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오타루의 미슐랭

앙카게 소바와 교자

by 크리잇터

오늘은 오타니. 아니, 오타루로 향한다.

시작은 숙소 앞 스타벅스에서 무심코 넘기던 숏츠였다.

오타루 명물이라는 '앙카게 야끼소바'.

'오타루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그 멘트에 홀려 후다닥 짐을 챙겨 나섰다.


오타루로 향하는 기차 안, 창밖에는 커다랗고 넓은, 그리고 새파란 바다가 펼쳐진다.

그저께 먹은 달큰한 새우와 분홍빛의 참치들은 저기서 잡혔을까.

그렇게 30분을 내리 달려 오타루에 도착한다. 그리고 타이밍 참 좋게 눈이 내린다.

아니, 눈보라가 친다. 그것도 아주 매섭게.

나와 같은 기차를 탔던 관광객 무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어느 한 방향으로 간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샛길로 빠진다.

오타루에 온 이유는 오르골도, 르타오도 아닌 앙카게 소바니까.


다행히 웨이팅은 없다.

가게 안을 쓱 둘러보니 빈자리를 채운 사람들은 전부 일본 현지인들뿐이다.

들뜬 설렘보다는 일상의 익숙함이 더 짙게 녹아 있는 공기.

그 고요한 현지의 공기를 헤집고 들어온 유일한 이방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기쁘다.

'여긴 100% 찐 맛집이다.' 강력한 확신이 선다.

그 확신의 증거로 앙카게 소바에 교자까지 야무지게 시킨다.

잠시 후, 내 옆자리에 나이 지긋하고 인상 좋은 할머니 한 분이 앉으신다.

나도 모르게 가벼운 목례를 건넨다. 아마도 시골에 혼자 계신 우리 할머니가 생각나서였으리라.


곧이어 앙카게 소바가 나온다.

찐득하고 뜨거운 전분 소스가 면을 흠뻑 덮치고 있는 모양이 꼭 잡채밥이나 유산슬같다.

한 젓가락을 푹 떠서 후루룩 넘기자, 농밀한 소스가 입안 전체를 빈틈없이 코팅한다.

그리고 머리 위에 뾰로롱- 하고 CG 이펙트가 터진다.

와우. 진실의 척도인 미간은 잔뜩 찌푸려지고 입꼬리는 귀에 닿을 듯 올라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뭔데 이렇게 맛있냐. 미쳤네. 이거 뭐야.' 하면서 연거푸 젓가락질을 해댄다.

면은 군데군데 눌은 데가 있어 살짝 바삭하고 고소한 탄 맛이 난다. 기가 막힌다.

IMG_3917.HEIC

무아지경에서 나를 빼내어 준 건 다름 아닌 뒤늦은 교자 한 접시.

그 교자와 같이 나온 옆자리 할머니의 소복한 볶음밥. 문득 괜한 오지랖이 발동한다.

할머니와 내 교자를 한두 개라도 나눠 먹고 싶다.

조심스레 젓가락으로 의사를 표현해 본다.

하지만 민망하게도 할머니는 정중하게 내 제안을 거절하신다.

젊은 청년에게 얻어먹기가 미안하셨던 걸까, 아니면 원래 교자를 좋아하지 않으시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나의 이 과한 관심이 혹여 부담스러우셨던 걸까.

소심한 INFP 여행자는 그 작은 거절의 손짓 하나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앙카게 소바를 먹는 내내 마음을 졸이고 신경을 쓴다.

IMG_3916.HEIC

그렇게 두 접시를 혼자 다 비우고 일어나 계산을 마칠 즈음,

할머니가 나를 향해 씩 웃으며 일본어로 한마디를 건네신다.

물론 무슨 뜻인지는 지금도 전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마치 당신의 친손주를 바라보는 듯 아주 따뜻하고 인자한 미소였다.

앙카게의 찐득하고 뜨거운 전분 소스 때문인지,

아니면 할머니의 다정한 웃음 덕분인지.

가게 밖은 여전히 눈보라가 치고 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가 뭉클하게 데워지는 기분이다.


IMG_3918.HEIC


월, 금 연재
이전 05화삿포로 여행이 외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