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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연 Aug 29. 2019

그대 자살을 꿈꾸는가? (3)

[space story]  17.

그녀를 들쳐업고 오솔길을 냅다 달렸다. 가녀린 몸이 종이 장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이대로 말라 부서져 바람에 날아 갈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 나는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이봐요! 문 열어요! 아무도 없어요?"


그녀의 빌라 앞에 도착해서 문이 부서져라 두드려 댔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원에 있던 람보르기니를 꺼내야 했다. 그 차로 이 여자를 응급실로 데리고 가야한다.


여자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돈 백 억도, 내가 여자를 죽이러 왔다는 것도 모두 잊은 채 내 얼굴은 온통 눈물 범벅이 되었다.


"아무도 없는 거야? 사람이 죽어 간단 말야! 어서 문 열어--!"


내가 발악하듯 외치자, 대문은 마치 입을 벌리듯 열렸다. 그리고 넓은 정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잔디 위로 돌아가는 스프링쿨러에서 뿜어지는 물줄기는 정오의 햇살을 받아 작은 무지개를 여러 개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 눈에서는 빌어먹을 눈물이 또 다시 흘러 내렸다. 사람이 죽어 가는데 이 놈의 집구석은 뭐가 이리 아름다운지...... 나는 감상에 젖으려는 마음을 거칠게 도지질 치며 자동차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그때였다.


“뭡니까.”


푸른빛이 감도는 빌라의 현관문이 열리며 검은 연미복을 멋스럽게 차려 입은 노인 한 명이 나타났다. 이마와 코밑으로 깊게 패인 주름은 연륜을 말해 주었고, 양옆으로 찢어진 눈과 매섭게 닫혀진 입술은 몹시도 깐깐해 보이는 성품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노인이 누구인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홍차에 청산가리를 넣었다고 해서 척추를 부러뜨렸다는 이 여자가 말한 집사가 틀림없었다. 설마 저 왜소한 체구로?


“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멍하니 서 있었던지, 노인은 다시 한번 물어왔다. 그가 서 있는 위치라면 내 등에 업혀 있는 여주인이 보일텐데도 그의 태도는 전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저기, 그러니까...”


나는 더듬거리며 노인을 향해 한 발자국을 떼었다.


“움직이지마!”


노인은 갑자기 노기 띤 음성으로 소리쳤다.


“네?”


“잔디를 밟으면 곤란하지! 그 잔디가 얼마짜린 줄 알아?”


나는 한 발을 든 채 어정쩡한 태도로 몸을 기우뚱거렸다. 집사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내 신발에서 떨어진 잔디에 묻은 흙을 털어 내었다.


“후유... 큰일 날 뻔했어.”


나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집사의 눈에는 칼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이 여자가 보이지도 않는단 말인가?


“이봐요!”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민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이 까짓 잔디가 대숩니까! 사람이 죽어 간다구요! 이 여자 당신 주인 아닙니까?”


하지만 집사는 별 상관없는 태도로 탁탁, 소리를 내며 손을 털며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어서 병원으로 데려 가야 한다구요!”


“왜 버럭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난리가! 나 귀 안 먹었어!”


나는 놀라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노인의 목청이 얼마나 컸던지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내가 멍하니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자, 노인은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는 빼곰히 고개를 빼고 업혀 있는 여자의 어깨를 톡톡 쳤다.


“아가씨. 장난 고만 치고 이제 내려오세요.”


순간 내 등위에서 “킬킬...” 하는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머리가 쭈볏 설만큼 온 몸에 소름이 끼쳐왔다.


설마.....


얼어붙을 만큼 창백한 얼굴로 내가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장난기 가득한 여자의 얼굴이 코앞에 보였다. 경악한 내 눈이 얼굴을 반쯤 덮을 만큼 커지자, 여자는 아예 몸까지 들썩이며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나는 경기를 일으키며 여자를 등에서 떼어 내었다. 여자는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픈지 인상을 쓰며 엉덩이를 쓰다듬는 여자를 보며,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쯔쯔... 꼴이 그게 뭡니까.”


집사는 여자를 일으켜 세우며 잔소리를 계속했다.


“이제 저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구요. 하루에도 몇 번씩 잡놈들이 들어와 집안을 망치지 않나, 아가씨는 맨날 이 꼴로 내 속을 긁어 놓잖아요.”


“씨, 아프네. 어떻게 칼로 찔리는 거 보다 엉덩방아가 더 아플 수가 있지?”


여자는 여전히 엉덩이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나는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 덜덜 떨어서 치아가 제 멋대로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빠져나가야지..... 여기서 도망쳐야 해.


발을 질질 끌며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나는 몇 걸음도 채 못 가서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분명히 식칼에 찔렸던 여자가, 내 등뒤에서 킬킬 웃던 여자가 나를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어디가요?”


“......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입을 열 수 없었다.)”


“그쪽 정말 잘 달리던데요? 단거리 육상선수 해도 되겠어요.”


“...... (지금 그걸 농담이라고 하는 거냐? 나는 식은땀만 줄줄 흘렸다.)”


“점심때도 다 됐는데 같이 식사나 할래요?”


“...... (너 같으면 너랑 마주 보고 밥 먹고 싶겠니?)”


내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자 여자도 말을 멈췄다. 이제 보니 빤히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검은 눈동자가 아니라 짙은 회색이었다.


여자는 당돌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오솔길에서 여자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이제는 여자가 아무리 심한 욕을 한다해도 도망칠 것이다. 내 느낌이 여자에게 전달되었던지, 여자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멈춰 섰다.


“돈이 필요해서 여기 온 거 아닌가요?”


“... 이제 돈도 필요 없어요.”


내 목소리가 맞나?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져 나왔다.


“왜요?”


“......”


“무서워서?”


나는 유치원 선생 앞의 어린애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겁내지 말아요. 나는 귀신같은 게 아니니까.”


“그럼 뭔데요?”


여자의 붉은 입술이 약간 벌어지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몹시도 서글퍼 보였다. 지금까지의 장난기와 무서움을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게 할 만큼.


“나는 뱀파이어예요.”


나는 여자가 하는 소리를 똑똑하게 들었다. 하지만 나는 도망칠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그대로 기절해 버렸기 때문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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