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소연 Sep 04. 2019

그대 자살을 꿈꾸는가 (6)

[space story]  20.

새벽 4시, 구기동 기슭 주변은 묘한 기운으로 휩싸여 있었다.


나는 벌써 일곱 개비의 담배를 피워 댔다 . 여자는 잘 짜 놓은 관에 누운 채 나를 말똥말똥한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탁자 위에는 말뚝과 거대한 망치가 흉물스럽게 놓여져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말뚝을 들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난 못합니다!”


“돈 백 억이 생기는 일이에요.”


“난 돈에 환장한 놈이긴 해도 아는 사람을 죽일 수는 없어요.”


“아는 사람?”


여자는 그 말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에이 씨! 따지지 좀 말아요!”


나는 여자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앉혔다. 산 사람이 관속에 누워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신경질이 바득바득 일어나는 일이었다.


“죽긴 왜 죽어요! 병원 중환자실 가 본적 없어요? 거기 가면 살고 싶어서 바둥 바둥 대는 사람 천지라구요! 호강에 겨워 죽고 싶은 거에요? 사람이 아니면 어때요! 사람 보다 더 잘 살고 있으면서! 남은 살고 싶어 안달인데 어디서 죽겠다는 헛소립니까! 네??”


“나한테 왜 이래요?”


그랬다. 여자가 이렇게 물을 만큼 나는 흥분하고 있었다. 왜?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지?


“암튼 나는 못하니까 돌아갈랍니다. 정 죽고 싶다면 다른 놈 구해다가 말뚝을 박던지 말던지 알아서 하라구요!”


괜한 화가 바득바득 올라와서 성질을 내고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쾅! 방문을 거칠게 열었다. 그러다 나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방문 앞에는 얼굴이 몹시도 창백해진 집사가 마치 살아 있는 정승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뭡니까! 깜짝 놀랐잖아요!”


하지만 집사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눈빛에서 묘한 경계심과 함께 어떤 열기가 느껴져서 한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 했다. 이 충직한 하인(사실은 약간 제 멋대로 인)은 내가 진짜로 주인의 심장에 말뚝을 박는 것이 아닐까 보고 있다가 나를 잡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모를 일이다. 피곤함이 갑작스레 몰려들었다. 단 하루 동안 내가 겪은 이 믿어지지 않은 상황에 몹시도 긴장해 있던 세포들이 그대로 이완되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봐요, 할아버지. 난 돌아 갈 겁니다. 저 여자 잘 설득해서 둘이서 잘 사십쇼.”


진심이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집사를 비켜 한발을 떼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노인의 힘이라고는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괴력으로 집사가 나의 팔을 움켜잡았기 때문이었다.


“아악! 왜 이래요! 이거 놔요, 어서!”


하지만 집사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좀 괴팍한 노인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노인네라고 느꼈었다. 그러나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집사는 왠지 모를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 뭔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집사. 이제 됐어.”


여자가 걸어왔다. 어둠 속에서 여자의 하얀 피부는 생기를 잃고 침울해 보였다.


“그 분을 돌아가시게 해. 좀 더 다른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남의 힘을 빌어 죽으려고 애 쓴다는 것 자체가 허망하게 느껴지네.”


“으아악---!”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소리치고 있었다. 내 팔을 잡은 집사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가서 마치 이대로 팔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집사! 그만 하라니까!”


여자가 엄하게 소리쳤다. 그제야 집사의 손에 약간 힘이 빠졌다. 하지만 나를 놓아 준 것은 아니었다.


“아, 아가씨…….”


몹시 갈라져 나오는 쇳소리. 순간 고막을 날카로운 쇠꼬챙이로 긁어대는 것 같은 느낌에 나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여자도 집사의 목소리에 놀랐는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찾았습니다. 드디어 찾았어요.”


“무슨 소리야? 뭘 찾았다는 거야?”


“피요. 1800년 동안 그렇게 찾아 헤맸던 < β-blood >를 찾았다구요!”


“........!!!”


여자의 눈이 얼굴을 반쯤 덮을 정도로 커졌다. 갑자기 현기증이 이는지 몸을 비틀하며 벽을 잡는 여자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전혀 알지 못할 소리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어, 어딨어? β-blood 는?”


“여기요! 이렇게 아가씨의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집사는 내 팔을 잡아 당겨 여자의 코앞에 나를 들이밀었다. 여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날카로운 손톱의 느낌이 피부에 닿는 순간에 나는 묘한 느낌을 경험했다.


소름이 끼치는 것이 당연한 일일 텐데도 그 순간 나는 분명히 ‘성욕’을 느꼈다. 여자의 붉디붉은 입술만이 클로즈업되어 보이는 것은 내가 미친놈이기 때문일까?


“사실이야? 이 사람의 피가 β-blood 라는 게?”


“예, 아가씨! 아까 이 사람의 상처에서 나온 피를 내가 먹어봤습니다. 확실해요! 완벽한 β-blood입니다.”


가만, 지금 이 사람들, 아니 이 뱀파이어들이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모세 혈관의 피가 한 곳으로 몰리는 것을 억지로 분산시키려고 고개를 흔들면서 질문을 했다.


“이것 봐요. 나도 좀 압시다. β-blood 라는 게 도대체 뭐길래 이러는 겁니까?”


“전설 속의 피.”


집사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알아듣게 설명을 좀 해주세요!”


“그 옛날 뱀파이어의 시조 중 한 분이 인간 사냥을 하다가 발견한 피라고 한다. 전 인류 중 수억 만 명중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희귀한 피가 β-blood 다. 그 인간의 피와 뱀파이어의 피를 교환하면 뱀파이어는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전해져 왔다.”


