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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마르게리따 몰래 입을 맞췄다

꼬따 피자

by 크리잇터

재택근무, 하지만 언제나 재택에는 함정이 많다.

어제 먹다 남은 딸기망고케이크가 냉장고에 있고, 거실 전체를 차지하며 마르고 있는 빨래 더미들,

그리고 언제나 안아버리고 싶은 침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가방부터 둘러메고 밖으로 향한다.

어제와는 달리, 아주 미세하게, 데워진 공기가 느껴진다. 또한 피부결을 스치는 습도가 아주 옅게 올라갔다. '습한 여름이 오면 널 만들어낼 밀가루와 수분의 배합도 달라지려나...'

카페에 가기 전 너부터 맛나야겠다.


오후 2시가 가까워졌을 무렵 도착한 가게는 조용했다.

창이 활짝 열려 있어 바람이 가게 안을 살금살금 훑고 다녔다.
햇빛은 테이블 위로 살짝 내려앉았다. 왠지 모르게 초등학생 때 토요일 방과 후 교실이 떠올랐다.

12시면 끝나는 학교, 교실엔 몇몇만 남아있고, 어쩌다 들어온 바람에 창문 커튼이 살랑...
그 속에서 나도 피자라는 기분 좋은 숙제를 받아 든다.


마르게리따를 점찍어뒀기에 큰 기대 없이 메뉴판을 스윽-보는데 눈에 탁 걸리는 이름 하나.

'나폴레타나 피자(Napoletana pizza)'

네 고향 나폴리를 닮은 이름. 그 순간 충동 제어 버튼이 먹통이 됐다. 지금까지 먹은 피자가 모두 마르게리따라는 사실조차 망각해 버리고 '주문하기'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내게 모습을 드러낸 너를 보고 나서야 황급히 메뉴 설명을 찬찬히 읽어본다.

"엔초비와 케이퍼, 올리브가 올라간 나폴리식 피자"

엔초비 파스타는 많이 먹어봤어도, 네 위에 올라간 엔초비는 예상 외다. 살짝은 당황스럽다.

하지만 한 번 구워져 나온 피자는 다시 밀가루로 돌아갈 수 없는 법이지 않겠는가.


워낙 많은 재료를 휘감은 '한국식 피자'는 토핑 부분을 2-3번에 나눠 먹어야 하지만,

이런 '나폴리식 피자'는 잘 접기만 하면 한 입에 모든 재료를 맛볼 수 있다.

엄지와 약지로 크러스트의 끝을 받치고 중지에 약간의 힘을 주면 한 입에 들어가기 좋은 삼각형이 된다.

'와---앙!'

엔초비와 케이퍼, 통올리브와 치즈, 바질, 토마토소스가 파도처럼 입 안으로 밀려 들어와 부서진다.

우물우물-엔초비와 케이퍼, 올리브가 자신만의 감칠맛을 자랑이라도 하듯 마구 뽐내기 시작한다.

게다가 다들 절임류다. 짠맛이 강한 덕에 늘 존재감 1순위였던 토마토소스는 살짝 뒤로 물러나있다.

(하지만 이 토마토소스가 눌러주지 않았다면, '엔.케.올' 각각 날뛰고 말았을 것이다.)


6조각으로 커팅되어 나와 처음에는 '남은 건 포장도 되려나'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으나,

네가 한 조각씩 사라질 때마다 그 걱정 또한 치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조각을 입 안에 넣으며 생각한다.

'언젠가 진짜 나폴리 항구에서, 네가 태어난 그곳에서 너를 다시 맛나게 된다면

분명히 이 가게가, 토요일 방과 후 교실 같은 이 분위기가 먼저 떠오를 거야'



p.s) 이 집에는 못 보던 콜라가 있었는데, 특이하고 맛있었다. 제로콜라에 달려 있는 3천 원 가격표를 보고 단념했으나 이태리산 콜라라는 얘기를 듣고 4천 원을 선뜻 지불했다. '콜라향 캔디'에 들어 있는 맛이 꽤 나는데 그 맛이 나쁘지 않다. 한 번 시켜서 피자와 페어링 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IMG_8762.jpeg 나폴레타나 피자 & 몰레 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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