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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연 Sep 02. 2019

그대 자살을 꿈꾸는가 (5)

{space story]  19.

마지막 소원이라는 말에 여자는 나를 흘끔 보고는 피 봉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것들이 내 음식이에요. 매월 새로운 피를 헌혈 받죠. 한국 내에서 물량이 딸리게 되면, 북유럽에서 가져오거나, 또는 아프리카, 혹은 서인도제도에서 걷어 오기도 해요. 물론 다 돈 주고 사오는 거예요.”


“……!(돈 주고? 이 피를 다?)”


“방금 뽑은 신선한 피는 아까도 말했듯이 동물의 피를 섭취하죠. 하지만 인간의 피만큼 맛있진 않아요.”


나도 모르게 또 뒷걸음질 칠 뻔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여자의 심기를 거슬렸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뱀파이어들이 인간을 해치지 않기 시작한 건 100년도 채 되지 않아요. 사실 계속해서 인간의 피를 먹었다가는 우리들은 멸망했을 거예요. 인간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우리들을 없애려고 했는지는 잘 알고 있죠?”


끄덕……. (사실 잘 몰랐지만 아는 척 했다.)


“오래 살다보니 보통의 뱀파이어들은 다 부자거든요. 몇 백 년, 몇 천 년을 살다 보니 돈은 자연스럽게 모아졌고. 그래서 몇 명 남지 않은 뱀파이어들은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인간을 해치지 않으면서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그건 바로 돈을 주고 피를 사는 일이었죠.”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해 봐요.”


“이 피들을 다 어떻게 사오는 거죠?”


“후후… 브로커들이 있어요. 그들은 일반 시민들에게 헌혈을 강요한다고 하더군요. 거리에서 잡아끌어다 공짜로 피를 받고 나한테는 돈을 받고 팔죠.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진짭니까! 하, 황당하네, 증말. 그럼 거리에 있는 헌혈 차들이 전부?”


“어머, 헌혈 많이 했나 봐요. 흥분하는 거 보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한번도 헌혈해본 적이 없다. 무수한 구박을 받으면서 어떻게 얻어먹은 밥으로 만든 피 인데 공짜로 남을 주나?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을 보니 결론적으로는 아주 훌륭한 태도였던 것 같아 자부심이 든다. 흠. 흠.


“근데요,”


나는 꽤 스스로가 만족스러워 여자에게 다른 질문을 던지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 때 여자는 냉장고 속의 수많은 피 봉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여자의 옆모습이 무척이나 서글퍼 보여서 괜스레 나까지 답답해지는 것 같았다.


나도 여자를 따라 붉은 피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배가 고플 때 냉장고를 열어서 우유나 김치를 바라보는 것과 여자가 피를 바라보는 것하고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나는 밥을 먹는 일이 즐겁다. 때마다 다른 요리를 먹는 것도 행복하다. 밥이 먹기 싫은 날은 라면을 끓여 먹는다. 간혹 돈이 좀 생기면 곱창구이에 소주 한잔하면 얼마나 기찬 맛인가.


하지만 이 여자는 음식에 대한 그런 즐거움이 있을까? 한국인의 피와 아프리카 인의 피 맛이 조금 다른 정도겠지, 색다른 조리법에 따른 신선한 미각을 느껴본 적이 있을까?


“그만 올라가죠. 죽이지 않아도 람보르기니는 태워줄 테니까.”


여자의 목소리가 쓸쓸하게 닫혔다.      


“끼야호--!”


람보르기니는 기가 막힐 정도로 훌륭했다. 구기동에서 나와 북악 스카이웨이를 한바퀴 도는 동안 그 완벽한 코너링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그 집에서 차를 몰고 나왔을 때가 새벽 2시였다.


나는 폭주족을 방불케 하는 스피드로 강변북로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왔다 갔다 하다가, 자유로를 향해 람보르기니를 몰았다. 자유로는 깊은 어둠 속에서 끝도 없이 이어진 것처럼 우리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었다.


우리…….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그 단어에 스스로 놀래서 속도를 줄이고 조수석에 앉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내가 드라이브를 하며 소리치는 동안 여자는 내 모양새가 우스웠는지 깔깔거리며 웃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여자는 몹시 피곤했는지 시트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어 있었다. 열린 창 사이로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쳐 들어와 여자의 머리카락을 휘날려댔다. 창백한 피부아래 긴 속눈썹은 조용히 흔들리고 붉은 입술은 꼭 다물어진 채 달빛을 머금고 있었다.


눈앞에 서울로 빠지는 이정표가 보였다. 잠시 망설여졌다. 여자가 잠든 사이에 서울에 돌아가 여자와 차를 버리고 그 길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서 잠을 자는 것이다. 내일 아침이면 오늘 있었던 일들이 마치 한낮의 꿈처럼 별일 아닌 것으로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그럴 수가 없었다. 냉장고 안의 피 봉지를 바라보던 그녀의 쓸쓸한 얼굴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자유로 한켠에 차를 세웠다. 여자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담배 한 대를 천천히 피웠다. 거의 필터 끝까지 피웠을 때 여자가 눈을 떴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어둠 속의 자유로를 바라보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왜 도망치지 않았죠?”


“아까 말했잖아요. 인간을 해치지 않은지 100년이 지났다고. 잡아먹히지도 않을 건데 내가 도망칠 이유가 없잖습니까.”


담담한 내 말에 그녀가 피식 웃었다.


“궁금한 게 있어요.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광고를 낸 거죠?”


“뉴스를 봤어요. 인터넷상의 자살 사이트를 통해 자살청부를 한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몇 명이 죽었다죠. 참 부러웠어요.”


