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자살을 꿈꾸는가? (1)
[space story] 15.
아래는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광고다.
처음에 나는 이 글을 읽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목 : 돈이 필요하십니까?
나를 죽여준다면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돈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죽은 다음에 어떻게 보수를 받을 수 있냐구요?
그것은 걱정 마십시오. 내 유산은 변호사를 통해 공증을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그 중 상당한 금액이 나를 죽인 사람에게 지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사실은 *** 변호사 사무실을 통해 확인하시면 됩니다.
자, 그럼 나를 죽이겠다는 결심을 했나요? 그렇다면 이제부터 당신이 좀 더 쉽게 일을 마칠 수 있도록 나에 대한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나의 집은 구기동 산333번지입니다. 건평만 100평의 호화빌라지요. 나는 매일 아침 6시 정각에 일어나 곧장 2층 베란다에 나와서 담배를 핍니다. 그 때 총으로 쏴도 괜찮겠지요.
아니면 오전 10시쯤 집을 나와서 빌라 주변의 공원을 산책합니다. 가끔 키우는 개를 데리고 나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혼자 다닙니다. 이 때 칼로 찌르거나, 목을 졸라도 상관없습니다. 단, 성폭행은 하지 마십시오. 나는 죽고 싶지만, 더럽게 죽고 싶지는 않답니다.
이 기회도 놓쳤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후 4시가 되면 정원에 나와서 티타임을 갖습니다. 차에 독약을 타도 상관은 없는데, 그것은 조금 어려울 겁니다. 우리 집사는 아주 깔끔한 성격이라 자신이 준비한 것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은 참지 못하거든요.
얼마 전에도 한 사람이 제 홍차에 청산가리를 탔다가 집사한테 걸려 거의 죽을 뻔했답니다. 집사는 그 사람의 척추를 부러뜨린 다음에 이렇게 말했지요.
“주인님을 죽이는 것은 상관없는데, 내가 만든 홍차 맛을 떨어뜨리는 것은 용서할 수가 없다.”
아마도 그 남자는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할거예요. 집사를 대신해서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집사의 성격이 워낙 괴팍해서 말이지요.
티타임도 놓쳤다면... 글쎄요. 다음 기회는 밤 9시쯤에나 있겠네요.
나는 일찍 잠드는 편이라 10시면 골아 떨어집니다. 하지만 내 침실은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침실로 들어오려는 것은 포기하시는 게 날겁니다. 그대로 전기구이가 될지도 모르거든요.
하지만 9시쯤이라면 제가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입니다. 너무 늦지요?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잠들기 4시간 전에는 아무 것도 안 먹어야 한다지만, 저는 워낙 말랐어요. 그래서 일부러 늦게 먹는 답니다. 살이 찌고 싶어도 안 찌는 사람의 괴로움도 크답니다.
이런, 얘기가 옆으로 샜군요. 하여튼, 9시는 집안의 모든 경비 장치가 해제됩니다. 1시간 동안 누가 들어와도 상관없도록 일부러 그런 거예요. 집사는 날 죽이러 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집안이 더러워진다고 투덜대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해야 여러분들의 수고가 조금은 줄어 들 테니까요.
하지만 들어 올 때 신발에 묻은 흙은 털어 주세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집사는 바닥 더러워지는 것도 못 참아 하거든요. 후유... 너무 까탈스러운 하인을 두는 것도 힘든 일이랍니다. 그래도 너무 오래 곁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내보내지도 못해요.
자, 이쯤 하면 되겠지요?
제발 부탁합니다. 저를 꼭 좀 죽여주세요. 죽어서도 그 은혜는 꼭 갚을 겁니다.
-------
위의 내용을 누가 사실이라고 믿겠는가?
나도 처음에는 별 웃긴 인간 다 보겠군, 하며 넘겼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글 속에 나와 있는 변호사 사무실이 바로 내 친구형이 다니는 법인체였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친구형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아, 그 공증건? 말도 마라, 그거 때문에 지금 우리 사무실 전화 폭주다. 그거 다 사실이야. 유소진이라는 젊은 여잔데, 한 마디로 미친년이지, 그게 말이 돼는 소리냐? 여하튼 그 여자 죽이려고 꽤 많은 인간들이 시도했는데, 모두 실패라고 들었어. 하긴 나도 해보고 싶어진다니까. 그 여자 죽이면 떨어지는 돈이 100억이거든.”
백억......!
나는 백억이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빌빌대던 동안 내가 번 돈이라고는 번역 아르바이트를 해서 나왔던 48만원이 전부였다. 취업문은 너무 높았고, 학점도 좋지 못했던 내가 들어갈 수 있는 회사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백수로 사는 결정적인 이유는, 성격 탓이었다. 몇 푼 안 되는 월급을 받기 위해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한달 동안 뼈빠지게 고생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목숨 줄이 붙어 있는 한 굶어 죽기야 하겠어, 라는 이 느긋한 성격 때문에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속이 터진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답답하지 않은데 무슨 상관인가.
그래도 돈은 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빈대 붙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는 친구들조차 나를 만나기 꺼려했다. 부모님은 나를 포기한지 오래였고, 돈이 없으니 여자가 붙을 리도 만무했다.
슬슬 이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날 길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였다. 그렇다고 취업은 죽어도 못하겠고, 사업을 하자니 자본도 없거니와 이것저것 따져보니 귀찮은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백억이란다. 백억.
“형, 그 여자 죽이면 살인죄로 무기징역이나 사형 아니야? 아무리 돈이 좋아도 지 목숨 내 놓으면서까지 그 짓 하겠어?”
“이번 건은 상황이 좀 다르거든.”
“어떻게?”
떠보는 듯한 내 질문에 형은 깔끔한 대답을 했다.
“그 여자가 먼저 살인청부를 한데다가, 유산이 장난이 아니야. 그 전부를 국고로 환원하겠다고 공증했는데, 조건이 자신을 죽인 사람의 죄를 면해 달라는 거야. 그 액수면, 우리 쪽 예상으로는 완전 감면은 어렵더라도 3년 이상은 살지 않을 거라고 봐.”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부서지며 들어온다. 뜬눈으로 밤을 샜다. 내 앞에 놓여진 노트에는 새까맣게 낙서가 되어 있다. 백억, 3년, 백억, 3년, 백억, 3년, 백억, 3년, 백억, 3년...... 그리고 마지막 낙서는 O.K.
그래, 인생은 길고 3년은 짧고 백 억은 많다.
그 여자가 왜 죽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결심했다.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