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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연 Aug 30. 2019

그대 자살을 꿈꾸는가 (4)

[space story]  18.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른다. 정원에서 그렇게 기절해 버린 후,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온 집안에 갓 구운 빵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고 나서도 한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곳은 니코틴으로 누렇게 탈색된 지저분한 벽지의 좁은 내 방이 아니었다. 간혹 TV에서 보던, 하룻밤 숙박료가 300만원이 넘는다는 호텔 VIP룸 같은 침실이었다.  


몇 시쯤 됐을까....... 방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시계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은 굳게 닫힌 채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대강의 시간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누워 있을 수만은 없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1초라도 빨리 이 무서운 소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 NO! 절대 아니다. 단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팠기 때문’ 이다. 더욱이 계속해서 퍼져오는 고소한 빵 냄새는 침샘을 자극해 나는 굶주린 채 침을 질질 흘리는 황야의 늑대와 같았다.


나는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침실에서 나왔다. 그 여자의 집 내부는 ‘빌어먹을’ 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더럽게 근사했다. 빵 냄새를 따라 주방으로 가는 길도 호텔의 식당을 찾는 것처럼 끝도 없이 이어져 있지 않은가.


“이봐, 청년.”


깐깐한 집사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막 복도의 끝을 돌았을 때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집사는 희귀한 열대과일이 담긴 은 쟁반을 든 채 퀭한 눈으로 서 있었다.


“나가는 길을 찾는 거라면 저쪽이네만.”


“아닌데요.”


내 대답이 의외였던가? 집사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럼?”


“배가 고파서요. 밥 좀 주십쇼.”


내 어디에 이런 깡다구가 숨어 있었는지 스스로도 의아스러웠다. 집사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잠시 어렸다.


“따라 오게나.”


집사를 따라 간 곳은 넓은 주방이었다.

그 여자는 (분명히 칼에 찔려 놓고서는 내 등에서 킬킬 웃던), 온통 하얀 밀가루를 뒤집어 쓴 채 오븐에서 막 구워낸 빵을 꺼내고 있었다. 귀여운 마시마로 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는 무엇이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앞뒤 사정을 모른다면 너무나 사랑스러운 새댁 같은 모습이랄까.


“어머, 일어났어요?”


여자는 마치 늦잠을 잔 신랑에게 하는 말투로 내게 말을 걸었다.


“배고프죠? 와서 앉아요. 오랜만에 빵을 구웠거든요. 아니, 밥이 나으려나? 나 청국장도 잘 끓이는데 뭐가 좋겠어요?”


갑자기 나는 허기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기절하기 직전에 여자가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배, 뱀.......”


나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뱀 요리가 먹고 싶어요? 이봐요, 집사. 우리 전에 70년 된 백사 한 마리 사다 둔 거 있지?”


과일 쟁반을 식탁에 두던 집사는 여자의 질문이 별스럽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백사보다는 아나콘다가 더 나을 겝니다. 저 청년 지금 백사 한 마리 갖고는 성에 안찰테니까.”


“그럼 2미터 짜리 아나콘다로 해요. 생식이 좋겠어요, 아님 살짝 구워서 기름소금에 찍어 먹을래요?”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나는 혼란스러워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자꾸 머리를 흔들었다.


“역시 인간이 하나 있으니까 좋으네. 그렇지, 집사?”


“그러게요, 아가씨. 보통은 피만 뽑고 고기 버릴 때마다 좀 아까왔거든요. 음식 버리면 지옥 간다는데, 그동안 우리가 버린 고기가 얼마랍니까.”


“그나저나 우리 이제 소 피 먹어도 되는 거야? 광우병 파동 때문에 영 찝찝했었잖아.”


“광우병은 차라리 나아요, 아가씨. 요새는 에이즈 걸린 인간 피가 제일 큰 문제라구요.”


여기까지 말하던 두 사람 (아니 사람이 아니라 뱀파이어, 즉 두 흡혈귀)은 갑자기 실수했다는 듯 동시에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사색이 된 채 식탁 모서리를 움켜잡고 서 있었다.


내 귀에는 집사의 마지막 말이 자꾸 맴돌았다. ‘에이즈 걸린 인간 피가 제일 큰 문제라구요. 인간의 피가... 인간의.....’


여자가 손을 뻗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 오해하지 말아요. 집사 말은 그러니까.......”


“아아악---! 저리 갓--! 이 흡혈귀야--!”


나는 이렇게 소리치고 식탁 위에 있던 은 쟁반을 들어 집어 던졌다. 그 때 여자의 얼굴은 심하게 굳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여기서 도망쳐야겠다는 일념하나 밖에 없었다. 왜 깨어났을 때 곧바로 도망치지 않았을까? 집사가 현관을 가르쳐 줬을 때 나가지 못했을까?


