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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icle Nov 21. 2023

2호선 지하철에서 생각하기

내가 규칙적으로 지하철을 이용하던 때는 직장인이었을 때가 아마 마지막이지 않았나 싶다. 나는 지하철 한 번 타는 값을 정확히 모른다. 교통카드가 포함된 신용카드로 무심히 개찰구를 찍고 지나갈 뿐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국회의원이 되어서 지하철과 시내버스 비용을 모른다고 조롱 섞인 질책을 받던 정치인이 생각난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이 어떻게 대중교통 이용료에 관심이 없을까를 분개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한다. 운전을 하며 살게 된 이후, 나에게 지하철은 어쩌다 한 번 타는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제, 살다 보면 국회의원이 지하철 타는 비용을 모를 수도 있겠다는 너그러운 생각을 하는 시민으로 변했다.



학생이던 때 2호선 지하철을 매일 탔다.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것이 지루하여 머릿속으로 온갖 공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마저도 아닐 때면 정거장 사이의 시간을 재었다. 홍대입구에서 신도림까지는 10분, 신림역까지는 20분… 이렇게 시간을 세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잠실에서 신촌까지 지하철을 탔는데 나는 또 시간을 재었다. 대략 40분이 걸리는 거리다. 여전히 머릿속은 공상으로 차 있고 생각이 지루해지면 사람들을 쳐다본다.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보려고 애쓴다. 휴대전화를 가방에 집어넣고 책을 꺼내 읽었다. 지하철 한 칸에서 종이책을 읽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휴대전화가 사람들을 지배하기 전,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었다. 지하철 선반에는 사람들이 읽다 두고 간 각종 스포츠 신문과 일간지가 있었다. ‘예전에 신문 읽듯이 이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것이야.’ 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일방적인 편견일 뿐이다. 사람들의 취향은 다양하고 내 생각과 거리가 있다.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부터 나는 사람들을 관찰할 기회를 많이 잃었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약속을 정해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운전해 가는 일은 시간을 아끼는 데 도움을 주었고, 나의 몸을 덜 피로하게 했다. 혼잡한 틈에서 내 몸을 아무렇게나 치고 지나가는 무신경한 사람들로부터도 자유롭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적어진 후, 인간의 행동에 대한 나의 호기심도 같이 줄어들었으며 생각의 범위도 좁아졌다. 나와는 관계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금만 생각하고, 대부분을 나와 관련한 사람들의 삶에 집중하게 되었다.



나는 종종 30년 전에 대림역에서 만난 손이 고왔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지하철과 선로의 간격이 넓어 할머니 발이 빠질까 봐 조심스럽게 손을 잡고 내리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을 노부부의 따뜻한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는 또, 지하철 칸마다 돌아다니며 자신이 얼마나 노력해서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여전히 말을 더듬으면서도 또박또박 이야기하던 수줍은 젊은 남자도 잊을 수 없다. 지하철 안에서 파는 양말이나 바늘 세트를 주기적으로 사는 사람이 누구였냐면 바로 나였다. 지하철 이용자이던 때의 나는 마음이 약했지만, 세상에 좀 더 순수했으며 호기심이 가득했었다.



나는 이제 스마트폰으로 노트북으로 뉴스를 보며 왜 세상은 이렇게 생겨먹었나를 되뇌며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거침없는 욕을 아끼지 않는다.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제멋대로 펼쳐보던 나의 상상력은 우주 저 멀리 사라졌다. 운전의 편리함을 외면하지 못하면서도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향한 호기심을 완전히 지워버리지 못하는 어정쩡함이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이다. 그래도 아직은 세상에 대한 기대와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나의 감수성을 부여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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