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펭귄들의우상 Feb 09. 2024

저 사람의 머리를 부수고 싶다

염려 마세요 여러분 그러지 않습니다

그런 날이 있다. 그냥 화가 난다기보다 내 뇌에서 이상한 회로가 불탄다 싶은 날.


사실 브런치에는 웬만하면 무거운 척, 이성적인 척만 하고 싶어서, 이런 글을 잘 쓰지 않으려했다. 그래도 좀 가벼운 얘기와 가벼운 문체도 섞어야 오래 쓸 수 있을것 같아서 떠오르는대로, 흐름 따위 신경쓰지 않고 적어본다.


어릴 때부터 화가 참 많았다. 나를 알고 있는 (아마)유일한 독자에게는 거짓말하게 된 꼴이되어 참 미안하고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얘기지만 뭐 그렇다.


화가 많은게 타고 난 것인지 이것 또한 학습의 일종인지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화가 많으셨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화를 표현하셨다. 소리를 지르든 던지든 부수든 욕을 하든 폭력을 쓰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봤고, 겪었고, 느꼈다. 10대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나도 따라서 화가 나면 화를 냈고, 내가 배웠고 상상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언젠가, 여느 때처럼 화를 내던 나에게 다른 친구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은적 있다. 물론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화를 낼 만한 일이었고, 잘못은 그 친구가 했지만, 그 표정이 뇌리에 깊게 박혔다. 이후에 누군가에게 화를 낼 때마다 그 표정이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마치 내 모습을 그 친구의 눈에 비춰 보는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 마침 또 비슷한 시기에, 세상의 모든 공격을 여유로운 미소로 흘리거나 그대로 받아내는 반친구가 있었다. 그 모습이 처음엔 신기하다가, 어느새 너무 멋지고 존경스러워진 때부터, 화를 줄이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해서는 표현을.


이제는 웃는 낯으로 화를 다스릴 줄도 알게 됐고, 속은 이미 뒤집어졌지만 유머로 대답하는 방법도 배웠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10대 이후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나에게 사람이 유해졌다고 평가했고, 앞서 나에게 질렸다는 표정을 지은 친구에게는 '너를 보고 사람을 고쳐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런 말을 들으니 그간의 인고의 과정이 성공한 것 같아 뿌듯했고, 더욱 행동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멋지고 유머러스하고 젠틀한 나를 만들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화는 점점 더 쌓여갔다. 아무리 문제 상황에 대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반박을 하기 위해 사고 회로를 정돈해도, 삐 소리가 들리며 사고가 더이상 이어지지 않는 시점에 이르렀다. 화가 나면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내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했던 예전과 다르게, 이제는 화가 나면 입을 닫고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통제와 인내는 아슬아슬한 지경까지 이르러서, 이제는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냥 사소하게 나에게 나쁜 의도를 보이는 사람도 예전 같으면 그냥 아이씨 뭐야 했을 일이, 망치만 있었으면 내리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부제목에도 적어두었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스스로를 내리칠거다.) 예전에 누군가와의 의견 충돌을 통화로 길게 얘기했던 일이 있다. 통화 중에는 당연히 욕설은 물론이고 언성도 높이지 않았고, 그냥 대부분 묵묵하게 듣기만 했다. 또 빨리 자리를 피했으면 하는 생각에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고, 기분이 풀린 것을 확인하고 손을 보니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깊게 패여있었다. 이어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을 참지 못하고 새벽 문잠긴 복싱장으로 달려가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점점 겉과 속의 괴리가 심해지는 기분이다. 화를 표현하고 나면, 내가 옳든 그르든, 화를 낼 상황이었든 아니든, 화를 표현했다는 죄책감과 더러운 기분이 몰려들어 참을 수가 없어진다. 그러면 또 아 다음엔 이럴 때 참아야지, 표현하지 말아야지, 어떻게든 이성적으로 대응해야지 하지만, 뇌 속은 뒤집어진다.


복싱과 헬스를 열심히 하기 시작하면서, 대부분 이런 충동이 들 때는 운동으로 해결했다. 새벽이어도 달려가서 운동을 했고, 샌드백을 치다보면 자연스레 화가 가라앉았다. 사실 그래서 앞으로의 의사로서의 생활이 두렵다. 도망칠 곳도 없고, 성숙을 하긴 했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한 것 같고, 세상은 눈물은 봐주는데 화는 터부시하는, 눈물도 화로 바뀌는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모르겠다.


어렵다. 그냥 너가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 의사를 늘려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