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미사 포글리나
요즘 나는 달린다. 작년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 수영을 다녔다.
아침 8시부터 물살을 가르며 몸을 움직이는 느낌이 참 좋았는데 올해부터는 할증이 200%나 붙었다.
그렇게 수영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러닝화를 새로 사 신고 밖으로 나섰다.
내일 오후에 아이디어 회의가 있어도, 하늘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도,
나는 뛴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다.
(도파민인가 엔돌핀인가 호르몬 같은 것들이 팡팡 뿜어지긴 하나보다.)
퇴근 후, 집 앞 수변 공원을 숨이 차도록 내달린다.
그렇게 숨을 몰아쉬며 촐래촐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눈을 사로잡는 낯선 초록빛 간판.
뭐지 비건 식당인가, 밖에 내놓은 메뉴판을 거북목을 빼꼼한 채 들여다본다.
아니네? 다행이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피자를 판다.
동네에 피자집이 생기다니!
굳이 서울까지 가지 않아도, 동네에서 먹는 피자도 그 나름의 풍경과 맛이 있다.
그 다음날 점심, 수영장에서 만난 어여쁜 짝꿍과 손을 잡고 그 집으로 향한다.
볕이 제법 따갑다. 불어오는 바람에 습기와 후끈함의 블렌딩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걸어가는 내내 짝꿍은 덥다며 투덜거리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새로 생긴 피자집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피자를 내올까, 어떤 냄새일까.
그 맛있는 상상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설렘을 품고 온 손님이 우리뿐만은 아니었다.
가족 단위 손님들이 이미 많이 와 있었지만, 다행히 우리가 앉을 테이블 하나는 남아있었다.
갓 문을 연 듯한 말끔한 인테리어, 어딘가 낯설어 보이는 서버의 미소,
그리고 분주하게 돌아가는 주방. 모든 게 막 시작된 세계 같았다.
우린 마르게리따 피자와 새우 크림 파스타를 주문했다.
먼저 자리를 다 잡고 접시 세팅까지 마친 가족의 테이블에 음식이 놓이지 않은 걸 보니,
우리가 음식을 받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금 뒤, 리뷰 이벤트로 받은 감자튀김과 콜라가 먼저 나온다.
베이컨 비츠와 치즈 소스가 얹힌 감튀 한 입에 '역시 콜라보단 시원한 생맥주가 나았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 있다가 또 한바탕 달리기를 할 것이니 잘한 선택일 것이다.
뒤이어 나온 피자 역시 괜찮았다.
기본기를 잘 지킨 마르게리따. 화덕 장작불에서 구운 피자는 아니지만,
크러스트는 잘 부풀었고, 치즈는 고소하며, 생바질잎도 푸릇푸릇 향이 좋다.
게다가 채광도 참 좋다. 햇빛이 마치 이 집을 축복하듯 온 가게에 내리쬐고 있다.
짝꿍의 어깨너머로는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아이 손을 잡고 걷는 가족들—
이곳을 지나가는 모든 일상의 조각들이 하나의 평화로운 풍경처럼 펼쳐진다.
그걸 바라보며 피자 한 조각을 베어 물 수 있다니. 더할 나위 없다.
샛노랗고 새빨간 임대 스티커가 붙어 있는 집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게 보이는 요즘,
난 이 시작을 응원하고 싶다. 잘 되길 바란다. 우리 모두 잘 먹고 잘 살길 바란다.
부디 오늘처럼 볕 좋고 사람들 웃는 날이, 이 집에도 자주 깃들길.
그리고 그런 날이, 내게도 조금 더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다.
잘 먹고 잘 웃고 그렇게 잘 살자고 만든 피자가
누군가의 하루를 기분 좋게 해 주듯, 나의 인생도 그렇게 한 조각씩 괜찮아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