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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24시간 불 꺼질 일 없어

강동 델리치오자

by 크리잇터

이번 주에도 너를 만났어.

항상 바라만 보던 곳이 하나 있었거든.
출근길마다 꼭 걸리는 신호등 옆에 우뚝 서있는, 화덕처럼 생긴 가게.
꺼칠꺼칠한 하얀색 콘크리트 외벽에 굴뚝까지 솟아 있고,
간판에는 ‘24h’라는 낯선 글씨가 떡하니 적혀 있는 그런 가게.
‘아, 여긴 진짜 불이 꺼지지 않는 화덕이구나’ 싶었지.


어정쩡한 퇴근 시간에, 집에서 저녁 준비하고 나면 아마 9시는 넘기겠다는 생각이 들던 날,
‘오늘이다!’ 싶은 느낌이 탁! 왔어.
그 길로 두 해 넘게 바라만 봤던 그곳에 처음 발을 들였어.

문을 열자마자 벽에 걸린 ‘나폴리 인증서’랑 한 구석에 쌓여있는 ‘카푸토 밀가루’ 포대들이 눈에 들어왔어.

이 두 가지만 봐도 맛에 대한 우려는 접어두어도 좋아.

시끄러운 뉴스 대신 화덕 내부 모습이 나오는 TV를 틀어놓은 것도 재밌더라.
알고 보니 실시간이 아니라 녹화 영상이라던데, 별 상관은 없어.
시끌벅적한 세상 소식 대신 은은하게 타오르는 불길을 보는 게 훨씬 마음 편하니까.


불멍을 때리고 있다 보면 어느새 직원이 따끈해진 너를 내 앞에 데리고 와줘.

피자야 말로 정말 패스트푸드인 것 같아.
잘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힘껏 펴 동그랗게 만들고 그 위에 토마토소스와 치즈, 바질 잎을 올려

뜨거운 화덕에 후-욱 구워내기만 하면 되니까.

하얀 치즈가 녹아내린 사이로 초록 바질이 살짝 그슬려 툭툭 얹혀 있고,
올리브유에 크러쉬드 페퍼를 살짝 섞은 소스까지 곁들여주니,
그 매콤한 킥에 입맛이 제대로 돌아.

한입 베어 물면 살짝은 새콤 산뜻한 토마토가 입안을 깨우고,

주욱 늘어나는 치즈가 다시 한번 입안을 꽈악 채워.
바삭한 도우의 고소함까지 합세하면 저절로 눈이 감겨.
4조각으로 잘려 나와 양이 적어 보여도, 혼자 한 판 뚝딱 하고 나면 기분 좋게 배가 불러와.



마침 우리 집이랑도 그리 멀지 않아서,
퇴근길에 살짝 들러 한 판 먹고 가기 딱 좋거든. 날마다 대단한 이벤트가 없어도,
이렇게 편하게 너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이곳의 매력 아닐까 싶어.

앞으로도 24시간 불 꺼지지 않는 너의 화덕처럼, 우리 관계도 계속 따뜻하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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