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정말 미안했어요.

기억하는 마음, 한국어 말하기 대회

by Mori

기억하는 마음, 한국어 말하기 대회=

“선생님, 제 이름은 사만다예요. 저는 필리핀에서 왔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꾸 눈길이 가던 사만다가 또박또박 한국어로 이름을 가르쳐준다.

포카혼타스를 닮은 사만다는 아이돌 가수가 꿈이라 했다.


“저는 폼미앗이에요. 미얀마 사람이에요.”

5박 6일의 긴 여정 동안 우리 팀과 같은 버스를 이용했던 미얀마팀 폼미앗은 이제 겨우 열 한살이다. 볼이 사과처럼 발그레하고 통통한 까만 단발머리 소녀였다. 자기소개 보여드리라는 미얀마 선생님 말에 ”아버지는 한국어 선생님이고 어머니는 주부세요.”라고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인솔하신 미얀마 선생님께 여쭤 보니 폼미앗의 아버지를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아셈회의 부대행사로 열린 아세안 학생들의 말하기 대회 및 한국어 캠프에서 만난 동남아시아 지역 소년 소녀들과의 5박 6일의 길고도 짧은 캠프는, 한국말을 하는 어린 학생들은 보는 것 만으로 계속 내 마음 깊은 곳을 간질이며 묘한 감동을 주었다.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인솔한 배경은 이렇다.

아셈회의 부대행사로 개최된 이번 행사는 아세안 중등&대학생들을 위한 제1회 한국어 캠프 및 말하기 대회였다. 급히 진행된 탓인지 몇 주전 말레이시아 대사관에서 학생 추천 연락이 왔고 우리 학교를 비롯한 한국어가 개설된 학교에서 열세 명의 대표학생을 선발했다. 초기 공문에는 문화체험학습과 부산에서 이박 인천에서 3박이 정해져 있어 학생들을 인솔해서 참여하면 재미있고 유익할 거라 생각했기에 인솔 제안에 흔쾌히 인솔하겠다 했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각 학교의 한국어 선생님들은 주제를 공유하고 말하기 대회 노하우를 서로 알려주면서 무던히 애쓰셨다. 하지만 대회에 임박해서 보내진 공문과 프로그램 세부 안은 적잖이 나를 당황시켰다. 도착한 첫날 말하기 예선과 본선이 모두 치러지고 3박 4일 동안 인천 하나은행 연수원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게 뮤지컬 연습으로 프로그램은 바뀌어져 있었고, 넷째 날 겨우 부산에 가서 귀빈들 앞에서 연습한 뮤지컬을 공연과 말하기 대회 수상자의 앙코르 공연을 하고 템플스테이를 하고 올라오는 경악할 만한 스케줄이었다.

그때부터 줄기차게 주최 측에 이게 누구를 위한 공연 연습이며, 먼 나라에서 몇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 온 학생들을 문화체험 하나 없이 연수원에 묶어 두는 게 너무한 처사이지 않냐며 항의 메일을 보냈더랬다. 보여주기 식 행사를 위해 학생들이 희생되는 것 같아 걱정도 되었고 그러면서 내 마음속엔 이 행사를 하는 주최 측에 미심쩍고 못 미더운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슬림 학생들을 위한 식단을 준비해주면 좋겠다, 기도실을 마련해 달라,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추가해 달라 등등 계속 요구사항을 제시하며 진상을 떨었다.


22일 밤 11시 25분 비행기로 밤새 인천에 도착했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침도 기내식으로 때운 150여 명의 아이들은 10시에 바로 말하기 대회 예선을 치렀다.

또 거기서 선발된 27명의 학생들은 점심 후에 바로 본선대회를 치렀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많은 들은 말은

“선생님 한국은 쉬는 시간이 없어요? “였다.

“응, 한국은 쉬는 시간이 별로 없어, 힘들지?”, "미안해"

“선생님, 한국사람들 불쌍하네요.”

“그렇지? 그래서 선생님은 말레이시아가 더 좋다”


여유를 못 배운 한국 선생님들이 짜 놓은 스케줄에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브루나이, 싱가포르에서 따뜻하고 느슨하게 살던 학생들은 여섯 시에 일어나 일곱 시에 밥 먹고 하루 종일 뮤지컬 연습을 했다. 심지어 부산에 가는 날은 다섯 시 반에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행여 한국의 이런 스파르타식 문화에 질려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학생들의 의견은 나의 생각과 좀 달랐다. 학생들은 뮤지컬 연습도 너무 재밌다했다. 처음 해보는 거고 자신들이 프로듀스 101 주인공인 것 같다며 ‘세종 1446’ ‘그대 길을 따르리’ 노랫말을 외웠더랬다. 이 노래 가사는 중간에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라 문자 와를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훈민정음언해의 마의 구간이 나온다. 한국 학생들도 이건 암기가 어려운데 어찌해낼까 싶었지만 이 어려운걸 이 학생들은 거뜬히 해냈다. 연수원 교정을 거닐며 한국의 칼바람을 느껴보기도 하고 무슬림 학생들에게 템플스테이가 웬 말이냐며 극성스럽게 항의했던 내 모습이 무색하게 템플스테이에선 방바닥이 끓는 방에서는 처음 자봤다면서 신기해한다. 부산 해운대 바닷가 앞 그랜드 호텔에서 공연을 했지만 해운대 바다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서둘러 다음 계획된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변변한 겨울옷 하나 없이 한국을 찾은 아이들에겐 창밖으로 무채색 패딩을 입고 지나다니는 한국사람들을 보는 것 만으로 그저 모든 게 신기하고 진귀한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사 된 입장에선 어쩔 수없이 시종일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귀한 학생들을 좀 더 재밌고 다양한 일정으로 맞이할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에 속이 상했던 건 나의 오지랖인가? 어디선가 다시 이 학생들을 만나면 그때 정말 미안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은 어쩌면 가짜일지로 몰라. 그래도 대한민국의 좋은 것을 배우려는 너희들이 무척 고맙다. 선생님은 너희들의 순수한 열정을 마음속에 오래오래 기억할게.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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