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 라모따
전쟁 중에도 사랑을 한다고 했던가.
이번 주엔 한 시간 반짜리 회사 점심시간을 쪼개어 너를 만나러 갔다
옆 팀은 새로 생긴 타코집을 가겠다고 일찍부터 자리를 비웠고,
CD님도 점심 약속이 있다며 스윽- 사라져 버렸다.
'지금이 기회야, 도시락과 점심 약속은 잠시 미뤄둘래. 오늘은 널 만나야겠어.'
버스를 타고 내리쬐는 햇볕 아래 신사동으로 향했다.
골목골목을 지나 도착한 곳은 "라모따".
외관부터 내부까지 따뜻한 목재 인테리어가 통일감을 줘서인지,
잠시나마 이곳이 회사 근처라는 사실을 잊고야 말았다.
각기 다른 피자를 앞에 두고 삼삼오오 앉은 사람들과 혼자 앉아 직사각형 피자를 먹는 모습들이
마치 로마의 작은 골목 피자집에 온 듯 이국적이었다. 나처럼 혼자 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곳.
(물론 아직 로마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유리 진열장 위에 도넛처럼 가지런히 진열된 다양한 피자 앞에서 평소보다 한참을 고민했다.
그래도 처음은 언제나 '마르게리따'라는 원칙을 깨트리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한 종류를 더 고를까 망설이다가 결국 머쉬룸 수프를 골랐다.
어릴 때부터 양송이가 들어간 크림수프를 무척이나 좋아했으니까.
'수-푸'보단 '수-ㅍ'으로 발음해야 더 맛있게 느껴지는 내 작은 미신은 오늘도 여전했다.
"머쉬룸 수-ㅍ 주세요."
화덕이 아닌 오븐에 구워주는 피자이지만, 그것도 미리 구워 놓은 피자를 데워주는 방식이지만
그마저도 좋아 보이는 건 왜일까.
유니폼을 입고 각자 자기 일에 열중하는 직원들의 모습에서 너에 대한 진심이 느껴져서일까?
드디어 기다리던 첫 입. 꽤 진한 토마토소스가 먼저 다가오고, 툭툭 올려놓은 싱그러운 바질 향이 입안을 감싼다. 화덕에서 갓 꺼내어 뜨겁고 부풀어 오르는 도우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담백하고 부담 없다.
그리고 열기에 두 번이나 와닿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도우는 바삭하다 못해 크런치하다. 좋다.
치즈가 길게 늘어나지 않아도 입가엔 미소가 주욱-기분 좋게 늘어진다.
옆자리 사람들과 거의 합석하듯 가깝게 앉아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엿듣는 것도 재밌었다.
요즘 부쩍 우울하다는 말에 주말에 강원도를 여행하고 왔다는 부녀의 이야기가 마치 라디오의 재밌는 사연 같다. 에어팟을 벗은 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사람 사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들리는 이 작은 공간이 참 매력적이었다.
30분도 채 안 되는 짧지만 가볍고 맛있는 여행을 마쳤다.
혈당 스파이크를 방지하려 슬슬 걸어서 회사로 돌아왔다.
봄기운이 온몸으로 굴러 들어와 맞이하는 그런 날씨다.
살짝은 땀이 나지만 그렇다고 셔츠를 벗기엔 쌀쌀한 그런 온도와 습도.
함께 와서 다양한 피자를 맛보기에도 좋고, 혼자 와서 가볍고 부담 없이 먹기에도 좋은 곳.
신사동 작은 로마, 라모따에서의 점심 여행을 적극 추천한다.
다음엔 어디로 가볼까. 어디에서 너를 맛나볼까.
p.s) 그 다음날, CD님과 팀원들을 데리고 다시 다녀왔다. 넷이 각자 하나의 피자와 포르게리타라는 삼겹살 요리도 시켰다. 혼자도 좋지만 같이 오는 건 이래서 좋다. 다양한 걸 먹어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