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 말인지 알지?

나의 모국어

by Mori

2017년 1월 6일 말레이시아 KLIA 공항 도착.


비행기로 도착 얼떨떨해하는 나를 정신들 KLIA공항을 채우고 있던 덥고 습한 열대의 먼지 냄새였다. 입국 게이트를 나서자마자 엄습해 오는 도시의 공기는 마치 내가 여기서 살아가야 함을 목청껏 외치고 있는 같았다. 서둘러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벗어 들고 익명의 군중 속에 24인치 캐리어와 함께 서있는 나에게 그렇게 말레이시아는 “Salam(평화를 빌어)”하고 살갑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 뒤로 한 달가량은 ‘나는 누군가, 여긴 어딘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드는 모기와 싸워야 했다. ‘아니 도대체! 왜! 이 모기들은 왜 나만 무는 거야?’라고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니 피가 달아서’라는 무심한 대답만 돌아왔다. 나중에 한 똑똑한 친구가 말해준 ‘열대 나라 사람들은 높은 기온에 적응이 되어 피의 농도가 묽어져 모기가 싫어해’라는 말을 듣고 그제야 그때 겨울나라에서 갓 도착한 내가 왜 그리 모기들에게 인기가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모기 퇴치제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덧발랐는데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삼 년째 되는 해부터는 모기 걱정이 사라졌다. 내 피도 이제 묽어진 건가?


년이란 시간 동안 이사를 했고, 작년부터 우리나라와 반대인 운전석에서 운전을 시작했고, 열심히 학교를 오가며 수업을 했다. 그리고 가난해진 마음을 위로받으려는 목적을 한아름 안고 매주 여러 나라의 외국인들이 모이는 교회에 나갔다. 고향의 음식이 그리워지면 마트에서 고추장과 신라면, 그리고 새우깡을 사다 먹었다. 유재석 씨가 나오는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한국인지 쿠알라룸프르인지 까먹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인촌이 있는 '몽키아라' '암팡지역' 괜스레 가기가 싫었다. 그럼에도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동네 스타벅스에서도 누군가의 한국어는 주변 소음을 음소거한 것처럼 정확히 귀에 들어왔다. 그때마다 애써 무심히 지나쳤던 같다.


“어머, 한국 사람 이세요?”

라고 말하며 눈인사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그냥 한인타운에 가서 식재료를 사고 한국음식을 사 먹으면 그리고 여기와서도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면 현지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할 거라는 막연한 ‘지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든 나를 스스로 보호하는 방어기제를 가지고 마치 망망대해의 보트 하나에 달랑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과 함께 버텨야 함을 알기에 미리 마음을 단단히 먹은 탓도 있었다.

쏟아지는 'la' 끝나는 영어(말레이식 영어는 la 말끝에 붙여 사용한다) 말레이어와 중국어와 타밀어 속에서 혹은 서로의 평안을 묻는살람인사 속에서 나의 모국어는 그리고 나는, 긴장하고 주눅 들었던 같다. 현지 동료들과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아무리 잘해줘도 이상하게 그들과의 친구관계는 한계가 느껴졌다. 그러다가 한국 친구들이 놀러 오기라도 하면 나의 군데군데 상하고 튿어진 마음들은 친구들의 살가운 한국말 위로에 분주히 박음질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새 어디선가 들려오는 누군가의 한국말에 귀가 쫑긋해질 때는 당신도 나와 같은 한국사람이군요”, "당신도 나만큼 외롭게 버티고 있군요하는 공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몬 말인지 알지?”

친구 중에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다 스무 살이 넘어 한국에 재 입국한 친구가 있었다. 본인은 모르지만 이 친구의 한국어에는 유아적 요소와 할머니에게서 배운 옛날 말과 특유의 충청도 사투리 억양이 무수히 발견되었지만 1.5세 교포치곤 꽤 한국어를 잘했었다. 또 자신의 한국어에 꽤나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와의 대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몬 말인지 알지?”였다. 무슨 말을 하다가도 무엇의 ‘뭐’도 아닌 ‘몬’이라고 발음하며 “언니, 몬 말인지 알지?”하고 내게 수시로 동의를 구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때 그 친구에게 “너 왜 자꾸 그렇게 물어봐”라고 물을 까 하다가 행여 맘 상해할까 봐 그만뒀었던 기억이 있다. 참고로 이 친구는 한국에 정착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여전치 말끝마다 “뭔 말인지 알지?”를 달고 산다.


지금 생각해 보니 친구의 심리상태 속에는 나 미쿡서 자랐지만 ‘이렇게 한국어를 하고있어’라는 자부심과 말의 맥락을 상대가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같다. 아니면 영어의 “Am I right”,혹은 “You know?”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건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상대와 한국어로 대화를 하며 모국어를 내가 제대로 쓰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 그리고내가 나의 모국어를 이렇게 쓰고 있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 은연중에 말인지 알지" 통해 투영된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GOD 박준형 씨가 똑같은 표현을 쓰고 있는 걸 발견했다.

“몬 말인지 알지”

아 이게 교포 한국어의 특징인가? ㅎㅎ


나의 모국어 한국어, 엄마 말, Mother tongue.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듣고 배웠던, 나를 만든 세포들과 함께 성장했고, 또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나의 말. 디아스포라들에게 한국어는 한국만큼이나 나와 내 나라를 연결하는 연결고리이다. 내가 어디서 시작되었고,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이 있고, 그곳이 있다는 건 참 자다가 생각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부유하며 떠다니고 있지만 '나도 엄마 아빠가 있어' 라고 외치는 초등생같은 마음이랄까? 그래서 나의 모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더 귀하고 예쁜 건지도 모르겠다.

말레이 학생들이 뽑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한국어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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