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상 깊었던 한 끼
삿포로에서 딱 두 장의 사진만 남겨야 한다면,
눈 내리는 밤하늘 속 니카상과
눈 쌓인 언덕 위 홀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아닐까.
니카상은 도착 첫날, 수프 카레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이미 찍었다.
그러니 남은 미션은 그 나무를 배경으로 한 '프사'를 건지는 것이다.
나 같은 뚜벅이 여행자들은 보통 1일 투어를 이용해서 그 나무 사진을 찍으러 가야한다.
겨울의 끝자락이라 그런지 투어 버스 안은 빈자리가 많다.
혼자 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조용히 하얀 창 밖만 바라본다.
투어 중 주어진 점심시간은 단 1시간.
가이드가 현지 식당 예약을 도와주겠다더니,
30분 만에 그 식당이 돌연 휴무라는 소식을 전한다.
가이드 일을 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몹시 당황하는 눈치다.
하지만 괜찮다. 상관 없다. 애초에 밥은 혼자 먹으려던 참이었으니까.
구글 맵을 뒤져 점찍어둔 식당은 걸어서 15분 거리.
이동시간만 왕복 30분이니 밥 먹을 시간은 고작 30분이다.
발걸음을 재촉하려는데 변수가 생긴다. 눈발이 아주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한다.
마치 멀리 가지 말고 근처에서 먹으라고 발목을 붙잡는 것처럼.
어쩔 수 없다. 여행에서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 그래야 다음 대안도 빨리 찾을 테니.
그렇다고 파타고니아 후리스 위로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다시 구글 맵을 뒤질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럴 땐 무대뽀다.
눈앞에 보이는, 식당 느낌이 나는 곳을 덜컥 들어간다.
다행히 식당이 맞았고, 다행히 두 팀만 식사 중인 조용한 식당이다.
(같은 투어 버스를 탄 사람도 없어서 뻘쭘할 일도 없다. 다행이다)
'야키니쿠.'
아무런 생각도, 기대도 없이 얼떨결에 들어온 식당에서
마주친 메뉴치고는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든다.
하얀 쌀밥에 눈꽃처럼 마블링이 낀 고기 몇 점,
그리고 달달한 일본식 간장 소스.
춥고 배고픈 나 홀로 여행객에게 이보다 완벽한 한 끼가 어디 있겠는가.
이윽고 먼저 온 손님들마저 자리를 뜨고, 식당에는 오롯이 나 혼자다.
타국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여유롭게 구워 먹는 고기라니. 참 귀하다.
좋은 화력 덕분에 고기 겉면엔 황금빛 마이야르 꽃이 핀다.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식당 문을 나서니, 정말 거짓말처럼 눈발이 멈추고 해가 쨍.
빠른 포기 덕에 시간도 30분이나 남았다.
나는 그 여유를 빌려 비에이 마을의 소박하고 고요한 골목들을 천천히 눈에 담는다.
버스에 오르기 전, 진한 우유 아이스크림도 한 컵 비워낸다.
4박 5일 동안 삿포로에서 많은 것을 보고 겪었지만,
단 1시간 머물렀던 비에이 마을의 고요한 공기가 가장 짙게 남았다.
나는 계획했던 나무를 배경으로 완벽한 사진을 건졌고 그중 하나는 무사히 내 프로필 사진이 되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이 여행의 썸네일, 이 여행을 대표할 단 한 장의 사진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나무 앞에서 찍은 사진 대신 펑펑 눈이 쏟아지던 비에이 마을의 낯선 골목 사진을 꺼내어 보여줄 것이다.
계획이 틀어진 자리에 예기치 않게 내려앉았던, 그 조용하고 소박한 행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