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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연 Aug 19. 2019

한강 괴담

[space story]  13.  한강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십여 년 전, 그 일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사실, 나는 그 날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벌써부터 온 몸에 냉기가 흐르는 느낌이군요. 아, 지금이라도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고 싶습니다. 안될까요?      


(그녀는 정말 두려운 시선으로 우리를 둘러보았다.)      


네… 여기까지 나온 이상 나는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아무리 덮어두고 감춘다 해도, 여러분은 나를 통해서가 아니라도 끝까지 그 일을 파헤칠 겁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꼭 밝혀야 하는 것보다 그냥 묻어두는 것이 더 나은 일도 있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어요.      


(나는 상의 주머니에 몰래 숨겨둔 소형 레코더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오늘 이 자리의 녹음은 허가 받지 못했지만, 진실은 기록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물론 특종을 터뜨리겠다는 욕심임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 일은 1989년 겨울 한강 고수부지 광나루지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때 나는 가출을 한지 5일째였습니다. 고 3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성적에 대한 압박감으로 엄마와 심하게 싸운 후였어요. 그냥 홧김에 집을 나온 것이었지만, 가출을 하고 보니 새로운 세상이 있더군요.


노래방이나 비디오방에서도 자고, 나보다 먼저 가출해 있던 친구들을 따라 나이트클럽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화장도 하고, 남자 친구도 생겼어요. 그 때는 자유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을 겁니다. 무작정 좋았던 한 때였지요.     


(신참 기자 한 명이 그 사건에 대해 바로 들어가 줄 것을 부탁했다. 서두르긴… 저 자식은 특종을 터뜨리긴 글러먹은 놈이다. 그녀의 말문이 막힐까봐, 나는 초조해졌다.)     


내 나이 이제 스물아홉입니다. 열여덟 살에 겪었던 그 일이 내 인생을 얼마나 저주스럽게 만들었는지, 여기계신 기자 분들은 모르세요. 정신과에서 준 알약만 해도 이 강의실의 3분지 1은 족히 될 거예요. 그 알약을 먹을 때마다, 그 때 죽은 사람들의 눈동자를 먹는 것 같아, 토하고, 토하고, 또 토하고…….당신들 정말 지독하군요. 기어이 나에게 그 때 일을 말하게 하다니…….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20여분 동안 울었다. 나는 아까의 신참 기자 놈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이 상태라면 인터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오늘 소개팅이 있는 날인데. 시간이 빠듯할 것 같다. 목이 좀 답답해 왔다. 오늘의 소개팅을 위해서 나는 새로 산, 파란 줄무늬의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급증에 파란 줄무늬 넥타이의 매듭을 약간 풀어놓았다.)     


가출한 지 일주일이 되던 그날, 같이 어울리게 된 멤버들하고 한강 고수부지를 찾아갔습니다. 날씨는 추웠지만 우리는 전부 술에 취해 있었고, 밤공기를 찢어 놓을 듯이 노래를 불렀었지요. 그 중에 리더격인 오빠가 우리를 아지트로 안내한다고 했습니다.


고수부지 계단을 내려가서 바로 한강이 눈앞에 있는 벽 쪽으로는, 하수구를 통해 물들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옆에 작은 통로가 있었어요. 마치 방호구처럼 만들어진 그 안은 예닐곱 명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은 습기로 가득 차 있어서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거기에 나는 약간의 야맹증이 있었습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거의 장님처럼 더듬거리기 일쑤였지요.


한 밤중, 그 안은 너무나 캄캄했습니다. 나는 더듬이처럼 발로 앞을 몇 번씩이나 디디며 들어갔어요. 그때 앞서 가던 오빠가 농담처럼 가볍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그 말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 오빠가 뭐라고 했냐면…….     


(여자가 또 말을 끊는다. 조금씩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정확히 12년 전에 저 여자가 말하는 고수부지 하수구 안에서 청소년 7명이 시체로 발견됐었다. 당시 생존자는 저 여자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죽은 시체의 혀가 모두 길게 빠진 채 죽어 있다는 것이었다.


유일한 목격자인 저 여자는 발견된 당시 심한 실어증 증세를 보였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어떤 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엽기적인 사건은 여론을 들끓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수사는 미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여자는 그 어떤 추궁에도 절대로 입을 열지 않았었다. 그런 그녀가 12년 만에 녹음을 하지 말아 달라는 단서를 단 채 기자회견을 수락했다.)      


오빠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하수구 안에는 목소리 귀신이 산데. 그러니까 절대로 여기서 녹음을 하면 안돼. 그 녹음기에 귀신의 목소리가 쓰이면 녹음을 한 사람을 제외하고 함께 있는 사람이 모두 죽는다는 거야.”


선배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놀란 가슴에 엎어지고 말았습니다. 야맹증이기도 했지만, 내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녹음기가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 때 나는 라디오에서 나오던 노래를 녹음하려고 녹음 버튼을 누르고 있던 상태였지요.


