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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소연 Aug 20. 2019

아내에게 가는 길

[space story]  14.

“우리 그만 헤어지자.”


식탁에는 아내의 특기인 우렁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언제나 정갈하게 상을 차려내는 아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폭탄선언을 했다.


“무슨 소리야?”


“이혼하자구.”


“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내 목소리는 너무나 무덤덤하게 나왔다. 아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 다른 여자가 생겼어?”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도대체 이유가 뭐야?”


“말했잖아.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구.”


조상처럼 굳어져 버린 아내를 내버려 둔 채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이미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예년에 비해 가을이 몹시 짧다고 하더니, 옷깃으로 스며드는 바람에 서늘함까지 느껴졌다.


드디어 아내에게 말하고 말았다. 대학 때 과 커플로 만나 7년의 열애 끝에 처가댁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결혼한 아내였다. 결혼 한지 13년.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인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다.


대학 시절 아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외모, 성격, 집안, 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여자였다. 그런 아내를 평범했던 내가 차지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아내의 눈에 콩깍지가 쓰인 거라고 답답해했다. 그렇게 함께 한 시간이 벌써 20년이 흘렀다.


연애 시절 나는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공부에 매달렸다.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야 장인어른의 허락을 받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박봉에 시달리는 시간 강사 자리를 떠돌다 5년 전에 겨우 전임을 맡을 수 있었다.


그 어려운 시간 동안 아내는 헌신적으로 내 곁에 있어 주었다. 단 한번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나를 탓해 본 적이 없는 여자다. 정말 힘들었을 때 처가댁에서 보내 준 생활비조차 내 자존심이 상할까봐 거절할 만큼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여자였다. 그런 아내가 고마웠고, 진심으로 사랑했다. 아니, 사랑한다고 믿었다.


“미친놈. 너 제정신이냐?”


답답해서 술 한 잔 할까 부른 대학 동창 놈은 이혼하겠다는 내 말에 성을 버럭 냈다.


“너희가 어떻게 결혼했는데 이제 와서 이혼이야? 게다가 네 와이프만한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냐? 복에 겨워서 아주 지랄을 하는 구나, 네 놈이.”


“고등학교 국어 선생이란 놈이 지랄이 뭐냐, 지랄이.”


“그래, 고등학교 선생은 욕하면 안 되고, 대학 교수님은 멀쩡한 아내를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는 거구?”


나는 입을 다문 채 독한 술 한 잔을 털어 넣었다. 하긴 세상 그 누가 나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 자신조차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없는데.


“이유나 좀 알자. 갑자기 이혼하겠다는 이유가 뭐야?”


“더 이상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어.”


“정말 미친 놈 맞네. 세상 어느 부부가 사랑으로만 산데든? 네 말 대로라면 99%, 아니 100% 부부가 이혼해야 할 거다.”


친구 놈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나보고 갱년기 장애라고 했다.


“그나저나 요새 너희 학교 재단 쪽으로 문제 많다고 난리던데, 괜찮냐?”


우리 대학의 재단 비리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은 벌써 몇 년 전이었다. 하지만 요새 와서야 언론에 집중 보도되고 있었다. 친구는 혹시나 이 문제로 내 자리가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 염려되어서 물어 본 것이다. 나는 ‘응.’이라는 짧은 대답만 하고 친구와 헤어졌다.


새벽 1시가 넘었지만 아내는 아직 잠들어 있지 않았다. 혼자 비디오를 보고 있던 아내는 내가 들어 왔는데도 비디오를 끝까지 보고 나서 침실로 들어왔다. 아내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아내는 침대에 올라와서 등을 보이고 누운 내 옆에 누웠다. 작은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나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잠시 후 아내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잘 맞춘 조각 인형처럼 우리의 몸이 밀착 된 채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아내의 몸은 여전히 따스했다.


“오늘 당신을 느끼고 싶어.”


아내의 손이 내 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더니, 잠 옷 바지 속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내 몸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주인의 손에 길들여진 기계처럼 내 몸은 아내의 손길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오늘 아내의 움직임에는 미묘한 긴장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첫 경험을 하는 여자에게서 느껴 질 수 있는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 등에 얼굴을 묻은 채 깊고 깊은숨을 몰아쉬고 나서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을 알아.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면 정말 그런 걸 거야.”


“…….”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정말 궁금해. 얘기 해 줘.”


갑자기 속에서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쳐 올라왔다. 20년 동안 아내에게서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은 세 가지였다. 당신을 믿어, 당신을 이해해, 당신을 알아. 그 말들이 나를 족쇄처럼 묶어 옭아매고 있었다는 것을 아내는 알까?


나는 아내를 처음 만나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아내 앞에서 ‘힘들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비참한 모습을 보일 지라도 아내 앞에서만은 나는 ‘당당한 남자’이고 싶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밖에서 나는 수도 없이 무너져야 했다. 그런 나에게 아내는 언제나 의연한 모습으로 나를 독려했다. ‘당신을 믿어. 당신을 이해해. 당신 마음 다 알아.’


하지만 정작 내가 너무나 지쳐 울고 싶을 때에조차 나는 아내 앞에서 웃어야 했다. 아무 걱정 말라고 큰 소리 쳐야 했다. 그럴 때마다 돌아서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며 애써 이를 악물고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위선적인 내 모습에 지쳐 버렸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아내를 내려다보았다. 아내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이제야 내가 진짜 이혼하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당신은 내 앞에서 울 수 있는데 나는 당신 앞에서 울 수가 없어. 그게 이유야.”     


2개월 후, 아내와 나는 별거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대학에서 쫓겨났다. 뜻이 맞는 몇몇 교수들과 함께 재단과 맞서 싸웠다는 이유였다. 이제 반 백수가 된 나는 홀가분한 심정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아내는 나를 기다린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 할 수 있는 때, 그리고 가끔 눈물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때가 오기 전에는 아내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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