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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빠에 그 딸

by 강윤희

남편이 육종암에 걸렸다. 처음 듣는 암이었다. 왼쪽 등 날개뼈 아래 불룩 튀어나온 종양을 제거했다. 우린 이것으로 암은 끝난 줄 알았다. 혹 하나만 제거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근육에 붙은 간단한 암이라고 생각했다. 암 진단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겠다며 남편은 웃었다.



항암이 필요하다고 해서 항암을 시작했다. 3개월 후 폐에 하얀 점이 보인다고 했다. 전이암이다. 폐 수술도 했다. 다시 항암을 시작했다.


퇴원 후 집에 있는데 남편이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병원에 왜 누워있다 보니 근육이 빠져서 그런 거 아냐?"

"그러게, 다리 움직이는 게 힘이 드네."

병원에 문의하니 한시라도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서둘러 서울행 비행기를 예매하고 원자력 병원으로 향했다. 이것저것 검사하더니 뇌에 종양이 생겨서 운동신경을 누르고 있다고 했다. 충분히 암을 잡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안도했다. 사이버나이프라는 새로운 의학 기술로 머리에 있는 암을 잡았다. 제거를 한 게 아니라 암만 죽인 거라서 암덩어리는 그대로 머리에 있었다. 그 덩어리가 운동 신경을 계속 누르고 있어 남편의 다리는 여전히 불편했다.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면 두발 멀쩡히 잘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약을 복용하면 면역력이 떨어져 암을 이길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지팡이를 샀다. 우산 손잡이 같은 지팡이를 사서 걷게 했다. 남편에게 젊은 사람이 지팡이를 쓰니 영국 신사 같아 보인다고 위로해 줬다.


남편은 하루 종일 병원에서 핸드폰만 봤다. 보기만 해도 안쓰러운데 핸드폰만 하고 있어서 답답했다. 그렇다고 내가 달리 위로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산책 가자!"

답답해서 병원마당에 나가자고 했다.

"아니, 잠깐만. 나중에 하자."

다리가 불편해서 안 나가려 하는 건지 계속 꾸물거렸다

"뭘 그렇게 들여다보는데. 뭐가 그리 재밌어?"

"아, 이거 장애인등록하려고, 장애인 주차칸 쓰면 좋잖아! 그런데 이게 등록하는 게 되게 어렵네, 신청하고도 오래 기다려야 되나 봐. 힘드네 이거."

하루 종일 뭐 하나 했더니 장애인등록을 하려고 매뉴얼을 읽고 있었다. 장애인 주차칸이 부러웠다면서 핸드폰 속 장애인 등록 내용을 보여줬다. 어이가 없었다. 지금 장애인 등록이나 할 때냐고!

장애인 주차장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등록도 되기 전에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정신이 없었다. 병원살이 하면서 살이 찌다 보니 맞는 상복이 없어 장례지도사가 난처해했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겨우 맞는 상복을 구해왔다. 장례식 첫 시작부터 애도의 시간 따위는 없었다. 장례지도사의 설명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손님들도 너무 많았다. 일일이 맞절을 하다 보니 무릎에 통증이 밀려왔다. 친구가 무릎보호대를 사 왔다. 꽉 끼는 상복을 입고 무릎보호대를 차고 하루 종일 조문객을 맞이했다. 밤에는 지쳐 쓰러졌다. 장례식이 이렇게 바쁠 줄 몰랐다. 조문객이 먹을 음식을 모자라지 않게 중간중간 주문을 해야 했고 밀려오는 조화와 조문을 받아야 했다.


아이들은 아빠 영정사진을 보지 않았다. 영정사진을 등지고 앉았다. 고2, 중3인 두 딸은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문제집을 풀었다. 내가 사이코패스 같다고 아빠 장례식에 시험공부는 아닌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애들은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큰애는 문제집에 머리를 파묻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문제집을 푸는 걸 조문객들은 이상한 눈으로 봤다. 아이들이 슬픔을 견디는 방법이라고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었다. 조문객이 가고 난 후 피곤함에 찌들어 있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큰애가 살며시 미소를 띠며 옆에 앉았다.

"엄마 물어볼 게 있는데."

"응? 뭔데?"

"나 한부모 전형으로 대입원서 낼 수 있어?"

피식하고 웃었다. 그게 머릿속에 생각이 나드나. 그 아빠에 그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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