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 삿포로의 첫 끼
나는 지금 충동적으로 삿포로에 와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좁은 캡슐 호텔 침대에 누워 곰곰이 그 이유를 역추적해 보았다.
발단은 2주 전, 직장 동료 두 명과 가볍게 맥주를 마시던 자리였다.
일본식 야키토리 집이라 그랬을까.
대화의 안주거리는 자연스레 일본 여행이 되었다.
그들은 잘 구워진 닭다리 살을 뜯으며 각자 다녀온 삿포로 여행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분명 각자가 경험한 각자의 삿포로였겠지만,
그들이 유독 입을 모아 호들갑을 떨며 회상하는 맛은 다름 아닌 '수프 카레'였다.
카레면 카레고 수프면 수프지, 웬 수프 카레.
그 흔하고 쉬운 두 단어의 조합이 도무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갑작스레 5일의 휴가가 생겼고,
무얼 할까 고민하던 찰나 내 무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수프 카레에 대한 호기심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애초에 고민할 시간도 없었지만, 시간이 넉넉했더라도 그리 길게 고민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삿포로행 티켓을 끊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내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 단어는 오직 이것뿐이었다.
'수.프.카.레', 그리고 '브.로.콜.리'.
삿포로역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캐리어를 처박아두고
구글 맵에서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수프 카레 집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한 그릇 먹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나와 같은 생각의 관광객이 꽤 많은 곳을 골라버린 탓에 무려 40분이나 웨이팅을 해야 했다. 하지만 괜찮다.
삿포로에 온 유일한 이유와 목적을 단 40분 만에 이룰 수 있다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닐 테니.
드디어 안내받은 2인석 자리에 앉자마자,
한국에서부터 고이 품고 온 단어들을 주문서에 꾹꾹 눌러 담았다.
'수.프.카.레' '브.로.콜.리'
이윽고 내 앞에 놓인 수프 카레와 밥 한 접시.
설레는 첫 만남이다. 건더기들은 잠시 밀쳐두고 조심스레 수프만 한 숟가락 후룹!
"...응?"
다시 한번 후루룹.
'음? 그냥 카렌데? 국물이 좀 많은 카렌데?
...물 조절에는 실패했지만...향과 맛은 진한 그런 카렌데?'
동료들이 입에 침을 튀기며 말하던 '차원이 다른 맛'은 솔직히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실한 닭다리와 신선한 채소들의 조합은 꽤 매력적이어서,
10분 만에 한 그릇을 싹,깨끗하게 비운다.
가게를 나와 눈이 얼어붙은 빙판길을 아장아장 걸으며,
그들의 호들갑을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 애썼다.
그때, 웅성거리는 사람들 위로 인상 좋은 '니카상'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내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니던 수많은 물음표가 가벼운 느낌표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 맞다! 여행은 뭘 먹어도, 뭘 봐도 원래 이렇게 호들갑 떨고 설레게 되는 거였지.'
수프 카레의 진짜 맛은 대단한 향신료가 아니라, 이 낯선 공기와 설렘에 있었다.
그제야 그들의 호들갑에 아주 작은 공감이 피어오른다.
그렇게 나의 삿포로 여행이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