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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피제리아에서 청첩장 모임

피제리아 라고

by 크리잇터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물론 ‘친구’의 의미를 확장하면 대학교 후배, 회사 동료, 공모전을 함께했던 팀원까지 내 친구가 될 수 있겠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온 친구는 딱 3명. 3명뿐이다.

예전엔 이게 나의 단점이자 콤플렉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넓지 않은 만큼 깊게 스며든 관계들이니까.


그 셋 중 하나가 결혼을 한다며 청첩장을 주겠단다.
원래 뭔가를 잘 베풀거나 먼저 챙기는 녀석이 아니었는데, 날이 날인지라 카톡이 날아온다
"뭐 먹고 싶냐?"

참내. 어색하게 왜 이럴까.
정말 철없던 시절 같았으면, “마블링 제대로 낀 소고기!”라며 호들갑을 떨었겠지.
하지만 ‘청모’가 나 하나는 아닐 터. 여기저기 돈도 빠져나갈 테니 가벼운 고심 끝에 너를 고른다.
화덕 피자. 그래, 너로 정했다. 1년 만에 만난 친구. 공기 색이 잠깐동안 낯설다.

하지만 곧, 갓 구운 피자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그 어색함의 농도를 흐릿하게 만든다.

짭조름한 도우에, 늘 그렇듯 싱그러운 토마토소스의 산미, 고소하며 눅진한 치즈.

늘 똑같은 피자지만 먹을 때마다 재밌고, 새롭고, 신난다.
딱 얘 같다. 똑같은 녀석과 똑같은 이야기. 그런데 또 웃기고 새롭고 또 신난다.

그러다 문득, 이 상황이 애석해지고 만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버렸다.
기숙사 같은 방을 쓰던 시절, 방바닥에 함께 뻗어 자던 날들이 너무도 선명하다.
지금도 여전히 철없고 말도 안 되는 드립을 내뱉는 친구지만 그 시절 그 느낌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나란히 나이 들어버려서겠지. 10대 때 만나 20대가 지나 30대가 되어버린 탓이겠지.


마지막 남은 피자 한 조각을 “너 많이 먹어라” 하고 내미는 친구의 손.

그 한 조각에 묻어 있던 호의와 철듦이 오래 기억 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물론, 정작 청첩장 모임에 청첩장은 안 들고 온 무성의함은 여전했지만.

(진짜 사람은 쉽게 안 변하나 보다.)
그런데, 그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고 깊었달까.

그의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마지막 한 조각을 우걱우걱 씹는다.

14년 지기 산이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피제리아 라고의 마르게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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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