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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 잠봉 크림 파스타에게 흔들리다

하남 리꼬 화덕 피자

by 크리잇터

이번 주에도 너를 맛났어, 이름마저 어여쁜 '리꼬'에서.


잠실역에서 프랑스산 로제 와인 한 병을 사고, 유니클로에서 양말도 두 켤레 샀어.

요즘 과소비가 많은 것 같아 걱정이 많아졌는데, 그 걱정마저 소비로 풀고 있더라?!

하지만 그런 것들은 잠시 접어둘래. 오늘은 널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와인을 담아 준 봉투가 제법 길고 크길래 거기에 내 짐을 꽂아 넣은 채, 하남행 광역버스를 탔어.

퇴근길에는 처음 타 보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아주 길게 줄을 서있더라.

다들 피곤했나 봐, 피자 위 바질처럼 축-처진 모습이었어. 물론 난 예외야.


버스에서 내려 한 3분 정도 걸어가니 단번에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겠더라.

주변 가게들이 문을 닫아 골목이 꽤 컴컴했는데, 딱 한 군데서 오렌지색 조명이 새어 나오고 있었거든.

전체적인 인테리어가 인상 깊었어. 이런 곳에서 너와의 데이트라니.

층고가 높아 시야가 탁 트이고 차분한 조명 덕분에 설레는 마음을 잠시 눌러 둘 수 있었지.

높은 층고 덕분에 벽면에도 선반을 달아 홀 토마토 캔과 와인병을 디피 해놓고, 입구에는 카푸토 밀가루 포대가 쌓여있어서 믿음직스러웠어.


그중 내 눈에 가장 잘 띄었던 건, 주방 한 구석에 떡하니 자리 잡은 빠알간 화덕.

매니저님과 직원들 유니폼이 블랙 계열이라 빨간 화덕의 존재감은 유달리 돋보였어.


첫 주문을 말해서 뭐 하겠어, 당연히 마르게리따지. 너의 가장 담백하고 순수한 얼굴을 맛날수 있으니까.

늘 말하지만 난 네 꾸밈없는 모습이 제일 좋아! 화려한 치장 없이도 넌 충분히 사랑스럽거든

아! 이번엔 잠봉 까르보나라도 초대했어.

아무래도 오늘 너의 룩은 빨간 토마토니까, 하얀 크림 베이스가 너랑 더 잘 어울릴 것 같았거든.

그리고 얼마 후, 자신 있는 미소를 띤 직원 분의 손을 잡고 나타난 네 모습을 보자 내 얼굴엔 환한 웃음이 번졌어. 올라간 입꼬리는 귀에 걸려 내려올 생각을 안 하더라.


토마토소스가 보일락 말락 하얗게 녹아내린 치즈, 툭툭 얹은 생바질의 초록빛,

반으로 자른 방울토마토가 곳곳에 박혀 있어서 한 입 베어 물 때 과즙의 싱그러움이 훅 들어왔어.

게다가 내 마음처럼 부풀어 오른 바삭한 크러스트까지!

크게 별 다를 건 없지만, 크게 별 다르지 않아서... 그러니까 익숙해서 정말 좋았어.

하지만 그 익숙함에 변주가 하나 있었지.

크러스트를 찍어 먹으라고 내어주신 '쪽파 랜치 소스'!

새콤한 사워 맛이 느끼함을 싹 리셋시켜 주는데,

소스 하나면 우리의 사랑이 한 판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확신이 들었어.


아, 그리고 잠봉 크림 파스타! 너를 코앞에 두고 정신이 팔린 것 같아 미안했지만, 솔직히 말할게...

이 친구한테도 정말 반해버렸어.

알잖아, 나 원래 크림파스타 별로 안 좋아하고, 퓨전 스타일에는 좀 까칠하고 엄격한 거.

근데 얘는 달랐어. 부드럽게 감싸는 크림에 잠봉의 짭짤함, 그리고 꽈리고추의 매콤함과 미소 된장의 감칠맛에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물론 내 사랑의 지분은 네가 항상 더 많아. 그건 맹세할게.


그럼 다음 주에 또 맛있게 맛나자.


마르게리따 / 잠봉 크림 파스타 / 화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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