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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연 Jun 06. 2019

베이비 보이스

[space story]  03.  자궁

나는 엄마 뱃속에 자리 잡은 지 2개월이 막 지난 태아이다.  


내 키는 3cm, 체중은 4g이다. 한마디로 오리 알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건 별로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이지만, 지금 나에게는 꼬리가 있다. 인간인 내가 꼬리가 있다는 사실이 아주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이것도 한 달만 지나면 없어질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아직 결혼 전이다. 원래 우리 엄마의 꿈은 20세기 마지막 신부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1999년 12월 31일에 결혼식을 올리려는 거창한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IMF가 터지면서 아빠는 실직을 했고, 1년간 실업자 생활을 하는 통에 엄마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지금 아빠는 택시 운전을 하신다.


시간이 흘러 한 달이 더 지났을 때, 엄마는 드디어 ‘나’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엄마의 첫 반응은 “Oh, My God!” 이였다.


물론 진짜 엄마가 한 말은 “으악, 안돼!” 였지만, 외국 영화에서는 이럴 때 신을 찾는 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여하튼 엄마의 반응은 나를 너무나 슬프게 했다.


엄마가 병원에 간다고 엄마 친구에게 말했을 때, 나를 보고 싶어 그러는 줄 알았다. 산부인과에 가면 뱃속에 든 나 같은 태아 사진을 찍어 보여주지 않던가.


“정말 지울 거야?”


엄마 친구가 말한, 이 말뜻을 알아듣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한 마디로 나를 ‘죽이겠다’ 는 의미였다.


엄마가 수술 받기로 한 날은 내일이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정확하게 17시간 28분이다.


처음에 나는 분노했다. 어떻게 나를 ‘지울’ 수가 있단 말인가? 세상에 나가기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대통령도 될 수 있고, 의사도 될 수 있고, 노벨 문학상을 탈수도 있다. DDR도 하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고, 술도 마셔보고 싶다. 세상이 나에게 전해줄 수많은 일들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나에게서 그 모든 것을 앗아가려 한다. 지금 나는 자궁이라는 이 작은 공간에 갇혀 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웅크린 채 훌쩍이는 것뿐이다.


그렇게 5시간이 흘렀다. 엄마는 잠도 자지 못한 채 계속해서 뒤척이고 있다. 아마도 죄의식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더 많이 괴로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밤중, 엄마는 몰래 나가서 아빠가 자주 가던 포장마차에 가서,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들이켰다. 쓴 소주가 밀려들어오자, 내 심장은 평소보다 두 배는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세상에 나가서 해야 할 일 중에 술을 마시는 것은 고려해 봐야겠다. 생각보다 술은 너무 쓰다.


……


나는 이제 10시간 후면 ‘지워질’ 텐데……. 그래, 세상의 마지막에 쓴 소주를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아가씨, 무슨 일 있어? 왜 우는 게야?”


포장마차 아줌마가 오뎅 국물을 내밀며 엄마에게 말을 건다. 엄마는 소주 두 잔을 연거푸 마시더니 그만 울고 말았다. 엄마는 오른 손을 배에 갖다 대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가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도 그만 훌쩍, 눈물이 나왔다. 엄마가 고통스러워하기를 바랐던 내가 너무나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나를 미워해서 ‘지우려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예정대로 엄마가 20세기 마지막 신부가 될 수 있었다면, 엄마는 내 존재를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기대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 나는 벌써 깨달아 버렸다.


엄마는 뜬눈으로 밤을 샌 후, 산부인과로 갔다. 이제 나에게는 단 ‘한 시간’ 이라는 시간만 남았다. 어제 엄마의 눈물을 본 후에, 나는 더 이상 엄마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내게 주어진 이 한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마음이 조급해 졌다. 비록 태어나지는 못하지만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지워지기 전에,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나는 온 몸의 힘을 다리로 모았다. 나는 이제 3개월이 된 태아, 손발을 움직이려면 최소한 2달은 더 지나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없다. 지금,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엄마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뿐이다.


내 온 신경이 다리로 집중되자, 내 조그만 발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 발을 이용해 엄마의 배를 찼다. 처음엔 너무 힘들었지만 몇 번 해보니 수월해 졌다. 자꾸자꾸 엄마의 배를 차면서, 나는 엄마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엄마, 나 씩씩하게 지워질게요.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드디어 엄마가 수술침대 위에 누웠다. 엄마는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던 것 같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그러다 엄마는 드디어 나의 발길질을 느꼈다. 태동을 느끼는 순간 엄마의 온 몸은 감전이 된 것처럼 굳어 버렸다.


“선생님… 아이가 움직여요. 지금 발로 찼어요, 지금.”


“무슨 소립니까. 최소 6개월은 지나야 해요.”


“아니에요, 분명히 느껴졌어요. 이것 봐요, 발로 찬다니까요.”


“수술 들어갑니다. 마취 준비.”


그러나 의사는 마취를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수술실에서 뛰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와서야 엄마는 겨우 숨을 골라 쉬었다.


나도 엄마를 따라 숨을 헐떡였다. 발끝에 얼마나 힘을 줬던지 쥐가 나는 것 같았다.


엄마는 벽에 기대어 선 채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21세기 첫 신부가 되면 안 될까? 그래야 우리 아이가 태어났을 때 결혼사진을 보여 줄 수가 있지.”


13분 후에 아빠의 택시가 도착했다. 엄마와 내가 있던 이곳은 정릉이었다. 아빠의 택시 뒤에는 강남역에 가야할 손님이 타고 있었지만, 아빠는 손님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듯 했다.


대로변에서 아빠는 엄마를 끌어안은 채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택시 안에 손님이 짜증을 내다가 내려서 다른 택시를 타고 가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오늘은 엄마, 아빠의 조촐한 결혼식 날이다. 나 때문에 두 사람은 달랑 18K 반지 하나만을 나눠 낀 채 사랑을 약속했다.


이제 나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날짜를 새고 있다. 빨리 세상에 나가서 엄마, 아빠 얼굴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 고마운 나의 엄마, 아빠를…….


내가 있는 이 작은 공간에도 시간은 있다.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이 시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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