나는 복도를 뛰면서 괴성을 질렀다. 집사가 나를 쫓아왔다. 나는 그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졌다. 값이 나갈 것 같은 도자기며, 액자며, 은촛대 같은 고풍스러운 것들이 박살이 났다.


“으악--! 명나라 때 도자기! 안돼! 이건 이집트 파라오 촛대란 말야! 그만해, 이 미친놈아! 우리 집안 물건을 다 박살낼 셈이냐---!”


드디어 현관이 보였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서 달려나갔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돌리려는 찰나 집사의 손이 내 뒷덜미를 낚아챘다.


“으아악--! 저리 치워--t!”


집사의 손을 뿌리침과 동시에 내 팔이 현과 옆에 있던 납으로 만들어진 기사의 창에 찍혀 붉은 선혈이 튀었다. 아릿한 고통이 팔을 통해 심장으로 전해져 왔다.


“........!”


금방이라도 내 숨통을 조일 것처럼 노기를 띠던 집사의 눈이 커졌다. 그는 틀림없이 내 팔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 울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꿀꺽.....!


나는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이제 모든 것이 끝장난 것이다. 돈 백 억에 눈이 뒤집혀 살인을 저지르겠다는 무모한 결심이 결국은 장가도 못 가본 채 이대로 흡혈귀들에게 피를 빨려 죽음을 당하게 만든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에이즈라도 걸리게 난잡한 성생활이라도 해둘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물론 돈도 능력도 없어 그것도 바램일 뿐이었지만......주르르..... T.T)


집사의 거친 숨소리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바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내 목을 뚫을 거라고 생각한 순간,


“집사! 그 손놓지 못해!”


카랑카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걸 구사일생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잠시 죽음이 밀려난 것뿐일까? 어떤 것이든 그 순간은 여자가 생명의 은인처럼 느껴졌다.


“이거 마셔요.”


다시 주방으로 끌려와 앉은 내 앞에 여자가 향긋한 과일 주스를 내 놓았다. 집사는 못내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시며 구석에 서 있었다. 아직도 내 팔에서는 피가 흘러 내렸다.


나는 여자의 눈치를 살폈다. 여자도 뱀파이어라면 내 피를 보면 눈이 뒤지어 질 텐데……. 하지만 여자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붕대와 작은 접시를 가져왔다.


“현관 앞에 있는 납 동상은 500년도 넘은 거예요. 거기에 찍혔으면 파상풍에 걸릴지도 몰라요. 일단 납독을 좀 빼내는 게 좋겠어요.”


여자는 내 어깨부터 아래로 팔을 조이듯 주물렀다. 꽤 깊게 파인 상처에서 피가 흘러 접시에 떨어졌다. 순간 여자의 턱 선이 가늘게 떨리는 것 같아 섬뜩했지만, 다시 보니 여자는 능숙한 솜씨로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자, 됐어요. 생각보다 상처가 깊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고, 고맙습니다. (살려줘서…)”


“잡아먹지 않아서 고맙다는 뜻이겠죠?”


“……. (다 알면서 묻는 게 젤로 얄밉다는 거 아니?)”


“하긴 정말 근 100년 동안에는 이렇게 신선한 인간의 피를 구경해 본 적이 없네요.”


여자는 접시에 고인 내 피를 보며 말했다. 다시 내 온 몸의 세포가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후후… 이리와 봐요.”


“네?”


여자가 데리고 간 곳은 지하창고였다. 하지만 그곳은 창고라기보다는 거대한 냉장고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서늘했다. 하긴 두 벽면은 일부러 설계해서 짜 맞추어 놓은 실제 냉장고가 놓여져 있었다.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냉장고는 칸칸마다 목록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여자가 그 중에 한 칸을 열었다. 나는 그 속을 보며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마치 보약처럼 비닐봉지에 담겨진 채 밀봉된 수많은 피 봉지들……!!


급기야 내 턱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여자는 죽기 위해서 그 광고를 내 것이 아닌지도 몰랐다. 돈 백 억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무모한 킬러들을 잡아 그들을 대형 녹즙기에 넣고 피를 짜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 봉지 한 봉지 담아서 냉장고에 보관한 거라면?


그렇다면 나는 왜 살린 걸까? 나를 산 채로 잡아먹을 생각을 한 것이 틀림없다. 나는 목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여자의 송곳니가 내 목에 박히는 상상을 하자 소름이 쫙 돋아 올랐다. 매일 물 칠만 하던 내가 어제는 무슨 맘으로 때 수건으로 목을 밀었었나 하는 생각에 미치자, 그만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랬다. 나는 어쩌면 죽어도 싼 놈일지도 몰랐다. 돈 백 억에 사람을 죽일 생각을 먹은 내가, 그런 공돈을 노린 나 같은 놈들에게 하늘이 내리는 형벌이 아닐는지…….


그렇게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어 나는 애원하듯 여자에게 한 마디를 겨우 했다.


“마지막 소원이 있어요. 죽기 전에 람보르기니를 한번 타 봐도 될까요?”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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