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 부부를 만난 말레이시아 소녀들-
좋아하는 말 중에 ‘뫼비우스의 띠’가 있다.
경계가 하나밖에 없는 2차원 곡면의 끝과 끝이 연결되어 있는 이 도형을 배울 때 선생님께서는 연필을 가지고 종이테이프 가운데에 선을 그려보라고 하셨다. 그 선과 선이 한 점에서 만나던 순간, 수학 시간이었는지, 과학시간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두 점이 만날 때 무언지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은 신기했던 기억이다. 수학적 의미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저 ‘뫼비우스’라는 말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여러 번 입에서 되뇌어 보면서 외웠더랬다.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발견의 순간이었다.
나중에 성인이 되고 인생의 여러 경험들이 쌓이면서 인생은 어쩌면 이 ‘뫼비우스의 띠’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왜 이걸 해야 하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건 또 모야’, 등등 마치 감나무 밑에 있다가 예기치 못한 홍시가 머리 위에 ‘후드득’ 떨어지는 것처럼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지’를 따지기 전에 해치워야 하는 일들은 늘 나를 찾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농담 삼아 ‘무수리 팔자’라고 웃어넘기며 대부분 수용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경험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또 다른 인연과의 만남을 야기시키는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올해 초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기 말레이시아 한국대사관 주무관 ‘김**’입니다.” “이준*선생님 되시죠?”
“아 네, 제가 이준*인데요?”, “왜 그러시죠?”
“네 저희가 이준*선생님 학교에 한국어 합창단이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요”
“계신 곳이 혹시 한국 국제학교인가요?”
“아니요, 저는 말레이시아 공립학교에 한국어 교사로 파견되어 있고, 합창단이 아니고 그냥 한국어를 공부하는 말레이시아 학생들이에요.”
“아 그렇군요. 혹시 공연하셨던 영상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아…… 그런데 왜 그러시죠?”
그때 까지만 해도 무슨 일들이 나를 기다라고 있을지 전혀 짐작을 못했다.
나중에서야 안 일이지만 작년 세종학당에서 열린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학생들과 했던 찬조공연을 보고 우리 학교에 한국어 합창단이 있다고 누군가 추천해 주셨다고 했다. 대학생들이 대부분 참여하는 대회였기에 학생들에게 말하기 대회도 보여줄 겸 참여했었는데 그 작은 인연이 연결되어 한국 대통령의 교민 만찬 자리에 말레이시아 학생들을 데리고 합창공연을 하게 되었다.
“얘들아, 한국 대통령 내외분이 국빈으로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신데”
“그런데 우리 학교가 공연 팀으로 선정되었어!”
“정말이요? 진짜요? 선생님, 그럼 우리 한국 대통령 만날 수 있어요?”,
“그럼, 우리 무슨 노래 불러요?”
“우리 작년에 연습했던, ‘아름다운 세상’ 부르는 게 어떨까?”
“아니에요, 선생님! 우리 춤도 추고, 더 멋진 노래 연습해요.”
“방탄소년단 ‘봄날’ 불러요!”
난리가 났다.
“그… 그래 일단은 우리 공연한 영상 보고 한국대사관에서 정해 주신다고 했으니 기다려 보자.”
“네, 선생님, 우리 완전 신나요.”, “언제예요?”, “누구누구 가요”
그런데 며칠 뒤 더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이번엔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청와대 비서관 황장*입니다”, “이준*선생님 되시죠?”
이번엔 영부인의 방문지를 찾고 있는데 후보 중 하나인 우리 학교를 내일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아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한국에선 십 년 가까이 교직생활을 해도 한 번도 만난 적인 없는 국빈을 타지에서 만나게 된 기회는 이렇게 소리 없이 찾아왔다.
다음날 아침 주 말레이시아 한국대사관의 참사관들과 청와대 비서관들, 말레이 교육부 관계자들이 학교를 찾아왔다. 학교장 미팅 후 교실로 이동해서 한국어 수업을 참관하셨다. 학생들은 관계자들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늘 수업 시작 때 부르는 노래를 열창했다.
