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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 뜨거운 수영장을 가고
남은 건 화상이지만

제이렘33

by 크리잇터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삶을 살다 보니 아직까지도 날씨가 선선한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눈 떠보니 7월이 되었고 눈 깜빡하니 여름이 되었다.

본격적인, 정말로 본격적인 더위가 우리를 데워먹기 전에 나와 짝꿍은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주중 하루 연차권을 슥-내밀고 수영장으로 출근한다.


목적지는 여의도 한강 수영장. 와이샤쓰에 슬랙스 입은 사람들이 유독 많은 여의도에 쓰레빠에 반바지, 그리고 PVC 수영 빽을 들고 가다니. 이곳의 톤 앤 무드와는 전혀 맞지 않아 살짝은 움츠리게 된다.


다행히도 수영장엔 사람이 많지 않다. 평일이기도 하고, 아직 날씨가 막 덥지는 않기도 하고, 이른 오전이기도 한 복합적인 이유일 것이다. 탈의실 바로 앞 샤워실은 공용 샤워실이다. 수영복을 입고 있음에도 낯선 시선이 스치는 것만 같다. 그럴 땐 얼른 수영장 푸른 물속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다이빙은 금지입니다)


그렇게 2시간을 꽉 채워 수영을 한다. 자유형, 배영, 평영... 물속에 있으니 더운 줄 모른다. 햇볕 무서운 줄도 몰랐다. 수영을 마친 뒤 근처에 있는 널 맛나러 간다.


부랴부랴 짐을 싸고 푸다다 샤워까지 했는데도 도착한 시간은 2시 30분. 브레이크 타임이 3시라며 난감해하는 직원을 맞닥뜨린다. 이미 손님도 다 떠나고 없다. 주방을 보니 브레이크 타임을 위해 정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쩐담, 우리도 선택지가 별로 없다. 30분 안에 먹고 나가자. 두 판도 아니고 한 판이니 괜찮을 거야.


눈에 들어온 메뉴 "오늘의 피자". 피-마카세 같은 느낌인가. 호기심에 오늘의 피자 하나와 아란치니를 사이드로 주문한다. 주문받는 서버 분에게 "아란치니 하나하고-"만 얘기했을 뿐인데 주방에서는 벌써 "아란치니 들어가야 돼"는 오더가 떨어진다.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셰프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오늘의 피자에는 신선한 루꼴라가 가득 올려져 있고, 직사각형 반듯하게 잘린 그라나파다노 치즈가 얹혀있다. 베이스는 빠알간 토마토. 루꼴라의 씁쓸-푸릇한 향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피자 위에 올라간 루꼴라는 살짝 불편하다. 제 아무리 잘 접어서 입 안에 넣는다 해도 3-4가닥은 꼭 테이블 위로 후드드득. 그리고 입가를 스치는 루꼴라가 입에 뭔가를 묻히고 있는 느낌이 들어 연신 냅킨으로 입가를 닦는다.

그래도 오물오물 잘 씹고 있노라면 자기만의 향을 확실히 나는 아이라 입꼬리가 씩 올라간다.


그리고 아란치니. 6천 원에 걸맞지 않게 제법 고급스러운 플레이팅이다. 산뜻한 토마토소스 위에 올라간 4알의 아란치니. 주먹밥을 튀긴 동그란 공 모양인데 이게 이탈리아 사람들 눈에는 오렌지처럼 보였나 보다. 아란치니는 "작은 오렌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주워들은 내용인데 왠지 인상 깊었다. 아란치니를 먹을 때면 항상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그 뜻을 알려준다. 내 아란치니 루틴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뜻을 몰랐을 거라 "오-그렇구나" 하는 반응이다. 1-2명이라도 이 루틴을 따라 하게 된다면 점점 더 아란치니 뜻을 아는 사람이 많아지겠지.


약속한 3시보다 5분이나 오버된 3시 5분에 가게에서 나온다. 행복하다. 수영하고 피자까지 먹다니.

하지만 그 행복감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 나른 나른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 괜히 어깨가 쿡쿡 쓰리다. 이상하다. 오랜만에 어깨 좀 썼다고 이러나. 하지만 집에 도착해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대가로 내 등과 어깨가 샛-빨갛게 타버렸다. 토마토처럼 빠알갛게. 이렇게 익을 줄 알았다면 치즈라도 아니 선크림을 듬뿍 발라줄걸. 덕분에 2주 전에 사놓은 알로에 젤을 원 없이 쓰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 선크림을 꼭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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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