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괜찮아?

전염병이 창권하는 긴 터널을 지나며

by Mori

Post covid, New Normal의 시대는 무얼 말하고 싶은 걸까?

2020년 새해 인사를 나누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과 함께 2020년은 연도가 뭔가 딱 떨어진다면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것 같다고 호기롭게 말했었다.


‘이런 젠장’


Covid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 어마어마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모르고서 말이다. 지난 삼개월 동안 난 마치 공전궤도를 잃은 행성처럼 떠돌이 별이 된 것만 같았다.

MCO(Movement control order:이동통제 명령) 기간 동안 한국도 아닌,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내가 한 일이라고는 친구들과 발리로 여름에 놀러 가려고 야심 차게 세웠던 나의 발리행 티켓을 환불도 아닌 바우처로 돌려받은 것과 커피라도 안 마시면 죽을 것 같아 매일 아침 핸드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며 나에게 위안을 주었고, 그리고 3월부터 4월까지는 도로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를 지날 때는 여권을 보여주며 죄도 안 지었는데 주늑들어야 했다.

이제 다시 개학을 하고 아주 조금씩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쉽게 손을 잡을 수 없고, 깔깔 웃음소리를 내며 시시콜콜한 수다와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도 없고 무엇보다 진공관에 갇혀 있는 드라이플라워처럼 보이지 않는 유리 벽이 서로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쳐져 있는 게 느껴져 마음이 불편하다.


지난 3년간 나는 파견지에서의 생활은 덤비는 시간을 어떻게 지혜롭게 보내는가에 달려있는 것 같아, 부단히도 바지런 떨며 살았더랬다. 말레이시아 전통음식 만들기도 수강해 보고, 친구인 이란 사람 KOMEIL이 하는 ART CLASS에도 가보고, 요가에 가서 일본 친구들도 만나며, 나름 부지런히 살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지난 3개월은 마치 영화 Cast away에 나온 ‘Tom Hanks’가 된 것 같았다.

하루 24시간 온전하게 나에게만 주어진 시간들을 부끄럽지 않게 사용해야 했다. 어떤 날은 천장의 나무 격자무늬 패턴을 하루 종일 보며 무료함을 달래야 했던 어린 날의 내가 되어 소파와 물아일체가 되어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뜬금없이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를 잔뜩 넣어 빵 반죽이 부푸는 걸 보며 신나 하다가 쓴맛 나는 빵을 굽기도 했다. 넷플릭스라는 절친을 만났고 세끼를 스스로 해결하며 혼자만의 삼시세끼 사진을 엄마에게 전송했다.


그 와중에 이 기간 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꼭 했던 일이 있다. 28층에 사는 나는 누구보다 쿠알라룸프르의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MCO가 시작된 어느 날 아침, 꼭 해 뜨는 하늘을 찍고 싶어서 ‘아잔’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참고로 쿠알라룸프르의 아침 하늘은 저녁놀만큼이나 아름답다. 마치 하루 할 일을 다 준비해 놓은 듯 자신 있게 부유하는 그 아침의 빛을 보고 나면 힘을 좀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집은 남향이라 해 뜨는 건 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매일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의 하늘의 사진을 기록해 두었다.

어떤 날은 흐리고 어떤 날은 구름이 무슨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핑크색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평화가 너와 함께 있어 라고 말하는 듯 고요했다. 매일 비슷한 시간 비슷한 풍경같이 보였지만 나중에 한 폴더에 모아보니 하나도 같은 사진이 없었다.

모든 게 멈춰져 있는 것 같던 그 시간 속에서도 옆집 친구 'Madeline'은 예쁜 딸 'LauraJoy'를 낳았고 내 앞자리에 앉는 친구 'Eliza'는 결혼을 위해 고향 Terengganu로 떠났다.


그 엄청난 외로움의 시간들은 나에게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진정성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고

진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들을 주었다.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똑같은 것 같은 타원형의 원을 계속 그리고 있었지만 그 원은 눈에 보이지 않게 점점 커져가고 있었고 회복의 근육이 붙고 있었다. 그 같음에서 아주 작은 다름을 발견하는 것이 이제 행복인걸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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