이 쪘는가. 이거 다 김서방 탓이야.”
내가 두 사람 싸움에 끼어든다
“아 정말, 왜 내가 돈 들여 찐 살에 뭐라 그러는데?!”
엄마랑 남편은 내 말을 듣지도 않는다. 둘이서 또 옥신각신 다투고 있다. 니 탓이네 내 탓이네 그러면서 아이를 서로 안겠다고 또 티격태격이다.
23년 나랑 사는 동안 남편은 우리 엄마 아들처럼 지냈다. 장모님 잔소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개구쟁이였다. 친정집 갈 때마다 주방에서 냄비를 다 뒤져보며 먹을 것이 없다고 장모님에게 투정 부렸다. 장모님이 만든 김치는 정말 맛이 없다며 어떻게 이렇게 맛없게 할 수 있냐며 팩폭을 날리기도 했다. 둘이 소파에 앉아서 내가 살림도 못하고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서로 흉을 보고, 엄마는 졸업하자마자 데려갔으니 반품하지 말고, 데리고 살라고 했다. 둘은 또 내가 살이 더 찐 것 같다며 의기투합해서 폭풍 잔소리를 날렸다. 그런 때는 또 장서 사이가 죽이 잘 맞는다. 장모님은 사기꾼이라며 속았다고 신세 한탄과 하소연할 때마다 엄마랑 나는 남편을 보면서 혀를 찼다.
사실 사기꾼은 시할머니이다. 쓰러져서 곧 돌아가신다는 할머니는 12년을 더 사시고 딱 100세에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