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새우 라멘은 못 참지
나는 새우를 좋아한다.
통새우가 들어간 와퍼나 고슬고슬하게 볶아낸 새우볶음밥,
가을마다 구워 먹는 대하, 회전하는 레일 위 새우 초밥,
제주도에서 까먹는 딱새우, 새우의 영혼까지 갈아 넣은 비스크 파스타까지.
그러나 불행히 난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
그리고 이 알레르기는 아주 간헐적으로, 그러니까 몹시 랜덤하게 나타나므로
이 새우 맛을 당장 포기하기에는 아쉽다. 그래서 보통 확률을 믿고 그냥 입에 넣는 편이다.
'오늘만은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점심으로 먹은 카이센동에는 아주 싱싱한 새우가 올라가 있었고,
나는 단맛을 온전히 느끼려 최대한 오래 그 녀석을 씹어 삼켰다.
곁들인 삿포로 생맥주가 소독 작용을 해준 건 당연히 아니겠지만,
다행히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한 번 더 모험을 감행한다.
저녁 메뉴는 새우 라멘이다.
라멘 하면 으레 돈코츠만 떠올렸는데, 삿포로에는 새우 라멘이 있단다.
새우탕면의 10배 농축 버전이라는 표현이 잊히지 않아,
얼어붙은 눈을 밟아가며 20분을 뽀득뽀득 걸어간다.
가게 멀찍이부터 나는 짙고 진한 새우 향.
분명 엄청나게 구미가 당기는 냄새인데 뭔가 기분이 쎄하다.
그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나는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를 무시하고 말았다.
'오늘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어'라는 바보 같은 핑계를
방패 삼아 기어이 새우 라멘을 주문해버렸다.
맛? 새우탕면과는 확실히 다른 결이지만,
누가 먹어도 '새우 라멘!'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묵직한 맛.
하지만 면이 줄어들수록, 국물이 바닥을 드러낼수록
염분이 혈관을 타고 퍼지듯 온몸이 싸한 느낌으로 가득찬다.
숙소로 돌아가는 20분, 몸이 벌써 붓기 시작했다.
혀가 실시간으로 뚱뚱해지는 기분.
미세하게 팽팽해진 피부 탓인지 입술도 따끔따끔.
큰일이다. 약도 안 가지고 왔으니까.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응급실까지 가는 대참사만은 막기 위해
숙소 근처 드럭 스토어로 뛰어간다.
파파고와 챗GPT의 지능을 빌리며 항히스타민제를 찾아낸다.
한 통에 한화로 약 16,000원.
5천 원짜리 우유 아이스크림을 500원처럼 잘도 사먹었으면서
생존을 위한 이 약값은 왜 이리도 아까운지 모르겠다.
알약 2개를 꿀떡 삼키자 부푼 피부가 서서히 가라앉는 듯하다.
홈스윗홈. 갑자기 집에 가고 싶다.
확률에 기댄 스스로가 한없이 바보 같이 느껴진다.
그러던 와중에 약효는 기가 막힌다. 졸음이 쏟아진다.
내일은 비에이 투어가 있어 아침 일찍 나서야 한다.
요란했던 하루의 스위치를 끄고, 이대로 까무득한 잠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