“뭐가요?”


“죽을 수 있다는 것이요.”


여자는 그렇게 대답하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짙은 회색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물빛을 띠었다. 새벽 물안개에 휩싸인 물결 같은 그윽함이 느껴졌다.


“난 올해로 2001년째 살고 있는 거예요. 사는 게 지겨울 만도 하지 않겠어요?”


“맙소사! 그럼 그쪽이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태어났단 말입니까?”


“후후… 많이 늙었죠?”


믿을 수가 없었다. 창백했지만 여자의 얼굴에는 주름살 하나 없었다. 뱀파이어들은 나이도 먹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독특한 애였어요. 인간의 아이들과 놀기를 좋아했죠. 부모님은 이런 나를 몹시도 말렸지만, 나는 친구들과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렇게 내가 7살이 되고, 19살이 되어갔죠. 그런데 문제는 그때서부터 생긴 거예요.


한해, 두 해가 흐를수록 친구들은 나이를 먹어 갔어요. 얼굴에 주름도 생기고, 허리도 굵어지고, 머리도 히끗히끗해져 갔어요. 그런데 나는 19살 그대로인 거예요. 친구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그들의 딸이 19살이 되었을 때도, 내 모습은 변하지 않았어요.


늙지 않는 우리 가족을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았거든요. 불을 지르고, 마을에서 쫓아내고, 심지어는 우리 부모님이 자고 있는 사이에 심장에 말뚝을 박았어요. 나를 살린 건 가장 친했던 친구였어요. 그 친구는 이미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을 때였죠. 그리고 주름이 깊게 팬 얼굴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나를 끌어안고는 이렇게 말했어요.


‘이곳을 떠나… 가서 널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다시 그곳을 떠나고, 그렇게 늘 새로운 곳에서 살아.’라고.”


어느새 그녀의 눈에도 이슬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 옛날, 노인이 된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야반도주를 하던 젊은 뱀파이어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그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때부터 방랑의 세월이 흘러갔어요. 한 마을에서 10년 이상을 살지 못했어요. 나는 늙지 않으니까. 심한 경우는 3년도 채 살지 못하고 쫓기듯 도망치는 세월이 수백 년이 흐르고 나서는 아예 사람들과의 교류를 끊고 살았죠. 누군가와 친해지지 않으면 내가 늙지 않는 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당신네 집사는 늙었잖아요!”


나는 거의 소리치고 있었다. 여자의 말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뱀파이어들은 인간들의 세월로 333년마다 한 살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나도 집사의 나이가 얼마가 되는지 정확하게 몰라요.”


헉…! 그런 계산대로라면 집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시절에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호모 싸피엔스 시절일까?


“그러니까 사는 게 지겨워져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광고를 냈다는 말입니까?”


“네.”


“그럼 차라리 말뚝을 가져오라고 했으면 간단했잖아요! 칼로 찔러도, 도끼로 찍어도 죽지 않는다는 걸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을 텐데요!”


나는 오전에 놀랐던 일이 떠올라 여자를 윽박지르듯 말했다.


“수 천 년을 살아오며 뱀파이어들은 많이 인간화가 됐어요. 햇빛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낮에 관에 들어가 있지 않아도 되며, 또 가끔은 인간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도 소화를 시킬 수 있도록 육체가 변화되었어요. 그래서 인간들의 방식으로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거예요.”


“다 필요 없어요! 말뚝 한쪽을 날카롭게 만든 후 심장에 박는 게 제일이라니까요. 영화도 안 봤어요? 그렇게 오래 살았다면서?”


나는 신이 나서 말하고 있었다. 여자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사실 그때는 돈 백 억에 대해서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단지 여자를 도와 줄 수 있다는 생각만 났을 뿐이다.


하지만 여자는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고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자가 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런 침묵이 들 떠있던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저, 이봐요. 혹시 우는 겁니까?”


“왠지 말뚝은 싫었어요. 그것에 박혀 돌아가신 부모님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나란 놈은 얼마나 생각이 짧은 놈인지 스스로가 한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미, 미안해요. 난, 그저…”


내가 말을 더듬으며 어쩔 줄 몰라 하자 그녀는 눈물을 쓱쓱 훔치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 모습이 더 애처롭게 보여서 가슴이 아파 왔다. 하지만 그것은 고양이를 생각하는 쥐 꼴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선물은 ‘죽음’인 것 같아요.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 가슴속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죠. 하지만 뱀파이어들은 죽지 않는 대신에 추억도 만들지 못해요.”


동쪽 하늘에 어슴푸레한 새벽 기운이 펼쳐졌다. 태양은 또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며 기운차게 떠오를 것이다. 시동을 걸었다. 람보르기니는 시동소리 까지 멋졌다. 나는 엑셀레타를 밟으며 힘차게 자동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여자를 돌아보지 않은 채 소리쳤다.


“노 프라블럼! 뭐가 문젭니까? 돈 있겠다, 늙지 않겠다! 나 같으면 그냥 해피하게 살 겁니다! 안 그래요? 괜한 투정 부리지 말라구요. 5천년이 지나고 3만년이 지나면 어때요? 그냥 살만큼 살아요.”


이것은 내 진심이었다. 어차피 여자의 운명이 그렇다면 거스르지 않고 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왕 사는 삶이라면 마음 편하게 즐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귓가를 스치는 바람과 함께 여자의 말 한마디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니오. 말뚝을 준비하겠어요.”


“미, 미쳤어요?”


“그리고 내 심장에 말뚝을 박을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


여자는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너무나 확고해서 나는 운전 중임에도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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