“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해 주세요. 그럼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지요.”
이 날 수업의 주요 문형은 ‘ㄹ/을 수 있어요.’와 ‘ ~고 싶어요.’였다. 한국에 가면 ‘ ~을/를 먹을 수 있어요.’, ‘ ~을/를 만나고 싶어요.’, ‘ ~을/를 먹고 싶어요.’, ‘ ~에 가고 싶어요.’를 활용해 모둠 별로 여행계획서를 만들고 발표하는 수업이었는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한국을 학생들은 관광공사 brochure에서 참 잘도 찾아내 발표했다.
‘해물파전을 먹고 싶어요.’, ‘부산 해운대에 가고 싶어요.’ 등 나도 미처 생각지 못한 문장을 넣어 여행계획서를 만들고 발표를 준비했다.
관계자들은 수업 참관 후 학교 곳곳을 둘러보시다가 태권도 복을 입은 학생들이 교정에 다니는 것을 보더니 왜 학생들이 태권도 복을 입고 있는지, 태권도부 활동을 참관할 수 있는지 질문하셨다. 다행히 클럽활동이 있는 날이라 서둘러 태권도부 아이들을 불러 평소 훈련했던 품새를 시연했다. 이렇게 영부인께서는 우리 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청와대 보안 팀, 보도 팀, 비서 팀은 물론이거니와 말레이시아 교육부, 총리실, 말레이시아 한국대사관까지 주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를 찾아오셔서 동선과 안전성을 확인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성공적인 국빈방문을 위해서 노력하는지 알게 되었고 혹시라도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되려면 나 역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주어진 역할에 임해야 하는구나! 마음을 다 잡아먹었다.
드디어 대망의 한국어 노래공연 날
“혼자서 이룰 수 없죠. 세상 무엇도, 우리 함께 만들어가요, 아름다운 세상”
한국 사람들이 꽉 찬 홀에서 목소리를 모아 합창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이 공연이 학생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일 수 있겠구나, 나 혼자서가 아닌 너희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게 되어 선생님은 참 기쁘다’, 여러 가지 소회가 머리를 스치는 중에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기념촬영을 할 때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주최 측에서 기념촬영 후 빨리 퇴장해야 다음 팀 촬영을 하니 빨리 빠져 달라 부탁했고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념촬영 후에 학생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대통령 내외분에게 다가가 ‘살람(Salam)’인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당신의 평안을 빌고 상대에게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이 ‘살람’ 인사는 손등에 키스하거나 상대의 손을 이마에 가져다 댄다. 수업이 끝나거나 행사가 끝나면 늘 하던 거라 당연히 대통령 부부 앞에서 한 명씩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아……. 이걸 어쩌나, 말려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다행히 대통령 내외분은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인사를 다 받아 주고 계셨다. 덕분에 나도 아주 잠깐이지만 악수하고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맞아,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급할 건 없지.’
학생들은 이 날의 기억이 정말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청와대에서 보내준 사진을 한 명씩 나눠주자 평생 간직할 보물이라며 좋아했다.
공연 다음날은 영부인의 학교 방문 날이었다.