어둠 속에서 엎어짐과 동시에 나는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정말 믿지 못할 일이 눈앞에 펼쳐 있었어요. 모두가……, 나를 제외한 모두가 그대로 죽어 있었습니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또 신참 기자 저 놈이 끼어들었다. 사실 다른 기자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런 황당한 얘기를 듣기 위해 12년을 기다려 왔다는 것이 기막히다는 표정들이었다. 더욱이 사건 현장에서 녹음기가 발견 됐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괜히 찜찜해지기 시작했다. 내 안주머니에서 돌아가는 소형 레코더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네… 믿지 못할 겁니다. 현장에 있던 저도 믿지 못했는데요. 하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나는 분명히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똑똑히 봤으니까요. 너무 무서워서 이빨이 부들부들 떨려왔습니다. 어서 빨리 이 지옥 같은 방호구에서 나가려고 벌떡 일어섰지요.


그러다 무언가 내 옷에서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녹음기였어요. 그대로 도망치려고 뒤돌아섰는데 무언가 자꾸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습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했지만 강렬한 그 무엇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듬거리며 녹음기를 집어 들었어요. 떨어지면서 녹음 버튼은 제 자리로 돌아가 있더군요. 나는… 플레이 버튼에 손가락을 갖다 댔습니다. 그들이 죽었을 때 이 녹음기는 계속 무언가를 녹음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혹시 진짜 목소리 귀신의 소리라도 녹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믿지 못할 생각도 들었습니다.     


(과연 그 테이프 안에 무엇이 녹음되었을까. 기자들은 다시 숨죽이며 여자의 말을 경청했다. 여자는 한동안 눈을 감은 채 온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몇 분 후, 심호흡을 하더니 가방에서 낡은 레코드를 꺼내 들었다.)    

 

이것이 그 때의 녹음기입니다. 나는 이 녹음기가 외부 사람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숨겨 두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12년 동안 나를 괴롭혔습니다. 진실을 말해라,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이죠.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절실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제발, 내가 이 플레이 버튼을 누르지 않게 해주세요.     


(왜일까. 나야말로 안주머니에서 돌아가는 녹음 버튼을 정상으로 돌려놓고 싶어졌다. 나도 알지 못할 어떤 두려움이 내 심장을 조여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기사를 포기한 채 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프로 기자였다. 이번에 특종을 잡는다면 사회부 팀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성능 좋은 레코더는 그 소리까지 다 녹음하고 있을 것이다.)     


…… 할 수 없군요. 내가 이 자리를 피하면 당신들은 평생 나를 괴롭히겠지요. 네… 당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목소리 귀신의 실체를요.     


(드디어 그녀가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녹음기에서는 당시 유행했던 어떤 가수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잠시 후 테이프가 심하게 늘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곧 바로 들려오는 것은 한 남학생의 목소리였다. “이 창고 안에는 목소리 귀신이 산데. 그러니까 절대로 여기서 녹음을 하면 안돼. 그 녹음기에 귀신의 목소리가 쓰이면 녹음을 한 사람을 제외하고 함께 있는 사람이 모두 죽는다는 거야.”


아까 여자가 말한 그대로였다. 그리고 곧바로 “꺄악-!” 하는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당시 그녀가 넘어지는 소리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이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 테이프 돌아가는 소리만이 웅웅거리며 들려올 뿐, 녹음기 안은 고요한 침묵 그 자체였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테이프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쇠를 가는 것처럼 신경을 날카롭게 긁는 소리였다.)     


.............................”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녹음기를 들고 있던 그녀의 눈에 극도의 공포가 실렸다고 느낀 순간, 마치 보이지 않는 쇠꼬챙이가 혀를 잡아 뽑듯이 그녀의 혀가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공포에 휩싸인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 자리에 있던 십여 명의 기자들의 입에서도 순식간에 붉은 혀가 뱀처럼 기어 나온 것이다. 나도 12년 전의 그 여자처럼 실신하고 말았다.)     


7년 후.

모 일간지 사회부 수습기자 유창호는 급하게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엽기적 한강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김미정이 죽은 지 7년째 되는 날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그녀뿐이 아니었다. 당시 취재를 하던 기자들 10 여명이 함께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 자리의 유일한 생존자는 바로 유창호 기자의 대 선배인 박재민 기자였다. 그는 발견당시 심한 실어증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을 밝히려 했던 기자회견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나서 오랜 시간이 흐른 셈이다.


유창호 기자는 시계를 보았다. 벌써 3시 30분이었다. 그는 자료를 챙겨 들고 일어섰다. 4시에는 신문사 대 회의실에서 박재민 생존자의 기자회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막 나가려는데 사회부장이 들어왔다.


“어이, 유기자. 잘해보라구. 오늘 특종을 잡으면 수습 없이 바로 정식 기자 발령 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부장님. 내일 신문 판매 부수가 적어도 세배는 뛸 테니까요.”


유창호 기자는 씩씩하게 말하고는 복도를 걸어갔다. 그리고 그는 유리창에 잠시 얼굴을 비추곤 씩 웃었다.


“녹음은 안 된다구? 웃기지마. 이것만 있으면 바로 정식 기자 발령 받는단 말야.”


그의 손에는 작은 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소형 녹음 마이크로 칩이 내장된 반지였다. 회의실을 향해 걸어가는 유창호 기자의 뒤로 짙은 어둠이 쫓아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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