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의 오답노트
딱히 지금 나에게 불만이 있는건 아니다. 객관적인 시선이라는게 존재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의 나는 꽤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 생각한다. 재수를 하긴 했지만 괜찮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었고, 선수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운동을 몸으로도, 눈으로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감정을 공유할 상대가 있고, 함께 어울릴 친구와 동기가 있다. 지금의 집안은 화목한 편이며 책임감 강한 부모님과 나를 아껴주는 누나가 있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은 항상 벌어지지만, 퍽 만족스러운 삶이다.
하지만 살다보니 여러 아쉬움이 남는다. 뒷심이 부족한 것, 예술에 조예가 없는 것, 경제관념이 부족한 것, 가벼운 환경 변화에도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는 것, 영어 회화가 부족한 것 등 고치고 싶지만 손대기 어려운게 너무 많다.
지금도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스무살 초중반에 혹은 학창시절에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또 동시에, 내가 그때 이렇게 살았고 키워졌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부분들이 있는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지금부터는 지금 가진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이 어디에서 기인한 결과였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의 기억을 가진 채로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그때 그 시절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건 불가능했을거다. 결국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나를 그런 방향으로 끌어줘야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지금의 그들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지금 가진 많은 것들이 그들이 끌어준 것이기에 감사할 뿐이다.
결국 앞으로의 글들은, 27살 내 나름의 오답노트 같은거다. 실제로는 오답도 정답도 없다. 그 모든게 나였을뿐. 그냥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을 뿐이고 이를 복기하는 과정일 뿐이다. 단지 나보다 어린 누군가 이 글을 읽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또 동시에 자녀를 키우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