학교에서는 세 번에 걸친 사전 리허설이 있었다. 이 방문을 위해 몇 번이나 전체 교사회의가 소집되었고 동선과 세부일정은 물론이거니와 음료는 무엇을 준비할지, 이날 전 교사는 무슨 색 옷을 입어야 하는지 등등 아주 소소한 것까지 꼼꼼히 챙기는 학교가 참 고마웠다. 꽃다발 증정을 맡은 2학년 ‘아띠라’는 친구들이 모두 집에 돌아가는 주말인데도(우리 학교는 기숙학교라서 3달에 한번 정도 집에 가는 휴일이 있다) 집에 못 가고 한복을 입고 리허설에 참여했다. 말레이시아 전통 대나무 악기인(Angklung)연주팀이 영부인의 동선을 따라 연주할 계획이었는데 학교 복도를 따라 백 미터 정도 걷는 거리를 두고 학교 선생님들은 너무 많이 걷는 게 아니냐며 걱정하셨다. ‘한국 사람들은 이 정도 거리는 늘 걸어 다녀요, 걱정하지 마세요.’, ‘청와대에서는 물 한 병만 준비해 달라고 하셨는데......’ 아무리 말씀드려도 말레이시아 문화는 그렇지 않다며 정성을 다하신다. 학생들에게 대통령 내외분이 그려진 엽서를 만들어 주고 미리 영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쓰는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한국어 반이자 태권도 팀이기도 하고, 앙클룽 팀이기도 한 학생들은 수업 준비하랴, 태권도 연습하랴, 노래 연습하랴 정말 바쁜 이 주일을 보냈다.
드디어 영부인의 의전 차량이 도착하고, 영부인은 ‘라이사’의 일일 짝꿍이 되어 한국어 교실의 학생 책상에 앉으셔서 수업에 참여하셨다. 이 날은 한국의 음식과, 식사예절, 가볼 만한 곳, 말레이시아의 음식, 말레이시아의 가볼 만한 곳을 다섯 개의 모둠별로 나누어 한국어로 발표하는 수업을 준비했다. 학생들은 미리 발표수업을 위해 2주 전부터 직접 발표 보드를 만들고 말하기 연습을 했다. 단지, 한국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말레이시아의 유명한 곳, 음식에 대한 발표도 함께 준비해서 상호 문화적 존중을 표현하기로 했다. 주요 주제를 학생들에게 공유하고 조별로 발표하고 싶은 주제를 선정했다. 이런 발표수업을 할 때마다 가장 놀라운 건 학생들의 가능성은 무궁하다는 점이다. ‘이거 너무 어려운 단어인데, 이건 고급 표현인데’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때론 교사의 잣대로 이들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게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학생들은 훌륭히 과업을 완성해 낸다. 이날 역시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사진을 찍고 이십 명 넘는 사람들이 교실을 가득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은 이 어려운걸 또 해내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도 파견된 한국어 교사에게 찾아온 대통령 내외분을 가깝게 만날 수 있었던 기회는 마법과 같은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찾아왔나를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앞서 말했던 ‘뫼비우스의 띠’처럼 성실한 일상이 가져온 선물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파견지에서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한국어 수업은 물론이거니와 부채춤 모르지만 인터넷 영상을 보고 부채춤을 배워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기도 하고 떡볶이나 김밥, 호떡 만들기 같은 요리강사가 되기도 한다. 한국어를 가르치기에도 바쁜데 여기저기 학교 행사에도 참여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되는 일도 많다. 어쩌면 한국에서 지낼 때 보다 때론 더 조심스럽게, 조금은 더 용감하게 살게 되는 건 ‘내가 곧 대한민국’이라는 사명감 때문이 아닐까? 현지인들의 눈과 기억 속에는 나를 통해 투영된 대한민국이 나의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책임지기에 때론 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성실히 하게 된다. 잘하고 못 하고는 나중의 문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진심을 갖고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그럼 언젠가는 이 소소한 경험들이 선물하는 “아하, 내가 이걸 하려고 그때 그걸 경험 했었구나”라고 스스로를 기특해하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치고 빠지는’, 이런 말보다는 ‘우직하게’, ‘무식하고 용감한’, ‘이것 밖에 모르는’ 이런 말에 더 마음이 동한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은 ‘이 정도면 뭐... 나쁘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 잘하지 못해도 진심을 담아 때론 우직하게 열심히 하는 진실 된 마음을 보이는 것이다. 바로 그때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 움직이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통하는 마법이 일어난다. 그래서 오늘도 나에게 찾아오는 소소한 일거리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