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항아리는 아마 그 이유를 알겠지?
“한국어로 Good Morning이 뭐야.”
“안녕하세요.”
“그럼, Good afternoon은?”
“그것도 안녕하세요.” “Good evening도 ‘안녕하세요’야”
“한국어 인사말은 ‘안녕’ 하나면 okay야”
“안녕, 친구야”
학교에서 만나도 헤어져도 줄기차게 “안녕”하고 인사를 했던 탓인지 이제 동료 교사들도 나에겐 “안녕, 친구야”하며 인사를 건넨다. 물론 나의 학생들은 “안녕히 계세요”와 “안녕히 가세요”를 여전히 중구난방으로 쓰고 있지만 동료들의 “안녕, 친구야”라는 인사는 괜스레 날 평안하게 만드는 말 중 하나이다.
한국사람들은 왜 시간별로 인사말을 안 만들었을까?
웬만한 외국어들이 다 가지고 있는 아침, 점심, 저녁 인사말이 한국어에서는 “안녕하세요”
하나만 있으니 ‘있었다가 없어졌나?’ 하는 의구심도 든다.
아무튼 상대의 ‘아무 탈 없이 평안함’을 소망하는 인사가 대표 인사라니 한국어, 참 품위 있는 언어란 생각이 든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한다.
‘잠깐만 기다리세요’를 배우는 날이었다.
영어 번역 데로 “잠깐은 ‘give me second’의 몇 분? 말 그대로 일, 이초는 아니고, 일, 이분 정도?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해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는데 학생들은 알아듣는 눈치이지만 정작 나는 ‘'잠깐'이 일 분 정도 짧은 시간이었나?’라는 생각과 함께 나에게 잠깐은 ‘일, 이분’ 보다는 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에서 아주 짧은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라는 표현도 있어요”라고 덧붙여 설명하고 나니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이렇게 한국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감'으로 알아듣는 언어분야를 한국어학에서는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관례어’라는 말로 쓰인다. 쉽게는 안녕하세요?’,‘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어떻게 지내셨어요?’와 같은 표현들이다. 관례어는 어감에서도 몹시 어렵게 느껴지는 ‘화용’ 혹은 ‘사회언어학’의 한 분야이다. 말하자면 한국사람이 “우리, 언제 봐”,”밥 한 번 먹자”라고 말할 때 액면 그대로 정말 밥을 먹자는 뜻이 아니라 그저 인사치레로 하는 '화용적 관례어'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진짜 당장 약속을 잡자는 말이 아님을 외국 학생들은 알 턱이 없다. 왜 이런 표현들을 만들었을까?라고 문화적, 사회적으로 의심하며 그 이유를 찾아보는 분야가 사회언어학이다. 한국어 교사가 아니었을 때 절대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나의 모국어는 볼록렌즈를 들이댄 것처럼 불쑥불쑥 이렇게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거형을 배울 때 일이다. ‘방금 전에 밥을 먹었어요’와 ‘아까 전에 밥을 먹었어요’, ‘한참 전에 밥을 먹었어요’를 설명하기 위해 마치 영어시간 현재 완료 진행을 설명하듯 긴 선을 그려 놓고 빨간색으로 '지금'을 동그라미 치고 방금 전은 여기, 아까는 그거보다는 좀 더 전, 한참 전은 그것보다 더 전 이렇게 화살표를 그어가며 띄엄띄엄 설명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이 단어들은 왜 일 분, 삼십 분처럼 딱 떨어지지 않지?' 시간으로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고 느꼈다. 또 이따가, 나중에도 그냥 'after'로만 설명하기에는 또 애매하다.
그러다 문득 한국인들에게 아까, 방금이나 이따, 나중처럼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은 여유를 두고 '상대'에게도, '나' 에게도 충분한, 다그치기 싫은 그런 감정이 내포되어 애써 시간을 뭉뚱그려서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보았다. 반대로 한국어 속담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해', 라던가 '석 삼 년',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 '업은 아기 삼 년 찾는다' 등 이 정도 돼야 긴 시간으로 쳐주는 느낌의 표현들이 많이 남아있는 걸 보면 말이다.
한국어 학습자들에게 시간 부사들이 주는 모호함은 한국문화의 핵심 특징인 '여지'나 '여유'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의 '얼'에 자주 언급되는 여백의 미와 달 항아리의 어리숙하면서도 부드러운 순진한 아름다움이 언어에도 반영되었음이 분명하다는 소심한 의심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