“뭐, 뭐라구요? 교환?”


“즉, 당신의 피와 내 피를 교환하면 나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러면 나는 그 옛날 내 친구들처럼 행복하게 죽을 수 있어. 이 저주스런 인생에서 벗어 날 수가 있다구요.”


이렇게 말하는 여자의 눈빛이 점점 생기를 띠고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모든 신경이 얽히는 듯했다.


“그, 그러니까 지금 내 피를 몽땅 뽑아서 당신 몸에 넣겠다는 말입니까?”


순간 여자는 갈등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게 용할 만큼 다음 순간의 여자는 너무나 냉정했다.


“집사. 수술 준비를 하고 이 남자를 침대에 묶어!”


아마 나는 발버둥 쳤던 것 같다. 집사가 억센 힘으로 나를 들쳐 업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내내 나는 발악하고 소리 지르고 울부짖고 애원했던 것 같다. 뭐가 뭔지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이대로 내 온 몸의 피가 다 빠져 나와 어느 괴기 영화에서 본 것처럼 내 몸이 쪼그라들어 그대로 해골이 되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발악할 힘도 남지 않았을 때 나는 발가벗겨진 채 천장의 하얀 전등을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침대에 묶여 있는 나는 실험실의 모르모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옆 침대에는 여자가 누워 있었다. 여자도 옷을 걸치지 않은 것 같았지만, 하얀 실크 시트가 덮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위로 드러나는 여자의 실루엣은 아름다웠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미친놈,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순간까지 저 여자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니!


집사는 익숙한 솜씨로 수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대한 유리관 두 개가 침대 위쪽에 놓여져 있고 그 관은 무수히 많은 진공 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각 줄마다 바늘이 꽂혀져 있는 걸로 봐서는 내 몸의 피를 뽑아 유리관에 넣는 동시에 다른 유리관에 있던 저 여자의 피와 체인지 되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적어도 피가 뽑혀 말라붙어 죽지는 않겠구나. 저 여자의 피가 내 몸에 들어오면 그래도 살수는 있겠지……, 하다가 순간 머리 속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해왔다.


“자, 잠깐만요! 분명히 피를 교환한다고 했습니까? 내 피를 저 여자한테 주고, 저 여자 피가 내 몸 속에 들어 온 다구요? 그럼 저 여자는 인간이 되면 나는요?”


“뱀파이어가 되는 거지.”


집사가 마지막 바늘을 진공 줄에 꽂으면서 말했다. 빌어먹을. 어떻게 저런 대답을 저렇게 간단  명료하게 할 수 있는 거지? 나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최대한 간절하게, 동정심을 유발하도록 최대한 애처롭게.


“이것 봐요. 인간 별로 안 좋아요. 힘도 없죠, 늙으면 추해지죠. 욕심은 더럽게 많죠, 돈 없으면 사람 취급도 못 받구요. 맨날 구박 덩이에, 한번 병들면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요. 인간이 되겠다는 건 미친 짓이라구요. 거기다가 내 피는 별별 더러운 것들이 다 섞여 돌아다닌다구요! 무좀균에 시달리죠, 약간의 치질 증세도 보이고, 담배를 얼마나 폈는지 냄새도 날 거에요. 거기다가…….”


“미안해요.”


여자는 단 한마디로 내 입을 막았다. 불 빛 아래에서 나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에는 비록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눈물보다 더한 습함이 가득 차 있어서 나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만약 당신이 원한다면 이 집과 내 전 재산을 당신에게 줄게요. 인간으로 살다가 죽을 수 있다면 나는 돈도 필요 없어요. 그러니까 당신 피를 나에게 주세요.”


“람보르기니도?”


갑자기 튀어나온 차 얘기에 나는 그만 헛헛하고 웃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을 다 준단다. 그리고 불사(不死)의 능력까지. 늙지도 죽지도 않은 채 그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살 수 있단다. 내가 인간임을 포기한다면……. 나쁘지 않은 거래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이건 내 인생에서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여자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내가 본 여자의 미소 중에서 가장 행복해 보였다. 저 여자… 정말 인간이 되고 싶었구나.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이 그토록 견디기 힘든 고통일까? 여자가 말한 추억으로 남지 못한다는 것이 그토록 삶을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괜찮을 것 같은데……. 즐기면서 살면 되잖아. 세상이 바뀌는 것을 모두 목격하며 사는 것도 재미날 것 같은데…….


“아가씨, 시작할까요?”


모든 준비를 마친 집사가 주인의 명을 기다렸다.


“기다려. 마지막 결정은 저 분이 하도록 하고 싶어.”


여자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사실, 내가 박차고 나간다면 어쩌면 여자는 나를 그냥 내버려둘지도 모른다. 내가 죽기보다 싫다고 애원하면 여자는 나를 보내줄 것이다. 여자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어떻게 하지? 어. 떻. 게?


당신이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


권소연입니다.

이 작품은 미완입니다.

20년 전의 저는, 이 스토리를 시작만 하고 끝을 내지 못했습니다.

어느 분이 이어서 써주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끝이 없는 글을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것도 예전의 저의 미숙한 모습이기에 올려 봅니다.


스페이스 스토리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제 노트북에는, 이곳에 올리지 않은 단 한편의 <space story> 가 남아 있습니다.

그 원고는 그냥 묻어 두고자 합니다.

완성도는 있으나, 결말이 제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앞으로 다른 글로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스페이스 스토리를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전 19화 그대 자살을 꿈꾸는가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