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타피르를 부탁해!

상한 갈대를 꺽지 않는 마음

by Mori

어린 시절 배웠던 단어들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우리 집의 서랍장에 아로새겨져 있던 ‘보루네오’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자리 잡은 섬 이름이라는 걸 겨우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또 라왕(Rawang)이라는 나무를 자연 시간(슬기로운 생활 아님)에 배웠던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가볍고 숨구멍이 가지런하며 붉은빛이 돌던 이 나무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라왕’ 역시 쿠알라룸프루 북쪽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이 지역에 가구를 만들기에 가볍고 튼튼한 고무나무 수종이 많아 이런 이름들이 붙여졌으리라 생각된다. 흔히 알고 있는 오랑우탄(Oran-hutan)은 오랑(사람)과 우탄(숲)이 합쳐진 말로 ‘숲의 사람’이라는 뜻의 말레이어다. 이 단어의 어원은 왠지 이들이 숲의 주인임을 인정하는 느낌이다.

처음에 말레이시아에 왔을 때 책상은 하나 있어야 될 것 같아 온라인 몰에 책상을 하나 주문했다. ‘Natural rubber wood’라는 문구가 마음에 들어 RM300을 주고 우리 돈 십만 원이 채 안되게 주문한 원목나무 책상은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멋진 책상을 이 가격에 살 수는 없을 거야’라는 만족감을 주며 사 년째 나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수 많은 자연이 주는 선물들과 함께 교감하며 살아간다. 동네 공원만 가도 뿌리가 축축늘어져 장관을 이룬 맹그로브 숲이 우거지고 뱅갈고무나무와 코코넛 나무 가로수를 지나면 동네 공터네 바나나 나무와 파파야 나무가 잡초처럼 우거진 이곳, 온갖 풀과 나무 동물들이 저마다의 색을입고 반짝거리며 합창하는것 같은 이곳에서 자연이 더 가깝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매일 쏟아지는 스콜과 강렬한 태양이 더할 나위 없는 열대우림을 만들고 우리도 익히 아는 구아바와 깔라만시, 재스민과 레몬그라스가 지천으로 자라는 나라, 식물뿐 아니라 그 안에서 오랑우탄과 원숭이, 도마뱀과 고양이 등 야생의 동물과 반려동물들이 세상 느긋하게 자고 먹고 놀고를 반복하고 있는 이곳, 말레이시아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는 동물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타피르(Tapir)’이다.



‘맥’, 혹은 ‘테이퍼’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이 귀염상 동물은 긴 코 덕에 어딘가 모르게 개미핥기 같기도 하고 튼튼한 멧돼지 같기도 하며 작은 아기 코끼리 같기도 하다. 쿠알라룸프르 시내 센트럴 파크 주변에 WWF(World Wildlife Fund: 세계 자연 기금) 사무소 외벽의 ‘Save the Tapir’ 간판을 통해 나는 이 동물을 처음 만났다. 현존하는 타피르 중 가장 몸집이 크고 판다곰처럼 흰색과 검은색 털로 나누어져 있는 말레이 타피르를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자신들과 닮았다고 한다. 두 지역으로 나누어진 지형이 닮은 걸까? 생각했는데 느리지만 천천히 품위 있게 주위를 살피는 온순한 성품을 닮은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타피르의 외모는 어딘가 모르게 원시의 생물인듯한 느낌이 있고 공룡 옆집에 살았을 법한 외모가 주는 고생대적인 느낌이 참 매력적이다. 이 타피르는 전 세계에 2,500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팜유를 얻으려는 인간의 잘못된 욕망과 추악함은 평화로운 이 동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했고 오랑우탄과 침팬지, 타피르 등 열대나라의 동물들이 더 이상 평화롭게 놀고 먹고 자고를 못하게 만들었다. 코비드 바이러스가 이차 숙주였던 ‘천산갑’을 통해 전파되었다는 뉴스는 어쩌면 인간들에게 인과응보를 가르치는 경종일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4월 28일’을 세계 타피르의 날로 정해 멸종위기 보호동물인 타피르를 보호하자는 여러 캠페인을 진행했다. 다양한 브랜드와 콜라보한 광고에 등장한 타피르는 귀여운 친구 같다. 인간이 정말 만물의 영장이라면 인간답게 주어진 자연을 지키고 보존하며 돌봐야 하는 것 역시 인간의 책임인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살며느꼈던 반성중 하나는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동물과 식물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였다. 이 엄청난 자연앞에서 인간도 함께 공생하는 존재이지 결코 이 동식물의 소유주는 아님은 분명하다. 부디 이 동물들 입장에서 인간이 가까이 하고싶지 않은 아주 이기적이고 못된 친구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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