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라멘 한 그릇으로
비에이 투어가 끝났다.
삿포로역에서 터덜터덜 돌아와 손바닥만 한 캡슐 침대에 몸을 던진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배고픈 느낌마저 사라졌다.
하지만 한 끼를 거르는 건 일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여행 속 한 끼는 비행기 값, 숙소 값, 내 금쪽같은 시간 값 등
수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다.
그래서 곰곰이 메뉴 선정 회의에 돌입한다.
초밥, 우동, 규동, 칭기즈칸 등 수많은 메뉴가 스르륵 머릿속을 미끄러진다.
그러다 문득 낮에 가이드님이 읊어주던 맛집 추천 리스트가 생각난다.
'미소 라멘.' 이것도 삿포로의 명물이란다. 그럼 먹어야지. 재빨리 숙소를 나선다.
숙소가 스스키노역 근처라 대부분의 식당은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웨이팅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 삿포로의 어두운 골목에서 홀로 외로운 기다림을 시작한다.
발을 동동 구르며 1시간을 기다린 끝에, 라멘집에 입장한다.
기본 미소 라멘 하나와 가이드님이 극찬했던 달걀 볶음밥 스몰 사이즈를 하나 주문한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 특히나 그 첫 만남이 굉장히 유명한 곳에서
이루어질 참이니 괜히 더 침이 고인다.
이윽고 나온 진한 미소 라멘.
기대와 설렘으로 잔뜩 부푼 혀를 마중 내밀며 국물을 한 숟가락 후룹.
윽. 짜다. 그냥 짠 게 아니라 너어무 짜다.
부풀었던 혀가 미소 라멘의 강력한 염분에 찌릿찌릿해진다.
사실 구글 맵 리뷰에 짜다는 후기가 꽤 있었다.
그러나 제일 진하다는 일본 현지식 돈코츠 라멘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비워버리던 나다.
고작 미소 라멘 따위가 내 미뢰를 단번에 굴복시킬 줄은 몰랐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염분의 농도가 혀끝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다행히도 가이드님의 추천은 성공을 거두었다. 같이 시킨 볶음밥이 진짜 환상적이다.
밥알 하나하나 셀 수 있을 정도로 고슬고슬하게 코팅된 중국식 웍 볶음밥.
볶음밥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비웠지만 라멘 면발은 꽤 남았다.
아쉬움과 약간의 죄책감을 가진 채 라멘 집을 나선다.
이렇게 여행 속 한 끼에 살짝의 실패가 얹어지는 순간,
홀로 온 여행은 갑자기 훅 외로워지기 시작한다. 왜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누군가 같이 왔다고 한들 이 미소 라멘의 절대적인 염분 수치가 낮아지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저 이 어이없는 짠맛과 실패를 하하 호호 웃어넘길 짝꿍이 없어서일 거라고 짐작만 해볼 뿐이다.
터덜터덜 돌아가는 길, 화려하게 빛나는 니카상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의 모습이 유달리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