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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조금은 식어도 괜찮아

도치 피자

by 크리잇터

우리 회사에는 동호회가 있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영화 같은 걸 보는 동호회.

하지만 영화관에는 잘 안 간다.

대신에 돌비 애트모스로 빵빵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멀티방 같은 곳에 간다.

그곳에서 편하게 동호회 지원금으로 먹고 싶은 걸 시켜 먹으며

아이디어 짜내기에 바쁜 머리도 잠시 식혀본다.


알다시피 둘러앉아 먹는 배달 음식은 '삼고'다.

고열량, 고칼로리, 고자극.

떡볶이, 마라탕, 치킨. 매콤하고 튀긴 것들이 테이블을 지배한다.

그런 묵직한 테이블에 너를 쓰윽-조심스럽게 아니면 가볍게 소개하고 싶다.

그래서 전날밤부터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배달 앱에서 스크롤을 내린다.
배달 전문점은 안돼, 화덕을 갖추지 못한 곳도 탈락, 너무 튀는 퓨전 스타일도 제외.
소거법으로 하나씩 지워 나가다 보니, 남은 하나의 피제리아.

그곳에서 마르게리따와 콰트로 포르마지를 주문한다.


역시나 너는 패스트푸드 아닌 FAST 푸드다.

가장 마지막에 넣은 주문이지만, 가장 먼저 우리 방 앞에 도착한다.

도믿노나, 헛, 혹은 요즘 잘 나가는 청년의 피자를 기대했던 사람들의 외마디.

"잉? 화덕피자였어?"

둥그런 피자 위, 둥그렇게 모인 눈빛을 애써 모른 척하며 식기 전에 빨리 먹으라 권한다.

그리고 그 의아함은 환한 미소와 침묵의 끄덕임으로 변해간다.

"뭐야?! 이거 어디에서 시킨 거예요?"

담백하고 쫄깃한 도우, 부담 없는 토핑.

식었지만 그래서 더 냠냠 쩝쩝 입 안으로 들어간다.

모두들 네 매력에 금세 녹아버리고 만다.


물론 곧이어 고추마요 치킨, 싱싱한 육회, 달콤바삭 츄러스가 속속 등장했고,
널 향한 관심은 남은 한 조각 위 치즈처럼 굳었지만 괜찮다.

나는 네가 가장 먼저 자리를 따뜻하게 데워줬다는 걸 기억하니까.


그날은 유독 음식이 남지 않았다.
너마저 진득하고 무거웠다면, 뒤에 나온 음식들은 금방 물리고 말았을 테니까.

깔끔하고 쫄깃한 시작, 네 덕분에 모두가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음식과 영화를 즐겼다.


적어도 이 동호회 안에서만큼은

다시 한번쯤은 네가 보고 싶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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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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