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교사생활
예전에 한국에서 같이 근무했던 외국인 원어민 선생님, 이름은 Mark였는데, 미쿡 Oregon에서 오신 눈이 파랗고 아주 수줍음이 많은 남자 선생님이셨다. 이천~ 십 몇 년도였던 것 같은데 그때 한국에 꽤나 많은 영어 원어민 교사들이 학교에 배치되어 팀 티칭을 하던 게 정책적으로 지원이 되던 시기였다. 막상 비슷한 처지로 타국에 나와있다 보니 심심치 않게 한국에서 만났던 외국인 선생님들이 생각난다. 좀 더 친절하게 대해 줄 것을 하는 뼈아픈 후회와 함께 말이다.
그 때 전담 Co-teacher는 따로 있었지만 내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난 그 원어민 교사의 여러 학교 생활을 도와야 했다. 그래 봤자 학교 학사일정 정도 알려주고 점심시간에 같이 급식 먹는 게 가장 큰 업무라면 업무였는데, 일본어 선생인 나에게 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쉽지 만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마크 한국어 배워보지 않을래(두유 원투 런 코리언)?”이라고 용기 있게 물어보았다. 선뜻 “sure”라고 대답해 준 마크 선생님에게 난 점심시간마다 하나씩 하나씩 한국어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미역국이 메뉴로 나왔길래 “마크, 이 국 이름 알아? 이거 미역국이야, 한국사람들 생일날 이 국 먹어”라며 세상 친절하고 가식적인 미소를 띠며 가르쳐 주었다.
“이 국 이름은 미역국”. 또박또박 발음해 주고 있는데
그런데 잠시 마크 선생님은 갸우뚱하시더니
“나 다른 국도 알아(아이 노-언어더 국)” 그러더니,
“미국”
파란 눈을 반짝거리시며 대답하셨다. “암 프롬 미쿡” 찡긋하는 환한 미소와 함께
“아….!”
“음….! 그것도 국이지…” ,” 야 ~~ 유 쏘 스마트”
그때는 나도 한국어교육을 공부하기 전이라 짧디 짧은 영어로 대충 말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마크 선생님은 언어 선생이어서 본능적으로 같은 단어로 끝나는 말들을 찾아냈던 것 같다. 아무튼 이 마크 선생님은 같은 학교 영어 선생님과 오랜 연애 후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셨다. ‘콩그래츄~레이숑’
말레이시아 학교의 원어민 교사로 살아가면서 가장 고맙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은 선생님들이 늘
“준~~ 밥 먹으러 가자”, ”Jom Makan, June(좀 마칸 준)”,
"밥, 먹었어”, ”Sudah Makan(쑤다 마칸)?”
이라며 식사시간마다 세상 스위트 한 인사를 건네며 나를 챙겨준다는 점이다. 옛날 지극히 형식적으로 낯선 나라에 찾아온 원어민 선생님들을 대하던 나의 부끄러운 모습에 고개가 푹 숙여지게 말이다.
말레이시아 학교는 더운 날씨 덕에 아침 7시 30분에 1교시가 시작해 오후 3시쯤 학교가 끝난다. 수업 중간중간에 휴식시간이 없어 1,2교시가 끝나고 30분 정도 ‘rehat’이라는 휴식시간과 점심시간이 있다. 아침 일찍 학교가 시작하는 탓에 교사도 학생도 적어도 7시까지는 학교에 가야 한다. 내 비루한 육신으로는 아침을 챙겨 먹고 등교하기라는 건 쉬운 일 이 아니다. 그래서 학교에 도착하면 나를 비롯한 많은 선생님들이 1교시가 없으면 우선 Canteen이라고 불리는 교내 cafeteria로 향한다. 학교 Canteen에는 나시 르막과 락사, 바나나 튀김, 야채 춘권 튀김, 크록뽀 라는 어묵 튀김 등 말레이 식 식사가 이른 아침부터 항상 준비되어있다. (누군가가 저도 한국어 외국에서 가르치고 싶은데 무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혹시 던진다면 단연코 이 아침식사 시간에 꼭 참여하라고, 이 시간이 파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 침 튀기며 답해주고 싶다.) 물론 기름지고 짜고 매운 음식을 아침부터 먹기라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따뜻한 테 따릭(teh tarik_말레이식 밀크티)한 잔에 츄초(Cucur)라는 야채튀김을 몇 개 접시에 담아 선생님들과 함께 아침을 나누며 못 알아듣는 말레이어를 듣고 있으면 그 옛날 마크 선생님도 생각나고 늘 학교에서 밥을 굶었던 중국어 원어민 선생님도 생각이 난다. 아 또 미안해진다.
문화적으로 여성성이 강한 말레이 사람들은 만나서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하는걸 정말 좋아하기에 이 시간은 아마 모든 교사들에게도 제일 중요한 시간이라 생각된다. 주요 얘깃거리는 어제 본 tvn 드라마 내용이나 어느 나라에서든 교사들의 뒷담화의 주인공인 교장님 이야기지만 때론 동네 맛집 이야기라 던가, 생활 말레이어를 배울 수 있는 그야말로 그 나라의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역시 사람은 역지사지야. 때론 스콜을 막아주는 우산같고 때론 달콤한 두리안처럼 폭신폭신한 마음을 가진 나의 말레이시아 동료들에게 감사하게 된다. 코비드로 학교를 못 가게 되니 이 시간을 함께 못하게 된 게 가장 아쉽다. 아마도 학교가 열었으면 지금쯤 '부부의 세계' 이야기에 캔틴이 떠들썩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