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당했다.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는 순간, 내 온몸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부르르 떨려왔다. 그것은 나의 첫키스였다.
나는 시한부 인생이다.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게 키스한 것은 나를 동정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도 나를 사랑하기 때문일까.
하루 종일 나는 안절부절 했다. 호흡이 가빠지고, 볼은 발갛게 상기된 채 내 시선은 자꾸 그의 뒤를 쫓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가게 앞을 바쁘게 왔다 갔다 했다. 그는 이 꽃시장에서 가장 큰 가게의 꽃 배달원이다. 그는 25살로 복학하기 전에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이란다.
그의 머리는 아직도 짧게 깎여 있다. 그리고 늘, 알맞게 물이 빠진 청바지에 흰 파카를 입고 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나는 향은, 수 천 가지 꽃향기에 그의 땀 내음이 약간 섞여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그는 하루에 이십 여 곳에 배달을 나간다. 그는 매우 활발한 사람이어서, 무거운 꽃을 들고 나가면서도 늘 가게주인들에게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가 활짝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할라치면, 여기저기서 서로 답례를 하기 위해 손을 올리곤 했다. 앞 가게 아주머니는 그를 조카사위로 삼기 위해 로비를 벌였을 정도였다. 물론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저 아줌마 몸집을 봐. 그 조카라면 어련하겠니? 상준씨가 거절하면서 얼마나 난감했을까?”
지금 말하는 여자는 우리 가게 주인의 딸이다. 가끔 아저씨가 자리를 비우실 때면 이 여자가 나와 일을 거들곤 했다.
나는 여자의 말에 일부러 대꾸를 하지 않았다. 못들은 척 딴청을 피우자, 여자는 무안했는지 괜히 콤팩트를 열어 화장을 고쳤다. 그리고 쥐 잡아 먹은 듯한 립스틱으로 빨갛게 입술을 덧칠한다. 그리고는 흘끔흘끔 자꾸 옆 가게를 살펴본다. 아무래도 이 여자, 그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가 내게 키스했다고 여자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니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를 난감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실, 그는 이 꽃시장에서 일하는 모든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꼬리를 치는 여자들이 줄을 서 있지만, 그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오늘 새벽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에게 키스를 했다. 아,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는 키스하기 전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일터로 가기 전에 그는 잠시 우리 가게 앞에서 멈칫했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괜스레 가슴이 울렁거려서 그를 못 본 척 고개를 약간 돌린 채 까닥하고 고개 인사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가 곧장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턱을 손으로 받혀 올리고,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지금도, 그의 입술이 내게 다가오던 그 순간의 떨림이 잊혀지지 않는다. 차마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첫 키스 때 여자들은 눈을 감는다는데, 나는 그대로 경직되어 그가 내게 키스하는 것을 전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입술을 부드럽게 감아 올려져 있었고, 내 입술에 닿자 살짝 벌어졌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내 목덜미에 얼굴을 대고 잠시 숨을 들이마셨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놀란 눈을 치켜뜨자, 그는 부드럽게 내 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술을 달싹였지만, 곧장 옆 가게 주인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다시 한 번 나를 바라보고는 급하게 뛰어 나갔다.
나는 다리가 떨려 서 있을 수가 없었지만, 겨우 참아내었다. 우리 주인아저씨는 가게에서 내가 앉아 있는 것을 참지 못하셨다. 손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하시곤 했다.
그런 주인아저씨도 딸에게만은 관대해서, 그의 딸은 가게만 나오면 늘 앉아서 손톱을 다듬거나 전화를 걸거나, 앞 가게 여자와 수다를 떨곤 했다.
나는 그녀의 천박함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만 없으면 내가 보든 말든 상관없이 스타킹을 올리거나, 손을 등뒤로 넣어 가려운 곳을 긁곤 했다. 그리고는 손톱에 낀 때를 이쑤시개로 파내는 것도 여러 번이다. 더욱이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그 지저분한 여자가 상준씨에게 눈웃음을 치는 것이다.
…… 그래도 이 여자는 건강하지 않은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건강한 매력이 그녀에게는 넘쳐 났다.
나는 아름답다. 세상 어떤 여자보다 예쁘다고 자신할 수가 있다. 하지만 내 생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아름다우면 뭘 할 것인가. 저기 머리를 긁고 있는 저 여자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 없는 것을…….
그래도 자꾸, 그가, 그가 보고 싶어 진다.
“네. 희망 화원입니다. 카라 500송이를 지금 당장요?”
주문이 들어왔다. 주인 딸은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쩌지? 우리 배달원이 오려면 1시간도 넘어 걸릴 텐데…….”
나는 가만히 옆 가게를 바라보았다. 마침 배달을 마치고 온 그가 땀을 닦고 있다.
“아, 상준씨한테 부탁하면 되겠다.”
주인 딸은 쪼르르 그에게 달려갔다. 무어라무어라 아양을 떨며 그녀가 그에게 말을 한다. 맘 좋은 그는 싫은 표정 하나 없이 우리 가게로 걸어왔다.
가슴이 뛴다. 그는 곧장 내게로 다가왔다. 오늘 새벽 키스를 한 후 그와 이렇게 정면으로 마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눈빛에 약간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이 카라를 모두 팔아야 하나요?”
“네. 오늘 새벽에 들어온 카라는 그게 다예요. 딱 500송이.”
주인 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나>를 뽑아 들었다.
“이 꽃은 제가 사려고 했던 건데.... 여자친구한테 선물하려고 했거든요.”
주인 딸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지만, 그녀는 곧장 말을 이었다.
“그럼 그거 가지세요. 설마 500송이를 다 세 보긴 하겠어요?”
그는 활짝 웃으며 <나>를 그의 가게 화병에 꽃아 둔 채, 499송이의 카라를 배달하러 갔다.
***
가지런한 여자의 흰 치아가 내 앞에서 아른거린다. 그의 여자친구는 <나>를 보며 그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여자친구는 <나>를 내려놓더니 그의 목에 팔을 감고 키스를 한다.
나에게는 그저 살짝 입맞춤만 해주던 그가 여자에게는 열정적으로 키스를 하고 있다. 슬픔이 목까지 차 올라와서 나는 그만 목을 꺾고 말았다.
내 사랑을 남겨둔 채, 나는 시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