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에 죽고 사는 말레이시아 사람들
지난 6월 초 온라인 수업을 끝내고 핸드폰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교감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음 주 월요일에 Mr. Wong 선생님 퇴임식이 있는데 학교에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코비드로 학교가 삼 개월 째 문을 닫고 있는데 off line퇴임식을 한다고? 잠깐 의아했지만 어쨌든 월요일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그런데 퇴임식에 초대된 선생님은 나를 포함 열명도 안 되는 게 아닌가?
Facebook live로 퇴임식은 생중계되었고 “아니 왜, 나를 초대하셨지? 나, Mr. Wong선생님과 별로 안 친한데, 이상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기 위해 띄엄띄엄 앉은 회의실에 마스크를 쓰고 온통 말레이어로 진행되는 퇴임식을 참관했다.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메시지를 만들어 감사인사를 전했고, 평교사로 퇴임하는 Mr. Wong 선생님이 언제 교직을 시작했고 어느 학교에서 몇 년부터 몇 년까지 근무했고 누구와 결혼했고 등등 학생들이 손수 만든 마치 ‘인생 다큐’ 같은 영상을 상영했다. 무슨 말인지 대충 짐작하며 보고 있자니 한 평교사의 진정성 있고 소박한 교육 여정에 눈물을 찔끔 난다. 그리고 또 한 번 이 나라 사람들의 '사람을 귀히 여기는 마음'에 감동을 받는다. 나중에 교감선생님께 왜 나를 초대했냐고 여쭤보니 내가 외국인 교사라 특별히 초대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맛있는 음식이 많으니 꼭 식사하고 가라 신다. 아 또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교직을 하며 해마다 평교사들의 퇴임식을 경험했다. 첫해는 생물 선생님이셨던 Ms.Mahadia 선생님. 그다음 해는 주책바가지 캐릭터 Hadip선생님(전 세계 어딜 가나 비슷한 캐릭터들은 다 있구나 깨닫게 해 주신 분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명퇴 등으로 평교사 퇴임식을 보기가 거의 불가능했는데 처음 보는 이들의 퇴임식에 숙연한 마음이 들 정도로 늘 감동했었다.
말레이시아는 교사의 퇴임식이 있는 날은 하루 온종일을 학생들의 수업을 다 빼고 퇴임식을 한다. 졸업생들도 찾아오고, 제자들의 축하공연과 한 교사의 교직 생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상영하고 동료 교사뿐 아니라 제자들도 함께 사진을 찍고, 답사와 송사의 시간을 갖는다. 진심으로 한 사람이 묵묵히 걸어온 교직인생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표하는 충분히 축하받고 기념하는 이 시간은 거의 결혼식처럼 성대했다. 한국 인문계 고에서 수업을 안 하고 평교사 퇴임식을 한다고 하면 일단 학부모 항의 전화가 빗발칠 텐데 하며 부럽고도 고마운 이들의 문화에 참 마음이 따뜻해졌었다. 학생들에게 누군가의 삶을 존중해주고 감사와 존엄함을 가르치는 일은 이런 경험이 더없이 소중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관혼상제는 종교와 밀접한 관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너무나도 끈끈한 가족공동체의 연대를 느낄 수 있다.
결혼식은 이곳 사람들이 말레이계, 중국계, 인디언계로 나누어져 살아가고 있기에 각각의 결혼식은 예복부터 음식까지 정말 다채롭다. 같은 점이 있다면 결혼식 역시 한두 시간 예식장에서 후다닥 진행되는 한국의 예식 문화와는 달리 이틀이나 길게는 오일 정도에 걸쳐 진행된다. 친한 동료 교사인 중국계 Moi 선생님의 초대로 가게 된 Moi 선생님 사촌동생의 결혼식은 주석광산으로 유명한 Taipin(太平)에서 있었다.(Taipin은 Kuala Lumpur의 북쪽에 위치한 Perak주에 위치한 중소도시로 Ipoh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옛날 주석광산이 개발되면서 영국 등 많은 나라들이 침략의 교두보로 삼고자 학교를 세우고 개발을 주도한 탓에 Taipin의 많은 건물이 1890년대 전후에 세워졌다. 성당과 학교 등 식민지 시대 영국식 건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이국적인 느낌과 중국인 기반의 도시개발로 독특한 문화가 느껴진다. 100년 동안 어찌나 깨끗하게 관리를 했는지 여전히 참기름 바른 호두처럼 윤이 나는 Taipin의 Old town을 걷고 있으면 김옥균이 갑오개혁을 부르짖고 있을 때 이 자원 많고 착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는 영국인들에 의해 도시가 만들어지고 식민지의 전초지가 건설되고 있었겠구나 생각하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결혼식은 하루 종일 진행되었고 신부댁에 먼저 들려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고 신랑 집에 2시쯤 신혼부부가 도착했다. 가족들이 신랑 신부와 Tea time이라는 행사를 갖는다 해서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서로 차를 나누며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축복해 주는 시간이었다. 신혼부부는 처음 도착하자마자 조상의 위패를 모신 집안에 있는 불단에 먼저 차를 올린 후 부모님, 형제 친척 순으로 인사를 했는데 차를 받을 때 우리의 축의금 같은 돈을 봉투에 넣어 선물을 했다. 차와 함께 신랑 댁에서 준비한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또 다른 파티가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친구, 친척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결혼 피로연 파티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한국의 결혼식 문화와 굉장히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주민들이 만든 다문화 국가라서 더 강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말레이시아는 오래된 전통에 대해 소중히 여긴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100년이 넘은 건물들이 전광석화처럼 번쩍이는 말레이시아의 마천루에 버젓이 이름을 달고 건재한 것도 그렇고 결혼식을 경험하며 조상들이 해온 그대로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벌써 이 년쯤 전인데도 끝없이 펼쳐진 팜 올리브 나무가 양 옆으로 쭉 뻗은 고속도로를 세 시간쯤 달려 타이핑에 가던 날이 생각난다.
말레이 계 결혼식은 아랍 쪽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인지 진짜 결혼식은 직계가족만 모여서 진행한다. 이후 친구들을 피로연 파티에 초대하는데 하루 종일 피로연을 하는 경우가 많고 날씨 탓에 저녁시간 파티가 많다. 답례품으로 ‘Bunga Telur’라는 종이꽃에 달걀을 매달아 주기도 하고, 쿠키나 국수를 튀긴 과자를 선물로 준다. 처음 말레이시아에 왔을 때 나에게 말레이어 과외를 해줬던 Norsham교감님의 딸 Iyana는 지난해 집에서 결혼 피로연을 열었었다. 천막을 치고 집 앞마당에서 열렸던 야나의 결혼식은 우리네 동네잔치와 비슷했다.
몇 번의 기회를 통해 알게 된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혼례, 장례 등 의식 문화의 가운데에게는 서로를 귀하게 여기는 정이 관통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잘 울고 잘 웃고 넉넉하지 않지만 아낌없이 축하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에 내심 부럽기도 하다. 물론 이곳도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기에 화려한 예복을 입고 호텔에서 예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사람들과 음식과 마음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의 삶에 지지대가 되어 주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듯 따뜻하다. 허례허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정에 죽고 정에 사는 이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뭣이 중헌 지’를 아는 것 같아 참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