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이짜
또 한 번 일이 몰아쳤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새침데기 같은 평화가 찾아온다.
일이란 놈은 참 치사하다. 밀물처럼 들이치다 썰물처럼 자기만 쏘옥- 빠져나가버리니까.
2주동안 주말까지 끼고 달리고 나면 어째 쉰다는 것도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침대에 누워 그저 눈만 멀뚱멀뚱...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보내면 뒤늦은 후회가 일처럼 확 몰려올 것 같다.
그래, 어디든 가자.
성수동으로 향한다. 이제는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진 거리.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거리. 너무 시끌벅적, 요란요란, 난리법석이니까.
하지만 카피라이터로서 여전히 흥미로운 동네인 것은 사실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게들의 간판과 문장들—그게 또 나름 공부가 된다.
무거운 몸과 가벼워진 마음을 달래며 오늘의 목적지, ‘이짜’로 향한다.
‘이짜’라는 된소리 이름 때문에 왠지 투박할 줄 알았는데, 이건 뜻밖이다.
정갈한 흰 타일이 반듯하게 발라진 벽, 유니폼을 갖춰 입은 서버와 셰프들.
성수동 골목 어귀에 이런 파인다이닝 같은 피자집이 숨어 있다니.
혼자라 그런지 오픈 주방 바로 앞, 주방 1열 자리로 나를 안내해 주신다.
눈앞에서는 다섯 명의 셰프들이 팀플레이를 하듯 피자를 만든다.
샐러드 위에 치즈를 갈갈갈- 뿌리는 근육질 팔뚝 그리고 근육질 팔 위에 새겨진 타투.
진지한 눈빛으로 화덕 구석에 피자 한 판이 흐트러지지 않게 슥-밀어 넣는 스냅.
이것 저것 갈고 섞으며 쏘스페셜한 쏘스를 만드는 듬직한 뒷모습.
5명이 팀을 이루어 진행하는 스포츠 경기가 한창 진행 중이다.
내 피자를 기다리며, 나는 그 경기를 관전한다. 집중과 리듬, 그리고 타이밍.
사실 요즘에 내 일에 집중하는 게 쉽지 않다.
나는 내 생각을 직접 짜고, 기획하고, 편집하는 게 좋은데... 다시 말해 내 것을 만들고 싶은데
요즘은 광고주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나를 지배한다.
분명 그게 내 일의 본질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마음이 안 붙고, 점점 기가 죽는달까
하지만 이 피자집은 다르다.
밀가루를 뿌리고, 반죽을 누르고, 메뉴에 맞는 토핑을 휘리릭, 그리고 화덕에 넣으면—끝.
피자가 구워지는 동안 셰프들은 온 힘을 쏟아붓고,
피자가 완성되면 손님들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진실의 미간을 찌푸린다.
즉각적인 피드백. 즉각적인 결과. 이 리듬이, 이 단순함이 부럽다.
참내 피자 한 판 시켜놓고 별 생각을 다 하네...그치만 부럽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 한 판을 위해 이들도 수없이 연습했을 게 분명하다.
밀가루를 날리며 반죽을 치대고, 토마토소스를 고르게 펴는 손길을 익히고,
스냅 한 번에 피자를 화덕 속으로 밀어 넣는 게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뒤집힌 피자, 태워먹은 반죽, 그만두고 싶은 밤도 많았겠지.
그러니 나도, 투덜대기 전에 더 다듬고 더 던져야겠다.
맛있는 마르게리따 한 판 다 먹고, 툴툴 털고 일어나야겠다.
*이 시리즈를 매주 일요일에 연재하겠노라 선언한 지 벌써 두 달.
그사이 또 늦었습니다. 일 핑계는 이제 그만. 늦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