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피제리아 마켓
5월 1일, 노동절이다. 쉬는 날인줄 알았는데, 아침부터 하늘은 더 열심히 일한다.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생각보다 묵직하다.
"집에서 푹 쉬어라"는 하늘의 계시일까.
을지로에 가려던 계획은 비와 함께 축축이 젖는다.
재빨리 머릿속 스위치를 켜고 대안을 찾는다.
배달 앱에서 스치듯 보고, ‘배달보단 매장에서 먹어야겠어’ 하며
별표를 해둔 가게가 전구 불 켜지듯 생각난다.
2.5km 정도 떨어져 있다. 도보 한 30분 정도.
평소 같으면 룰루랄라 걸어갔겠지만 이 비를 뚫고 걸어갈 자신은 없다.
버스를 탄다.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시각, 익숙하지만 낯선 동네에 내린다.
자주 가는 구역이 아니라 가게의 간판들 조합도, 거리의 표정도 낯설다.
방향 감각이 떨어져 네이버 지도 앱을 켜 놓은 채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돌려
내가 가야 하는 방향을 찾아 걷는다.
'여기가 맞는데..?'
익숙지 않은 간판 사이에서 가게를 찾는다.
빛이 들지 않아서일까 노란 백열 전구와 짙은 초록색 벽이 유독 묵직해 보인다.
초록 벽에는 분필로 화장실 지도를 그려놓았고, 가성비 와인이 적혀있다.
뉴욕에 한 발자국도 디뎌본 적 없지만 분명 뉴욕 구석 어딘가에 있을 법한 풍경일 것 같다.
습관적으로 메뉴를 훑다가, 마르게리타 설명 아래 적힌 한 줄이 눈에 들어온다.
이태리식 마르게리타와는 '분명' 다른 매력
‘이 집, 카피 잘 쓰네.’
이 한 문장이 손 끝을 당긴다.
이태리에서 온 너랑은 어떤 게 '분명' 다르려나.
일단 네가 나오는 시간이 꽤 걸렸다.
금세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이태리 출신과는 달리 기다림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등장한 모습도 사뭇 다르다. 크러스트가 부풀어 있지 않다. 그리고 더 두껍달까
아니면 나풀거리지 않는달까.
이태리식 마르게리타를 들어 올렸을 때 끝 부분이 중력에 못 이겨 추욱 처지는 반면
얘는 곧고 힘이 있다. 그래도 토핑은 마르게리따 그 자체다. 토마토 베이스에 모차렐라, 바질.
하지만 전체적 모습은 도믿노(Domino)와 헛(Hut)의 그것과 더 닮아 있다.
한 입 베어문다. 첫 입은 언제나 그렇듯 모든 재료가 들어올 수 있도록 가장 크게 벌린다.
"파삭!"
바닥에 부딪히며 빗방울이 터지듯 거친 파열음을 내며 부서진다.
수분기가 없어 크게 부풀지 않았지만 오히려 꽉 찬 밀도 때문에 씹는 맛이 있다.
1,000원에 추가한 랜치 소스. 먹는 대로 살이 붙어 버릴 것 같은 비주얼.
하지만 그런 게 중요했다면 애초에 주문조차 안 했겠지.
눈 딱 감고 크러스트를 푸욱-담군다.
빗소리는 ASMR 삼아 남은 조각들도 해치워버린다.
거창하게 뉴욕행 비행기는 못 타지만,
뉴욕풍 마르게리타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잠시 쉬어가는 날 너라는 피자를 맛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자.
열심히 일하고 살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로 뉴욕에 혹은 나폴리에 가서
널 만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